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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 당신이 레드카드야

Posted June. 26, 200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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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죽었다. 아니, 진짜 시인들에게 미안하다. 다시 말한다. 시인 심판은 죽었다. 그와 함께 월드컵 축구도 죽었다. 차라리 심판이 직접 차 넣어라. 죽은 시인 심판의 축구, 아르헨티나 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 그의 판정은 시가 아니었다. 시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편파적이었다.

그렇다. 농구나 미식축구는 오프사이드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미국 스포츠다. 미국인은 공격적인 것을 좋아한다. 점수가 많이 나야 직성이 풀린다. 당연히 농구엔 오프사이드가 없다. 골밑에 미리 가 있어도 3초 이내까지는 괜찮다. 미식축구도 맨 처음 시작할 때 외엔 오프사이드가 없다.

후반 32분 스위스 알렉산더 프라이의 골은 농구 규칙에 따르면 명백히 골이다. 하지만 축구에선 아니다. 골대 앞에 미리 가 숨어 있다가 발로 차 넣은 비신사적 행위일 뿐이다. 한국 미드필더 이호의 발에 맞고 흐르는 볼이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아니란 주장은 억지다. 그러려면 프라이는 한국 최종수비수와 적어도 일직선상에 있어야 했다. 거기서 뛰쳐나와 그 볼을 따냈다면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이호는 백패스를 한 것이 아니다. 볼을 끊으려는 수동적 동작에서 볼이 와서 맞은 것뿐이다.

그렇다면 전반 12분 스위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조재진의 슈팅이 스위스 필리페 센데로스의 손에 맞은 것은 뭔가. 센데로스가 일부러 손을 갖다 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 것인가. 전반 42분 이천수의 코너킥 볼이 페널티지역 안에서 스위스 파트리크 뮐러의 손에 맞은 것도 역시 수동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핸들링 반칙이 아닌 것인가. 왜 똑같은 수동적 동작인데도 스위스 선수들만 인정되는가. 한마디로 이중 잣대다.

부심의 오프사이드 깃발도 그렇다. 처음엔 확신에 차서 번쩍 올리더니, 잠시 후 슬며시 내린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명백한 할리우드 액션이다. 레드카드감이다. 한국 수비수들은 부심의 깃발을 보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최종 판단은 주심의 몫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그 깃발에 속아 프라이를 막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부심은 프라이의 골에 할리우드 액션으로 도움을 준 것이다.

원래 영국에서 풋볼은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축제였다. 마을 사람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하루고 이틀이고 승부가 날 때까지 경기를 계속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몸을 뒹굴고 부딪치며 끈끈한 스킨십을 쌓으면 그만이었다.

축제는 어느 팀이든 1점을 먼저 얻으면 끝났다. 만약 시작 후 10분이나 20분 만에 골이 터지면 1년에 한 번뿐인 그 축제가 그 순간에 끝났다. 결국 경기 시간이 길어지도록 여러 장치가 마련됐다. 먼저 신사답지 못한 행위들이 금지됐다.

상대 골문 앞에서 미리 숨어 기다리거나, 구경꾼들 사이로 살짝 빠져나가 상대 골문 쪽으로 가는 것이 그것이다. 바로 오늘날 오프사이드의 유래다. 그래서 오프사이드(off side)란 팀(side)을 벗어나 있다(off)는 뜻이다. 동료들과 떨어져 혼자 상대 골문 앞에 미리 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프라이는 금지된 지역에 미리 가 있었다. 그 위치에서 패스를 받아 골을 넣으려고 능동적이고 명백한 움직임을 보였다. 골에 관여하지 않겠다라는 뜻으로, 잠시 멈칫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분명한 현행범이다. 비겁한 행위다.

경기 내내 심판의 휘슬은 스위스 편이었다. 한국은 삐이익 불어대는 휘슬 때문에 경기를 제대로 풀어 갈 수 없었다. 정작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해야 할 땐 친절하게(?) 휘슬을 불어 흐름을 잘도 끊었다. 스위스는 그 반대였다. 파울 수 20-8. 결국 12명과 싸웠다. 사기였다. 이러려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제프 블라터의 나라 스위스는 다음 월드컵부터 아예 16강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

붉은 첫새벽. 목 놓아 외친 대한민국. 나라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그대들을 알뜰살뜰 챙겨 준 적 있었던가. 뭐 하나 신바람 나게 해 준 적이 있던가. 16강이 무너진 날. 붉은 가슴들 까맣게 타버린 새벽. 무슨 재미로 사나. 짜증면 곱빼기. 명치끝이 뻐근하고 아리다.



김화성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