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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혹은 시간의 담론-‘봄날은 간다’
강한섭(영화평론가·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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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가작으로 만족하여 금년에는 웬만하면 당선작을 내리라 작정하고 응모작들이 담겨진 봉투를 힘차게 열어 보았다. 접수 순으로 읽기 시작했으나 눈에 띄는 작품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역순으로 검토해 보았다.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는 응모작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금년부터 새로 추가된 영화 단평들을 살펴보았다. 역시 기존 평론계에 '여기 보아라!'하며 자랑스럽게 소개할 무서운 신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심사자는 한국의 영화평론가가 멋있는 생각을 해야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게 된다고 항상 주장한다. 신이 창조한 것을 제외하면 세상의 만물은 인간의 거침없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돈과 기술이 아니라 영화계를 지배하는 담론이 영화를 만든다. '지금 한국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를 결정하는 사람이 평론가다. 그래서 평론가는 논리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학자보다 지위가 높게 마련인 자유로운 예술가보다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을 나누고 연결시켜 마침내 역사적 의미를 수여하기 때문이다.
금년 응모자들은 대체로 안정적인 대학교수직을 희망하는 것 같다. 새로운 문제의식과 도전적인 논리로 기존 평론계를 뒤흔들 야망은 찾기 어려웠고 그 대신 이미 인정받은 이론과 방법론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작업에 만족하고 있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상대적 시간론으로 평한 이재현과 영화 '소름'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한 전종혁을 두고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치밀한 분석과 논리적인 글솜씨는 이재현이 우세했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비평가적 자질은 전종혁이 앞섰다. 그러나 전종혁의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적인 평론이라기보다는 대학원 기말 리포트 같았다. 게다가 불필요한 인용과 도시와 공포에 대한 과대해석이 문맥을 자주 끊어 놓았다.
이에 비해 이재현은 시종 분석 대상이 된 영화 그 자체를 놓치지 않는 집요함과 안정된 논리가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좋은 평론이라기보다는 우수한 박사 논문 같았다. 그래서 주저하다가 이재현에게 마음을 주기로 했다. 그의 손을 하늘 높이 들어 주지 못하고 반만 올려주는 아쉬움을 좋은 작품으로 해소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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