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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세계,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 심은진


3.

영화에서 프레임은, 의미를 담고 구성하는 경계, 틀로서의 기능과 그 경계 밖의 풍요로운 상상의 공간을 전제로 하는 창문으로서의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한다. 영화는 보여주는 세계와 보여주지 않는 세계, 드러난 세계와 숨어있는 세계가 동시에 만드는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여러 종류의 프레임들은 이처럼 영화의 기본적인 장치들에 대한 메타적인 담론들을 만든다. 그런데 이정향이 이 영화 속에서 고의로 노출시키는 무수한 프레임들은 실은 단 하나의 현실적인 프레임- 극장 안의 어두움이 만드는 것이든, 혹은 익명의 어두움이 지워진 집안에서, 친숙한 가구들과 나란히 있는 텔레비전의 프레임이든지- 즉, 우리가 실제로 보고있는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의 프레임 속에 담겨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실제 영화의 프레임과 영화 속에서 재현된 여러 프레임들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춘희 방의 창문과 미술관의 그림, 춘희와 철수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보던 텔레비전은 프레임 속의 프레임, 격자구조(mise en abyme)가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이러한 격자구조의 장치는 이중적이다. 화면의 구성 즉, 미쟝센(mise en sc ne)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춘희와 철수의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시나리오 속의 인공과 다혜의 이야기, 이야기 속에 박혀진 이야기처럼 서술의 차원에서도 이루어진다. 격자구조는 거울과도 같이 서로를 비추는 자기 반영적, 자기 반성적 장치이다. 철수와 다툰 춘희가 액자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은 틀 속의 틀이 보여주는 반영의 기능, 반성적 장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화면 가득 잡힌 춘희 방의 액자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액자 속의 그림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과 겹쳐져 있는, 그림의 유리로 비춰진 춘희의 모습이다.

그림 속의 사랑을 한다는 철수의 비난을 생각하며 춘희는 액자의 유리 속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 작업의 시작이다. 우리는 액자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후 그리고 비디오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본 후 변화된 춘희를 만난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더 이상 괴상한 소리도 지르지 않고,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있지도 않고 맨발로 다니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춘희는 철수를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의 영화, 그림 속의 그림, 틀 속의 틀들은 바로 이러한 반성적인 자기 성찰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 영화에서의 틀의 제시는 자신의 존재양식을 드러내기 위한 한 장치,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위한 장치이다. 그것은 어디까지가 영화이고 영화가 아닌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이다. 그림을 통해서가 아닌 영화라는 장치를 통한 이러한 제시는 더욱 노골적이다. 울적할 때 보려고 모아 놓은 비디오의 끝 부분에는 철수가 찍은 춘희의 영상이 담겨있다. 춘희는 비디오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다. 그런데 두 춘희를 바라보는 관객인 우리는 더욱 당황하게 된다. 비디오 속의 춘희는 처음에는 텔레비전 속에서, 영화 속의 또 다른 틀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진다. 텔레비전이라는 틀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춘희와, 비디오 화면 속의 춘희를 구분한다.

그러나 곧 이 구분이 사라진다. 두 춘희를 나누는 틀, 찍힌 춘희와 바라보는 춘희의 경계가 없어진다. 두 춘희는 영화 속에서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그리고 두 춘희는 서로를 바라본다. 스크린 가득 담긴 두 춘희 시선, 정면을 응시하는 두 시선은 숏 - 역숏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두 춘희가 정말로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속의 논리를 따르자면 비디오를 보는 춘희의 시선은 비디오 속의 춘희를 향해 있다. 그리고 비디오 속의 춘희의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향해있다. 그렇다면 비디오 속의 춘희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인가? 비디오에 찍히는 순간 그것은 카메라의 눈이었지만, 지금은 찍힌 자신을 보는 춘희, 혹은 스크린 위의 춘희를 바라보는 우리이다. 비디오에 찍힌 춘희가 비디오를 보는 자신과 현실의 세계에 있는 관객 모두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이다. 비디오 속의 춘희는 단번에, 단 한번의 눈길로, 현실과 허구라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영화에서의 자의식적 질문은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허구에 관한 질문이다. 틀 안의 틀, 이야기 속의 이야기, 영화 속의 영화는 허구와 현실이라는 각각의 세계가 갖고 있는 경계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요구한다. 비디오를 바라보는 춘희와 비디오 속의 춘희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세계 사이의 어떤 구분도 어떤 경계도 사라져버린 두 춘희 앞에서, 우리는 어떤 춘희를 선택해야하는가? 어떤 춘희가 진짜인가? 이처럼 우리는 영화가 있는 세계, 영화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는 어디까지인가?

프레임의 차원이 아닌 이야기의 차원에서 제시되는 격자구조도 결국은 현실과 허구의 이 경계를 말하기 위한 장치이다. 춘희와 철수의 사랑 이야기 속에 동물원의 인공과 미술관의 다혜의 이야기가 박혀져 있다. 인공과 다혜의 이야기는 컴퓨터의 네모난 화면 위에서, 보란 듯이 틀 속의 틀을 보여주면서, 우리를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가게, 박히듯 시작된다.

박혀진 이야기, 시나리오의 이야기는 현실의 반대편에서 시작한다. 각자의 연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두 사람은 영화 이야기,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슬픔을 달랜다. 서로의 연인의 이름으로 주인공을 만들어 사랑의 이야기를 엮어가고 이내 두 사람은 이야기 속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하게된다. 사랑은, 우리들의 욕망은 환유적이다. 욕망은 욕망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만든다. 환유는 인접하는 말들이 만드는 수사적 장치이다.

인접하는 것들을 닮게 만드는 환유는 그러기에 전염병과도 같다. 사랑은 서로를 서로에게 전염시키는 것, 서로를 닮아 가는 것이다. 밤하늘을 관찰하는 인공을 닮기 위해 다혜는 우주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본다. 다혜를 사랑하는 인공은 열심히 미술관을 드나들며 그림을 본다. 철수는 춘희를 흉내내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본다. 자신이 늘 가던 동물원대신, 춘희를 생각하며 미술관으로 그림을 보러 간다. 그리고 춘희는 인공을 만나러 동물원으로 간다.

환유적인 욕망, 전염병과도 같은 사랑의 구조는 바깥의 사랑 이야기와 박혀진 사랑 이야기 사이에도 이어진다. 현실의 철수와 춘희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신들이 만든 다혜와 인공을 닮으려한다. 시나리오 밖의 춘희와 철수가 시나리오의 인공과 다혜의 말과 행동을 조종하는 것 같지만, 이들이 점점 자신들을 이야기 속의 두 인물들에게 동일화시킬수록, 거꾸로 이들은 다혜와 인공이라는 허구의 인물들을 따라가게 된다. 둘이 함께 영화를 볼 때에, 철수가 춘희에게 생일카드를 전해주면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진실을 시나리오 속의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현실보다 허구가 진실해지는 순간, 허구는 현실을 이긴다. 춘희와 철수가 자신들의 진실을 허구의 다혜와 인공을 통해서 표현하는 순간,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이제 허구의 인물이 두 사람을 대신하게되고 두 사람의 사랑의 이야기에 간섭하게 된다. 허구의 이야기는 현실에 종속된 것이 아니다. 두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준다. 허구와 현실은 공생의 관계가 된다.

두 이야기가 연결되는 고리,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 또한 환유적, 연상적이다. 춘희와 철수가 나누는 대화의 한 단어 - 별자리에 대한 철수의 설명은 이내 별자리를 관찰하는 인공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처럼-는 이내 시나리오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현실의 사소한 사건들, 사물들 -고장난 자동차나, 자전거, 보름달 등-은 시나리오의 플롯을 만드는 모티브가 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고리가 모두 현실에서 허구로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춘희와 철수는 시나리오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현실과 허구를 혼동하고 - 이것은 이들이 현실에서 나누는 대화와 시나리오의 대사를 혼동하는 데에서 잘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시나리오의 이야기가 현실의 세계로 넘어오는 일이 생긴다. 미술관의 다혜가 동물원의 인공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장면, '제 이름은 다혜예요, 다혜' 라고 말하는 장면에 뒤이어 바로 현실 속의 다혜가 춘희에게 '춘희씨 저 유다혜인데요' 라고 말하며 전화를 건다. 다혜라는 이름을 고리로, 이야기는 허구에서 현실로 넘어온다. 현실의 이야기는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고 허구는 다시 현실 속으로 흘러 들어와 현실의 것들을 변모시킨다. 이처럼 두 사랑의 이야기는 하나의 같은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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