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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무시하는 말...말...말

Posted July. 25, 200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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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즘(Sexism): 남자들에 갇힌 여자

정해경 지음

373쪽 1만5000원 휴머니스트

형제가 어떻게 됩니까? 살다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 질문의 특징은 그것이 대상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성에게 자매가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이처럼 남성형은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포함하지만, 여성형은 오직 여성만을 가리킬 뿐이다.

언어는 흔히 가치중립적 대상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나 그것을 지배하는 문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특정한 집단과 대상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키면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언어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그것이 권력적이며 억압적이라는 사실뿐이다. 언어 사용의 근간이 되는 사전 역시 단어에 대한 객관적 의미가 아니라 언어의 의미나 사용 방식을 지배하는 척도만을 보여줄 뿐이다. 사전은 방언이나 흑인 영어와 같은 잡다한 언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언어는 결코 평등을 알지 못한다. 언어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흑인에 대한 백인의,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폭력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언어적 불평등은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비롯되지만 불평등한 언어는 또한 억압적 질서를 영속화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부장적 현실과 불평등한 언어가 형성하는 순환은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언어의 권력성은 특히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성에서 두드러진다. 언어의 척도는 남성이며,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척도란 다수자의 기준인데, 이때 다수란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력의 유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교수나 여류작가, 여성노동자라는 말은 있으나 남교수, 남성작가, 남성노동자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교수, 작가, 노동자라는 총칭어가 남성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역사는 존재할 수 있으나 남성의 역사는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역사는 언제나 남성의 역사(his-story)였기 때문이다. 권력의 언어는 언제나 무표적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장한 남성들이 맨 먼저 습득하는 속어 중의 하나는 성관계를 따먹다라는 동사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여성을 음식으로 인식하는 언어 사용은 영어나 독일어, 프랑스어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남성이 여성과의 관계를 성을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절망적인 사실은 이러한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순화한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개념과 정의, 그리고 언어 사용의 차별성이 해소되어야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문제의식이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언어는 내밀한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를 통제한다. 그러므로 언어의 불평등을, 그리고 나아가 현실의 권력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척도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 문제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 봉 준 문학평론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