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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일들

Posted March. 11, 2019 08:10,   

Updated March. 11, 201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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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고 물어봤다. 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벌였던 올해 첫 번째 총파업에 현대·기아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이 노조 간부와 대의원만 참여해 총파업이 아니라 ‘물파업’으로 만든 이유 말이다. 민노총 전체 조합원 99만 명 중 그날 파업에 참가한 인원은 3200명에 불과했고, 사업장은 대부분 평소처럼 가동됐다.

 현대차 회사 측이 파악한 원인은 이랬다. “우리 사업장과 상관없으니까.”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제주영리병원 허가 철회 등 민노총이 내세운 파업의 명분이 현대차 근로자 개개인의 이익을 버릴 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현대차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3개월인 지금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제대로 시행하고 있다. 6개월로 늘리는 걸 굳이 저지하지 않아도 되는 마당에 파업을 해서 일하지 않은 만큼 임금을 줄이는 선택을 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답은 이랬다. “민노총에 재가입하기 전까지 19년간 무분규를 이어왔다. 최근 중공업 구조조정으로 강성 집행부가 다시 선택받았고, 민노총에도 재가입하긴 했지만 조합원들의 정서는 집행부와 상당히 다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된 파업 투표에도 약 51%만 찬성했다. 이 정도면 거의 동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회사 측의 판단이다.

 올해 4차례로 예고된 민노총 주도 ‘사회적 총파업’의 첫 시도는 사실상 실패했다. 민노총의 뿌리는 과거 현대그룹 노동자총연합인 만큼 뿌리의 배신으로 볼 수도 있다. 이 한 번으로 모든 게 변했다고 단정하긴 이르지만 이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노조 파업과 관련된 과거의 문법은 이랬다.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한다. 당연히 의견이 갈린다. 사측과 협상하기보다 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선다. ‘연대’로 힘을 키워야 한다며 전국이 들썩인다. 때로 정부가 나서 불법시위에 대해 강경하게 맞서기도 하지만 결국은 대부분의 회사가 노조를 달랜다. 다음 해 임단협 시즌에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 시절은 이게 통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국내총생산이 평균 7.1%, 2000년대는 평균 4.7% 성장했다. 기업은 노조가 파업을 멈추고 생산에 참여해 벌어들이는 이익이 노조 요구를 들어주는 비용보다 높다고 봤다. 노조는 노조대로, 사측은 사측대로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결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반도체와 함께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쌍두마차였던 자동차 산업은 흔들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으로 내가 소유하는 차가 아니라도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쓸 수 있는 공유차 산업이 생겼고, 잘 안 잡히는 택시 대신 우버나 그랩을 이용해 필요한 곳 어디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 결과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 자동차시장은 올해 1.4%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주요 수출국인 중국에서 현대차는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생산인력 재배치에 들어갔다.

 몇 년간 큰 위기를 겪었던 중공업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주문량이 늘면서 모처럼 살아나고 있지만 2, 3년 뒤를 보장하긴 힘들다.

 잠시 삐끗하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경영진만 아니라 많은 근로자가 알고 있다. 그러니 강성 투쟁이 여전히 최선인 줄 아는 세력도 이젠 인정해야 한다. 당시엔 맞았던 많은 일들이 이젠 틀릴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고. 새 시대에 살아남는 사람, 조직, 국가가 되려면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