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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가을
이우걸(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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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나무 한 그루를 만나고 싶었다. 깊은 인식의 뿌리가 있는, 건강한 주제의 줄기(기둥)가 있는, 아름다운 수사의 잎이 있는, 새로운 수종의 나무를 만나고 싶었다.

날을 바꾸어 가며 응모작을 읽다가 김영완의 「나비의 꿈」, 김경태의 「그때, 항구는」, 조성문의 「공단의 쑥부쟁이」, 김미정의 「왕피천, 가을」을 가려내었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았다. 김영완의 「나비의 꿈」은 잘 정돈된 작품이지만 독자가 향유할 수 있는 상상력의 공간이 지나치게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태의 작품은 이미지 구사 능력이 돋보였지만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선자를 망설이게 한 것은 조성문의 「공단의 쑥부쟁이」와 김미정의 「왕피천, 가을」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조성문의 작품이 두드러져 보였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조명도 시의 적절하고 선명한 이미지에도 호감이 갔다. 그러나 반복해 읽으면서 어떤 답답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이 긴 여인」, 「헬쑥한 여인」, 「파리한 낮달」등의 수식어구 혹은 수식어의 기계적 배치와 다소의 분장술이 그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에 비해 김미정의 작품들은 응모작 전편의 수준이 고르다는 점에서 우선 신뢰가 갔다. 특히 「왕피천, 가을」은 연어들의 모성회귀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수사력으로 시조를 읽는 재미를 풍요롭게 선사해주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이런 시인의 작은 외침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 비록 새로운 수종은 아니지만 나는 이 나무의 발견을 축복으로 생각했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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