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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하루만에 러시아 대선개입 인정

Posted July. 19, 2018 08:32,   

Updated July. 19, 20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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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미 정보기관의 조사 결과를 신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했을 어떤 근거도 보지 못했다”던 자신의 발언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미국의 위대한 정보기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고 말한 뒤 종이를 꺼내 들고 “전에 이미 여러 번 말했듯 나는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보당국의 결론을 받아들인다고 분명히 밝힌다”는 글을 읽었다.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곁에 서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조사는 국가적 재난”이라며 그를 옹호했다.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이고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까지 나서 “수치스러운 반역 행위를 저질렀다”며 맹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중부정 어법’을 쓰려다 저지른 말실수 때문에 빚어졌다고 해명했다.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과 미 정보당국 중 어느 쪽을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다가 단어를 잘못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 대선 개입 행위를) ‘러시아가 저질렀다(it would)는 어떤 근거도 보지 못했다’는 문장이 아니라 ‘러시아가 저지르지 않았다(it wouldn't)는 어떤 근거도 보지 못했다’는 이중부정 문장을 썼어야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장을 그렇게 고치면 괜찮을 것”이라며 여러 번 반복해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해명에도 미 정치권 안팎의 격앙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구나 종이에 적어 온 해명문을 읽고 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가 아닌) 다른 사람이 미 대선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며 가벼운 어조로 여전히 러시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더 키웠다. 뉴욕타임스는 “인쇄된 해명문 종이 한쪽에는 ‘미 대선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사이에 결탁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문장이 손글씨로 휘갈겨져 있었다”고 전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의회에서 기자들에게 “러시아는 많은 사람들이 2016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런 일이 2018년(미 중간선거)에 다시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며 대러 추가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상원에는 향후 선거에서 러시아의 개입 사실이 확인될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금융 부문에 제재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독당한 우리 국민들은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나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라며 백악관 안보팀의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애덤 시프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어제 저지른 난장판을 치우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하지만 (어제 일은) 짤막한 해명으로 수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독재자들의 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권력자들이 민주주의에 의미를 부여하는 제도와 규범을 망치려 한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전날 정상회담을 가진 미-러 양국 대통령을 겨냥한 비판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손택균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