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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여배우 없다는데…김혜수 그녀만의 영화를 만든다

쓸 여배우 없다는데…김혜수 그녀만의 영화를 만든다

Posted June. 24, 2016 07:21,   

Updated June. 24, 20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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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은 “여배우 기근”이라고 하고, 다른 쪽은 “맡을 배역이 없다”고 한다. 여배우를 둘러싼 한국 영화계의 역설이다.

 김혜수(46)는 이런 상황에서도 ‘김혜수만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배우다. 29일 개봉하는 ‘굿바이 싱글’(15세 이상) 역시 연출을 맡은 김태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혜수가 하지 않는다고 하면 불가능했을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주연은 10대 시절부터 톱스타였던, 이제는 전성기가 살짝 지났지만 여전히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여배우다. 영화는 연하남과 사귀다 차인 주연이 갑자기 진짜 내 편, 내 아이를 갖겠다고 선언하며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그렸다.

 김혜수는 인터뷰에서 “김혜수처럼 보이는 모습은 배제하려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제멋대로 철없는 소녀 같다가 쓸쓸하고 지친 맨얼굴을 보이고, 다시 또 훌쩍 성장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나서는 영화 속 주연은 그가 지난 30년 동안 맡아온 배역들의 종합판처럼 보인다.

 1986년 ‘깜보’를 통해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불량소녀로 데뷔한 그는 ‘닥터 봉’ ‘짝’ 등 로맨틱 코미디에서 당당하고 발랄한 싱글 여성의 대명사로 20대를 보냈다. 2006년 ‘타짜’에서 “이대 나온 여자예요”라고 말하는 섹시한 마담으로 변신해 연기력과 흥행 모두 인정받으며 30대 여배우 중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그는 ‘차이나타운’(2015년)에서는 자신의 ‘무기’였던 섹시한 몸매와 미모 대신 넉넉한 뱃살과 망가진 외모를 앞세워 ‘여성 누아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냈다.

‘굿바이 싱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김혜수, 나아가 여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풍자하며 웃음을 끌어내고, 김혜수는 그런 순간을 여유 있게 연기해낸다. 영화 속, 주연을 클럽에서 마주친 젊은 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석이니? 근데 몸매는 ‘쩔더라(좋더라)’. 가슴 봤어?” 김 감독은 “이 장면 촬영 전에 김혜수 씨가 혹시라도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무나 시원하게 ‘그런 말 자주 들어!’라고 재미있어 했다”고 전했다.

 영화 속 주연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40대 여성이면서 한참 어린 연하남과 열정적인 키스를 하는 모습이 공존할 수 있는 것도 김혜수라는 배우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갓 데뷔한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김혜수는 나이와 관계없이 여전히 매력적인 싱글 여성의 면모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며 “엄마 역을 맡아도, 조직폭력배 두목 역을 맡아도 여전히 여성으로서의 매력, 특히 남자에게 기대지 않는 당당한 매력이 있다”고 평했다.

  ‘타짜’에서 그에게 정 마담 역할을 맡겼던 최동훈 감독의 말이다. “‘타짜’ 때는 정 마담이 분량은 많지 않아도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 연기가 가능한 배우는 그때도 김혜수 씨밖에 없었다. 가장 놀라운 건 그 아우라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과 배역에 늘 헌신적이다. 보는 사람이 집중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요즘은 30년 동안의 연기 내공이 느껴진다.”

 김혜수의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