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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알을 품었어           - 박 소 명


“봄이다! 봄!”

참새들이 봄바람처럼 한바탕 몰려다녔어요. 잣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에 따스한 기운이 아른아른 일어나고 있었어요. 나는 힘껏 기지개를 켰어요. 겨우내 웅크리고 있어선지 삐그덕 소리가 났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늘고 내 몸 속에도 다시 쓰레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한 아이가 과자 봉지를 버리다가 내 앞에 과자 부스러기를 흘렸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먹다 남은 음식을 내 속에 쑥 넣었어요.

“아, 맛있는 냄새!”

까치 부부가 가장 먼저 입맛을 다셨어요.

“맛있겠다. 맛있겠다.”

기다랗게 줄을 지은 개미들도 곰실거리며 달려왔어요. 내 위로 가지를 펼친 때죽나무는 또 심통을 부렸어요.

“하필 여기에 쓰레기통이라니.”

“왜 또 그래?”

“네가 여기 있으니까 벌써 지저분해지잖아.”

맨 처음 내가 이 오솔길에 왔을 때부터 때죽나무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통통한 내 몸 속엔 언제나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고 킁큼한 냄새가 났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까치랑 개미들은 좋아만 하는데 뭘.”

“난 싫거든.”

“싫어도 할 수 없거든.”

나도 지지 않고 대꾸 했어요.

저만치 까치 부부가 아카시 나무 위로 바쁘게 오르내리고 있었어요. 입에는 나뭇가지를 물고 있었어요. 나는 궁금했어요.

“뭐해?”

“둥지를 틀 거야.”

“둥지?”

“알을 낳을 거거든.”

“알?”

“우리 아기들이 태어날 거라고.”

“나도 알이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까치들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때죽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웃었어요.

“나라고 못 가질까 봐?”

나는 큰소리쳤지만 풀이 죽고 말았답니다.

높다란 아카시 나무 위엔 둥그런 둥지가 지어졌어요. 까치 부부는 둥지 곁을 훨훨 나르며 기분 좋게 춤을 추었어요. 나는 둥지를 우러르며 중얼거렸어요.

“나도 둥지를 갖고 싶다.”

“말도 안 돼.”

때죽나무가 또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어요.

“가질 수도 있지.”

때죽나무가 깐죽거릴수록 나는 더 둥지를 갖고 싶어졌어요.

“알을 낳았어. 알을.”

아빠가 된 까치가 아카시나무에서 때죽나무로, 또 내 둥근 지붕 위로 겅중거리며 자랑을 늘어놓았어요.

“축하해!”

때죽나무도, 언제나 말없이 덩그마니 서 있던 굴참나무까지도 기뻐해 주었어요.

보름이 지나자 어린 까치들이 알을 깨트리고 나왔어요. 아빠가 된 까치는 날개를 퍼덕이며 부지런히 벌레를 잡으러 다녔어요. 나는 가끔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느라 바쁜 아빠 까치를 불렀어요.

“내 속에 먹을 게 들어왔어. 한 번 뒤적여 봐!”

“고마워.”

아빠 까치는 좋아하면서 나를 뒤적였어요. 나는 가려워도 꾹 참았답니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가워졌어요. 가지로 내내 햇살 온도를 재던 때죽나무가 말했어요.

“이만하면 딱 좋군.”

때죽나무는 한꺼번에 우르르 꽃을 꺼내 흔들었어요. 노란 꽃술을 단 하얀 꽃들이 내 위로 나풀거렸어요. 기분 좋은 향기가 후르르 후르르 날아다녔어요.

‘아, 예뻐라!’

때죽나무는 얄미웠지만 꽃들은 하나같이 예뻤어요.

“내 향기가 엉망이 되면 네 탓이야!”

때죽나무가 잘난 척하며 쏘아댔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청소부 아저씨가 내 속에 있던 쓰레기를 마지막으로 가져간 후 더 이상 몸속에 쓰레기가 차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긴 것이었지요.

“건너편에 넓은 황톳길이 생겼거든. 숲을 보호하려고 이 길은 막았대.”

잣나무 숲을 건너다니던 까치가 말했어요.?

“잘됐네.”

때죽나무는 가지를 출렁이며 좋아했어요. 꽃잎이 파르르 떨어졌어요.

오솔길은 마치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 무렵처럼 쓸쓸해졌어요. 까치 부부는 새끼들을 데리고 잣나무 숲 쪽으로 떠났어요.

‘그동안 고마웠어. 둥지를 갖고 싶다는 네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까치 부부의 목소리가 아직 들려오는 것 같았어요. 나는 텅 빈 내 속을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까치 가족을 떠올렸어요. 저만치 아카시나무에서 빈 둥지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어요.

때죽나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잔바람에도 몸을 흔들었어요. 하얀 꽃잎이 하나 둘 눈처럼 내렸어요. 내 지붕 위로도 몸속으로도 떨어졌어요. 때죽나무는 조롱조롱 열매를 많이도 매달았어요.

나는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때죽나무 열매를 세어보고 세어보았어요. 동글거리는 때죽나무 열매들이 어쩔 땐 꼭 알처럼 보였어요. 풋풋한 열매들 사이로 조각조각 흔들리는 하늘이 보였어요.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흘러갔어요. 몽롱해진 나는 때죽나무의 꽃향기를 품고 잠만 계속 잤어요. 가끔은 까치처럼 알을 품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네게 둥지를 틀어도 되니?? 찌이찌이.”

꿈결에 들리는 말인 줄 알고 나는 혼자서 피식 웃기만 했어요.

“안되겠니?? 찌이찌이.”

다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내 몸 속에 딱새 한 쌍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둥지를?”

“까치한테 네 이야기를 들었어. 넌 둥지를 갖고 싶어 한다며?”

“까치가?”

“우린 마침 둥지를 틀어야 해서 널 찾아 왔어.”

“정말?”

“응. 까치 말대로 여긴 정말 조용하네. 네 둥근 지붕 때문에 비도 안 들칠 것 같고. 거기다 꽃향기까지 나네. 정말 맘에 들어.”

내 속에는 때죽나무 마른 꽃잎이 소복했어요.

“알도 낳을 거니?”

“응.”

나는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딱새들은 보드라운 풀잎을 자꾸자꾸 물어 날랐어요. 둥지가 다 지어지자 조그만 알 다섯 개를 낳았어요. 누가 볼까 걱정이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때죽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걱정 마.”

잠자코 있던 때죽나무가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말했어요.

“네 꽃잎이 있어서 더 좋대.”

“딱새 이야기를 다 들었거든. 어쨌든 내 꽃잎 향기는 최고라니까. 말랐어도 향기가 남았잖니.”

“그래, 최고야.”

때죽나무는 가지를 더 우쭐거렸어요.

“어쨌든 미안. 널 비웃었던 것. 넌 알을 가진 특별한 쓰레기통이야.”

"내가 가질 거라고 했잖아. “

내 어깨도 으쓱 올라가고 있었어요.

“부탁해. 난 알을 잘 지키고 싶어.”

“물론이지. 알은 내 열매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거든.”

때죽나무가 잘 익은 열매를 기분 좋게 흔들었어요. 나는 숲 속에 막 외치고 싶었어요.

‘나도 알을 품었어!’

하지만 꾹 참았어요. 딱새네 소중한 알을 지켜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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