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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애도

Posted November. 14, 2018 07:25,   

Updated November. 14, 201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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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잠긴 존재는 다른 존재의 슬픔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 시가 팔리지 않는 시대에 ‘흩어짐(A Scattering)’이라는 시집으로 2009년 ‘코스타 북 어워드’를 수상한 크리스토퍼 리드, 그 영국 시인도 그러했다. 시집의 제목이면서 표제작이기도 한 ‘흩어짐’은 다른 존재의 슬픔을 응시하는 슬픈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다른 존재란 코끼리다. 그의 시 속의 코끼리가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은 코끼리의 애도에 시인의 애도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의 시 첫 행(“여러분은 그 장면을 보았을 겁니다”)이 말해주듯, 코끼리가 애도하는 모습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유튜브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코끼리들이 지나가다가 길가에 있는 동족의 뼈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그들이 생전에 알고 지냈을 죽은 코끼리의 뼈, 살은 파 먹히고 한 무더기의 뼈로 남은 코끼리의 잔해. 코끼리들은 뼈를 둘러싸고 침묵에 빠진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뼈들을 만지기 시작한다. 코로 말아서 엄니까지 들어 올리거나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뒷발로 조심스럽게 건드리기도 한다. 그 모습이 어쩐지 숙연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그것은 애도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시인은 코끼리가 뼈를 만지고 흩어놓는 것이 그들만의 “오랜 의식”, 즉 애도의 방식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몸집과 슬픔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코끼리의 거대한 몸집이 슬픔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거대한 “슬픔의 몸”.

 시인은 동족의 뼈를 대하는 코끼리들의 행동을 보면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절망적인 슬픔에 빠져 있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도 코끼리를 닮고 싶다. 침묵 속에서 뼈들을 만지작거리고 흩어놓으며 동족을 애도하는 코끼리들처럼, “슬픈 생각들을 새롭고 희망적으로” 배열하며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그러니 코끼리들의 “혼이여, 나를 안내해 주소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기억의 시작이니까.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