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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1968년 인천 출생 △1992년 인천전문대학 도서관학과 졸업 △1996년 계간 '문예중앙'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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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시각표를 보았다. 가고자 하는 곳의 시간대를 보니 방금 전에 버스가 떠난 것을 알았다. 배차 간격만큼의 시간을 고스란히 기다려야 했다. 어디에다가도 쉽게 풀어버릴 수 없는 허허로운 시간이 정류장에 머물고 있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기다림이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먼 길을 가기에 앞서 내 앞에 고여 있는 시간의 물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내 모습이 비춰지는 게 아닐까. 물 거울을 들여다보는 말없는 계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거기 비친 잎새 무성하던 버즘나무는 갈퀴 머리를 하고 이즈음 제자리서 헤매는 미친 여인네 같다. 제 안에 품은 헤매임이 너무나 많은 가지의 길을 키웠던 것일까. 가을이 오기 전 그 가지들은 가뭇없이 베어져 파란 트럭의 짐칸 가득 실려 어디론가 실려갔다. 어쩌면 내 어지러운 모색이 누군가에게 번다(繁多)한 치장쯤으로 여겨질 때, 나는 그 어지러움 속에서 부드러운 칼 하나 뽑고 싶었다.

차창 밖으로 겨울빛이 빈 들녘에 쏟아 부어지고 있었다. 저 빛들은 다시 봄볕으로 바뀌고 뙤약볕이 되었다가 서늘해진 가을볕으로 멀어질 것이다. 그 멀어짐이 가까워지는 것임을 아는 순간, 겨울빛은 조금 눈물겨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서 멀어짐으로써 진정 나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을 나는 소외의 장르가 아닌 시조의 문맥(文脈) 속에 찾고 싶었다. 단순히 오래되고 낡은 것만이 아닌 새로움을 그 안에서 캐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광의(廣義)의 시에 있어서의 시조는 그 중핵(中核)임을 증거하게 해주신 심사위원님과 말없이 마음을 더하여 주신 많은 주위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시에 대한 외도(外道)로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본도(本道)로써 시조의 품격을 감히 생각해 본다. 미약함으로 떠나지만 뜨거움은 늘 가슴에 묻은 채 매진하라고 겨울 숲은 무수한 회초리들로 서 있다. 참 맑은 가난을 한 줌 가지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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