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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찍고 행복 편집

Posted May. 03, 200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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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제작자 역할 제대로 해줬어요.(박 감독)

역전의 명수가 흥행과 비평 양 쪽에서 고전한 뒤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던 박 감독에겐 이후 맘에 드는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바엔 하고 싶은 얘기를 가지고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박 기사가 이를 1차로 심사해 되겠다는 확신을 줬다.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 전 항상 중심에 있었어요. (그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편집기사다.) 영화로 살아왔지만 제일 중요한 건 가족이죠. 돈 벌기보다는 남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 영화를 만들었어요.(박 기사)

저예산 영화로만 비칠까봐 제작비도 잘 밝히지 않지만 충무로의 A급 스태프들만 모였다. 박 기사의 덕이다. 제가 사기를 좀 쳤죠. 감독님이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팀하고만 하겠다는데 우린 돈이 없어요. 어떡하실래요 하고요.

남자 주인공 김강우가 지하철 기관사 역할이라 꼭 필요했던 선로나 열차에서의 촬영을 위해 도시철도공사의 허락을 받아낸 것도 박 기사다. 한 달 동안 매달려도 안 되던 일을 1주일 만에 해결했다. 누군가 감독을 힘들게 하면 뒤에서 소리 없이 처리한 것도 박 기사다. 이 사람은 누구랑 얘기하든지 얘기가 먹히게 만드는 사람이에요.(박 감독)

우리집 찍는다면 어떻게 편집할까 상상하죠(박 기사)

영화에는 박 감독의 체험이 많이 담겨 있다. 서울대 독문과 출신으로 독일 유학을 다녀온 경험을 살려 여주인공이 독문과 강사로 나온다. 그는 예전에 부산 태종대에서 자살할 것 같은 여성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그 여성이 비슷한 처지의 남자와 대화하다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전체적인 구성을 짰다.

경의선은 주인공들이 만나는 곳이며 끊어졌지만 곧 이어질 철도. 철도가 이어지듯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둘은 서로를 치유한다. 박 감독이 생각하는 인생이나 결혼의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영화는 두 남녀의 현실적인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생명력을 얻었다. 그런 현실 인식도 물론 박 감독의 체험적 결론이다.

영화에서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 같다는 한나(손태영)에게 선배 언니는 결혼해서 애 낳으면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박 감독은 젊었을 땐 삶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추상적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이들 보면 이것들 교육시키려면 돈 많이 벌어야지하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며 웃었다. 박 기사가 거들었다.

우리 집의 상황을 영화로 찍는다면 어떻게 편집할까 상상했어요. 애들 아빠는 막 뛰고, 애들이 아빠 힘내세요 하고 노래하는 것 교차편집으로 넣고. 에이, 영화가 되든, 안 되든 우리가 영화 만들면서 이렇게 행복한데요, 뭐.

10년을 같이 산 부부에게서 구체적인 행복의 냄새가 났다.



채지영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