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당선작
2018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2000
1999
1998






배오2동사무소     - 박정우(31)


[작품 요약]

미자는 배오2동사무소의 주민등록계원이다. 이 일을 몇 년 하다 보니 사람들을 주민등록번호로 되새겨 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그렇게 별날 것 없는 평범한 처녀이다. 그런데 미자에게 희한한 일이 생긴다. 동사무소 옥상에서 우연히 어느 집 창문으로 한 여인이 윗옷을 벗은 채 환호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 창문의 여인은 미자에게 눈인사를 한다. 황사가 자욱했던 어느 봄날, 그만큼은 아니지만 평범치 않은 일들이 미자에게 계속 일어난다.

같은 날 미자와 한 건물에서 근무하는 예비군 중대 동대장도 이상한 일을 겪는다. 황사가 심하고 모래바람이 세차게 불던 그 날 밤 예비군훈련을 지휘하던 동대장은 동사무소가 통합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거기다 사고가 겹쳐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에야 집에 돌아와서 위장크림을 채 지우지도 못한 초췌한 자신의 얼굴을 본다. 우연히 TV에서 기상 캐스터의 이메일 아이디가 자신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그녀와 자신이 깊이 통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일기예보 대로 천둥이 울린다.

천둥이 울리고 황사를 씻어내는 비가 온 그 날 미자와 친한 경숙언니는 업무과실로 10년을 다니던 동사무소를 그만두게 되었다. 경숙의 환송 회식 때 지금껏 상대방에게 무심했던 동대장과 경숙은 술이 올라서인지 무척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시민공원에서 화려한 행사가 있는 것을 보고는 무작정 구경하러 간다. 사람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자 경숙은 동대장의 어깨 위로 목마를 탄다.

같은 시간. 미자는 술에 취한 영주를 만난다. 영주는 어제 동사무소에 왔던 사람인데 주민등록번호가 710931-, 그러니까 1971년 9월 31일에 미자의 동네인 설국에서 태어나서 결혼 후 이사 온 남자다. 사실 확인차 미자와 함께 설국에 들린 영주는 자기 생일 보다 오히려 설국이라는 동네가 더 신기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 별장처럼 푸근한 곳.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영주는 사람들에게도 설국역과 같이 쉬어 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영주가 지금 술이 취해 무릎사이에 고개를 떨구고 자고 있다. 미자는 영주를 업고 아파트 문까지 데려다 준다.

가을이 되었다. 미자와 경숙은 우연히 영화 <어너더 데이>를 보게 되고 거기서 경숙이 동대장의 목마를 탄 모습과 미자가 영주를 업고 아파트 복도를 달리고 있는 장면을 보고 경악한다. 네 사람이 이렇게 희한한 일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와중에도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중이다. 어느덧 9월 30일. 미자는 동사무소에 찾아온 어느 할머니가 9월 31일 생인 것을 알고는 놀란다. 그리고 영주를 믿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다. 미자와 영주는 그날 밤 술자리를 하면서 9월 31일의 새벽을 맞는다.

아침이 되어 예의 그 기상캐스터는 수 십년 만에 9월 31일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게 조금씩 들떠 있다. 그렇다고 기적이 일어나거나 어려운 문제가 드라마틱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평소에 소망했던 소박한 꿈들이 이날 9월 31일에 실현된다. 아이들은 솜사탕을 공짜로 마음껏 먹고, 어른들은 자판기 커피를 맘대로 뽑아먹는, 그 정도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하루이다.

영화 <어너더 데이>는 흥행 뿐 아니라 불후의 명작으로 인정 받게 되었다. 미자의 아이들도 추석 같은 명절에 특선영화로 엄마가 다른 유부남을 업고 가는 것을 본다. 동대장의 손자들이 동대장에게 차례를 지내는 동안 동대장의 짧은 로맨스가 TV에 방영된다. 미자는 옥상에서 만나는 그 창문의 여인에게 이제 먼저 인사를 건낸다.

 

 

Copyright 2002 donga.com. E-mail.sinchoon@donga.com
Privacy 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