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당선작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추풍령                     - 서문경


[작품 요약]

1. 새벽에 아버지가 잠을 깨웠을 때 나는 어리둥절해 진다. 내가 서울로 도망치기로 한 계획을 알아차린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다른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임을 안다. 나와 연희와 동호는 아버지를 따라 골목으로 나선다. 동호가 어디에 가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싸우러 간다고 한다. 누구하고 싸우러 가느냐고 묻는 질문에 아버지는 대답대신 담배만 피운다. 다시 동호가 어디로 싸우러 가느냐고 묻고 아버지는 서울이라고 대답해준다. 동호는 집으로 되돌아가서 뭔가를 가지고 온다. 우리는 아버지의 트럭을 탄다. 전에는 식구가 6명이었지만 엄마는 이혼하여 나갔고 언니는 가출하였고 해서 지금은 4명이다. 톨게이트에 도착한다. 수많은 트럭들이 집결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란다. 아버지의 트럭이 맨 선두에서 출발한다.

2. 트럭들은 줄을 지어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아버지는 모두와 약속해 놓았다며 트럭의 속도를 50Km에 고정한 채 달린다. 준태아버지의 핸드폰을 받고 아버지가 라디오를 튼다. 전국에서 농산물 가격 하락에 성난 농민들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부산지역 트럭노조도 이에 편승하여 서울로 향하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연희가 동호에게 아까 집에 무엇을 가지러 갔다왔느냐고 묻는다. 동호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연희는 그 한 번의 거절에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연희는 그림자처럼 조용한 아이다. 그런데 웬만큼 아이들이 자란 후에 뒤늦게 올리는 결혼식에서 연희는 신혼여행에 같이 따라가겠다고 울면서 버텨 결국은 함께 갔다올 만큼 엉뚱한 면도 있다. 그래도 서울 사는 큰고모는 연희가 시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라고 한다. 연희와 동호가 트럭행렬을 놓고 무엇처럼 보이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갔던 타조농장의 타조 떼를 떠올린다. 타조들은 머리에 마이크로칩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로 달아나지도 못한다. 나는 트럭행렬이 타조 떼 같다고 생각한다. 고속도로는 농민과 트럭노조의 시위 때문에 극심한 정체 현상을 빚는다.

3. 연희와 동호가 앉아 있는 트럭의 뒷좌석은 아버지의 여관방이다. 아버지는 타지로 나가면 그곳에서 잠을 잔다. 그런데 나는 뒷좌석을 비밀의 방이라고 이름붙였다. 할머니댁의 다락방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할머니댁의 다락방에는 큰고모의 일기장이 쌓여 있는데, 나는 일기장에서 아버지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없는 돈을 꾸어 중학교에 입학시켰지만 서울로 도망친다. 초등학교 때처럼 할머니가 돈꾸러 다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버지는 자전거점의 수리공, 도금공장의 종업원, 안경알 공장의 견습공, 다방의 주방장, 호텔의 보이 등등을 전전하다가 부산으로 내려와 트럭조수를 할 때 발이 묶인다. 그 전에 식당에서 만난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언니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4. 트럭이 대구를 지날 때 나는 아버지의 심정이 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대구는 가출한 언니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며칠 전에 나는 아버지와 이웃에 살고 있는 작은고모가 나누던 이야기를 자는 척하면서 다 듣는다. 아버지는 언니가 주민등록등본에서 몰래 빠져나간 곳으로 찾아간다. 그러나 아이를 업은 언니가 지하셋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만 하고 돌아온다. 아버지는 이 모든 불행이 어머니를 꼬여간 놈과 언니를 미혼모로 만든 사람 때문이라 생각하다가 할머니 말처럼 가난 때문이라 돌려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왜 가난한지 모르겠다며 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자신이 스무 살에 딸을 낳아 아버지댁에 맡기고 서울로 갔을 때 아버지는 그 딸아이를 맡아 길러 주었는데, 자신은 그 딸이 낳은 자식을 보고 돌아왔다며 괴로운 심정을 계속 털어놓는다.

5. 트럭이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동호가 준태 아버지에게 누구와 싸우러 가는지 묻는다. 준태 아버지가 정부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과 싸운다고 말해준다. 추풍령 휴게소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인다. 준태 아버지가 우리도 서울에서 시위를 하기 위해 가는 중이니 길을 터달라고 한다. 시위대가 길을 터준다.

6. 경찰헬기가 나타난다. 나는 타조가 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다 트럭 행렬이 브이 자 대형을 이루어 서울로 날아가는 타조 같다는 생각을 한다. 힘없는 되새나 물고기들은 떼를 지어 함께 다님으로써 커다란 새나 물고기처럼 보이게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한다. 나는 덩치는 크지만 지입제에 묶여 있는 트럭들도 힘 약한 새 떼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서울로 간다고 생각한다. 앞에는 돼지 실은 트럭이 달리고 있다. 오산근처에서 돼지와 함께 타고 있던 아저씨가 돼지를 밀어 떨어뜨린다. 아버지는 급정거를 한다. 고속도로에는 돼지들이 즐비하다. 트럭은 한 시간 후에 다시 출발한다. 뉴스에서는 여전히 시위 상황을 알려준다.

7.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였다가 아버지에게 붙잡혀 온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작은고모가 검정고시공부를 하라고 돈 준 것을 계기로 다시 탈출하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자꾸만 결심이 허물어진다. 서울로 진입하는 톨게이트 앞에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아버지를 비롯한 트럭노조와 전경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눈 내리는 허공을 향해 황소처럼 울부짖던 아버지가 전경의 진압봉에 맞아 주저앉는다. 그것을 본 동호가 지금껏 숨겨두고 있던 것을 주머니에서 꺼낸다. 언니가 다 태워버려서 없을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사진이다. 동호는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울고 연희도 가세한다. 나는 흐릿해지는 눈으로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고 들어오던 날의 그 술 취했을 때처럼 비틀거리면서 전경들에게 붙잡혀 가고 있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