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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
김홍준(영화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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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80 여 편의 응모작을 훑은 다음 처음 받았던 인상은 작년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금년의 응모작은 대체로 고른 수준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시나리오가 나름대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모양새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지니고 있었다 고나 할까, 적어도 시나리오라는 장르를 만만히 보고 '무작정' 덤벼드는 일이 없어질 만큼 저변이 튼튼해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한편으로, 기존 영화의 답습이나 모방, 또는 이른바 '팔리는' 시나리오를 지향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띄었다.
이 심사의 목표는 한 편의 뛰어난 시나리오, 또는 한 사람의 유망한 작가를 찾는 것이겠지만, 예심에서는 그러한 목표보다는,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장점을 지닌 작품들을 일단 끌어안아 본다는 기분으로 심사에 임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음을 전제로 하고 기준들을 밝히자면 독창성, 진정성, 다양성이라는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독창성은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꾸밈없이 내고 있느냐는 뜻일 것이며, 진정성이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을 속이지 않고 시나리오에 담아내고 있는지를, 그리고 다양성은 이러한 시나리오가 지금, 여기에서의 한국영화의 맥락에서 다양성의 일부분으로서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헤아림이다.
그렇게 해서 추린 작품이 여섯 편이었는데, 이 작품들 모두가 더 다듬어서 영화로 만들었을 때 위의 조건들을 어느 정도 골고루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계일학'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었고, 고민 끝에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80년 5월 광주의 상처를 지닌 남녀가 서로의 인연을 알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역시, 알지 못한 채 서로를 구원한다는 이야기. 이쯤에서 이미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흥미를 잃을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진부함, 상투성, 시대착오… 등의 단어가 아른거릴 것이다. 시납시스를 읽어 내려가던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다 읽은 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한 '혐의'를 철회하였다. 그것은 지뢰밭과도 같은 소재와 등장인물의 미로를 작가가 정말 아슬아슬하게 더듬어 가는데 성공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진부함과 상투성을 완전히 뛰어넘지는 못했더라도, 영화라는 장르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를 새로운 느낌으로 마무리지은 것은 작지 않은 성취라고 생각한다. 정신병원 생활과 5월 광주의 상황을 묘사한 부분에서 꼼꼼하게 다리 품을 판 취재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이 시나리오의 힘은 많은 부분 그쪽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망의 제시'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처받은 삶이 복원되는 과정이 좀더 섬세하게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치명적인 결함은 아닐지라도, 어색한 제목과 후일담 형식의 에필로그에는 수긍할 수 없었음 또한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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