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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을 위한 노래
(한국 현대미술에서 불교미술의 역할과 가능성)
-
장준석




예술이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한국인의 삶의 종교적 차원을 선명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한 방법으로서 불교미술을 상정할 수 있겠다. 불교미술은 절대적 존재의 진리 및 신의 빛을 투시해보려는 인간의 갈구와 노력에의 직관적이고 심미적인 참여이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그것은 또한 순수하게 인간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도록 혼을 불어넣어 주고 삶의 의미를 표현하는 작업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불교미술은 일시적인 호도책이나, 가시적인 자연 세계의 단순한 미메시스, 또는 숙련된 소수 예술가들의 활동만은 아니다. 또한 단지 작품이나 인간의 삶 또는 사물이 갖는 현상에 대한 해석 차원의 단순 투시도도 아님은 물론이다. 여기에 불교미술의 종교 예술적 가치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인간 내부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절대적 진리, 즉 존재의 근원을 살펴볼 수 있다. 하이데거는 '근원이란 본질의 유래이며, 본질 가운데 존재자의 존재가 생성하게 되는데 예술은 현실적 작품 가운데서 그 본질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한국인에게 있어 '본질을 찾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교적 미술 행위에서 비롯되며 이는 우리 삶의 근원적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고, 삶의 자화상을 실제적으로 명료하게 투영시키는 일임에 분명하다. 불교적 진리가 우리 삶을 통하여 투영되고 미적으로 표현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그것을 온전히 서술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겠으나 대체로 첫째, 불교적 전통을 계승·표현하려는 미술, 둘째, 비 불교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 불교적 본질에 참여하는 미술, 셋째, 예술 창조와 삶의 과정에서 추출되는 불교적 심미성 등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먼저, 불교에서 흔히 경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의식적인 전통 불교미술을 들 수 있다. 관음보살도, 나한도, 영산회상도 등 불교를 소재로 한 그림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통 불교미술은 구체적인 불교적 소재 등을 사용하여 종교적 의식 전환의 체험을 이루며 더 나아가 상징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진실한 삶의 표현을 창출해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불교미술이 도해적·서술적·묘사적이라고는 하나, 더 나아가 암시적이며 상징적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교미술에서는 '마음속에 참뜻을 갖추고 있음(菩堤心)'을 의미하는 회화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외적인 면과는 달리 무한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교적 내용을 직·간접으로 나타내든 상징적으로 나타내든 신의 계시와 능력들을 순수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체험되지 못하였을 때 불교미술적인 것들이 단순한 도해식의 묘사나 혹은 무의미한 것으로 끝나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러기에 불교 미술가들은 단순한 도해나 도식의 차원이 아닌 신격을 지닌 불교적 계시와 환상적 상징을 가능한 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표출해야만 한다. 전통 종교미술의 참 목적은 참된 존재를 가장 완전한 이미지와 형상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함께 자신의 삶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감추어진 신성한 본질을 자각할 수 있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둘째, 불교미술적인 힘은 전통 불교미술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미술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불교미술적인 힘은 특정한 불교적인 전통의 내용을 담은 예술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풍경화나 정물화, 인물화 등 외적으로는 순수 미술의 영역을 표방한 작품을 통해서도 불교적이면서도 영적인 체험이나, 또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이러한 유형의 예술 창조는 반드시 불교적 진리를 바탕으로 할 필요성을 지닌다. 불교적 이치와 미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直指心 見性佛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교적 본성이 제대로 수용·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예술 창작이 이루어질 때 갈증난 현대인들의 삶에 영적 생명수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영적 가치와 불교적인 것을 자각한다는 것은 사물의 내적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형체나 색깔 등을 통해 자신과 인간의 의미 등을 깨닫고, 그것의 순수 형태나 이미지를 통하여 근본적인 특질을 묘사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자각한다는 것은 불교적 의미에서나 영적 의미에서 사물의 내면을 자각하는 것이다.

셋째, 현대인의 삶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심미적인 태도로서, 이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진솔한 예술일 것이다. 삶이란 자연과의 융화와 인간간의 교류, 신과의 교감 등을 통하여 거듭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과정의 순환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주변의 복잡 다단한 현대인의 삶 자체에서 심미적인 결정체는 발견되는 것이며, 여기에는 우리 삶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불교적 진리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이는 곧 인간의 삶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道나 氣를 바탕으로 하는 동양예술철학, 茶道, 그리고 현대의 연극이나 전통 초가집 등에서도 이들이 갖는 속성과는 관계가 없이 불교적 예술 세계로의 승화는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예술은 단순히 심미적 삶을 즐기는 경험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시·공간 안에서의 삶의 영원한 근원 및 영적이며 불교적인 본질을 창조하려는 상징적 의미도 지닐 것이다. 가령 茶道는 禪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고, 차를 따르거나 마시는 것 등 현대인의 일상적인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다도의 일련의 행위 속에서도 無我의 境界, 虛靜淨命한 인간의 수행, 사물의 진정한 본성 등을 표현하는, 자발적인 어떤 힘이 존재함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각 개인의 기능적 움직임이라 볼 수 있으며, 현대인은 그러한 태도 등을 통하여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기를 여러 아름다운 형태로 삶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헤겔은 '아름답고 자유로운 필연성(die schone freie Notwendigkeit)'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는 곧 아름다움과 화합하는 자유스런 삶의 법칙을 말한다. 즉 예술은 삶과 시간과 공간에서의 영원한 원형, 혹은 영적·종교적 본질을 이룩하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적 진리를 자각하는 것은 불교적·영적 의미에서 사물의 내면을 자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형태에서 표출되는 소재나 행위 등을 통해 인간의 내적 진리나 불교적인 영감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오늘의 한국인과 한국미술은 스스로의 삶 자체에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국인에게 있어 아름다운 형태는 무엇이며, 불교미술이 어떤 유형의 삶을 전통적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부여하고 있는가? 타인의 삶, 희석된 삶, 마음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삶―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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