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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                       - 김언수


시월 이일 아침. 그는 프라이데이와 결별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이제는 시일이 지나 업무상 아무런 가치가 없는 서류 파일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업무상 다소 가치가 있어 보이는 서류 파일들도 쓰레기통에 버렸다. 아주 많은 것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책상 서랍 속에는 여전히 파일철, 모나미 볼펜, 호치키스, 클립 같은 잡다한 사무 용품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서 자신의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그에게는 이제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옆자리에 있는 미스 김에게 혹시 이 중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미스 김은 그의 책상 위를 힐끔 보고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짓더니 고맙지만 자신에게도 그 정도의 사무 용품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잡다한 사무 용품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느닷없는 그의 대청소를 보고 사무실 동료들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프라이데이와 결별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동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동료들이 던진 질문은 그의 난데없는 행동에 대한 형식적인 관심에 불과했으므로 그가 말한 프라이데이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더 옳다. 동료들은 프라이데이는 또 뭐야? 하고 중얼거리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들이 돌아가자 그는 다시 오른쪽 상단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그 서랍 속에는 업무용 일기장과 명함첩 그리고 가족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들어 있었다. 그는 우선 명함첩을 꺼내서 그 중 몇 장을 뒤적거렸다. 대부분의 명함들은 이름을 읽어도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 참 웃기는 일이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 명함첩은 사진 앨범처럼 얇은 비닐로 덮여 있어 칸마다 명함을 끼워 넣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가 텔레비전에서 무려 7만장이나 되는 명함을 모은 일본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 사원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를 보고 감동 받아 산 것이었다. 그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사원은 수백 권의 명함첩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자신은 명함 속의 사람들(7만 여명의 사람들)과 지난 40년 간 지속적인 신뢰와 우정을 쌓아왔으며 그 두터운 신뢰와 우정은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자 성공의 발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 사원의 말에 지나치게 감동을 받았다. 7만 여명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우정과 신뢰를 나눌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근사한 것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후로 그는 일본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 사원이 들고 있던 것과 비슷한 명합첩을 사서 정성 들여 명함을 모으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그도 7만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천명 정도와는 지속적인 우정과 신뢰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고작 몇 백 명도 안 되는 명함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도 지속적인 우정과 신뢰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프라이데이와 결별했으므로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명합첩에서 일일이 명함을 꺼내 쓰레기통에 버리기 시작했다. <한진 유통 영업부 과장 김말두>, <찌라시, 홍보물, 스티커 전문. 완당 마스터. 대표 구준엽>, <신속 배달. 현진 택배. 한기동> 같은 명함들을 그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는 문득 명함첩에서 일일이 명함을 꺼내는 것이 무척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명함이 필요 없다면 명함첩은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그는 명함첩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업무용 일기장 속에는 아직 깨끗한 속지가 많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 액자 속에 들어 있는 가족 사진도 가방 속에 넣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가족 사진을 꺼냈다. 가족 사진이 왜 서랍 속에 들어 있었는지 그는 의아했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가족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에는 나이가 들면서 지방과 외국으로 흩어지거나 급환과 교통사고로 죽은 그의 가족들이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듯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손을 꼭 붙잡고 있었을까?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그의 입사 동기지만 직급은 한 끗발 높은 K가 다가와서 열시 반에 상무님이 참석하는 <공격적 마케팅에 관한 전략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고 말했다. K가 난데없이 책상 정리는 왜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면서 프라이데이와 결별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프라이데이? 프라이데이가 누구지? 하고 물었다. 그는 K에게 프라이데이가 누군지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머리 속에서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까. 그는 이리저리 머리 속을 굴려보다가 문득 프라이데이는 내 친구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는, 하지만 어쩌면 프라이데이는 내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다시 말했다. K가 뭐야 지금 장난하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는 장난하는 것은 아닌데 프라이데이에 대해 잘 설명을 못하겠노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프라이데이가 누군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더구나 불충분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이었으므로 그는 딴청 피우듯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약간 머쓱해진 K는 덩달아 창 밖을 바라보았다.

창 밖에는 한 사내가 앞 건물의 유리창을 닦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사무실은 17층에 있었으므로 사내도 17층이나 16층쯤에서 유리창을 닦고 있었을 것이다. 사내는 손으로 조절하는 밧줄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가 보기에 사내의 장비는 다소 위험하고 원시적으로 보였다. 더구나 밖에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사내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도록 손으로 꼭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앞 건물에 매달려 있는 유리창 청소부는 그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사내는 이 근처의 빌딩 유리창 청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 직원으로 예전에 그의 회사에 유리창을 닦으러 왔을 때 그와 몇 마디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높은 빌딩에 매달려 유리창 청소를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늙은 사내였다. 그 늙은 사내는 빌딩 창문에 매달린 채로 유리창에 노크를 해서, 죄송하지만 물 한 컵만 얻어 마실 수 있겠느냐고 그에게 매우 공손하게 물었었다. 그는 흔쾌하게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환풍창을 통해 건네 주었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늙은 사내는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그가 가져다 준 컵은 아주 작은 것이었으므로 늙은 사내는 물을 마시고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가 컵을 받으면서 물을 더 드릴까요? 하고 묻자 늙은 사내는 그렇지만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정수기에는 물이 많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면서 두 번이나 더 물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늙은 사내에게 컵을 건네면서 자신은 높은 곳을 무서워해서 빌딩 유리창 닦는 일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이어 그는 나이도 많으신 분이 이렇게 높은 곳에 매달려 일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늙은 사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익숙해지면 무섭지도 않고 그리 힘들지도 않으니 대단할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오래 했냐고 물었다. 늙은 사내는 한 30년 정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늙은 사내는 그에게 컵을 건네주고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줄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었다.

그가 늙은 사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빗방울 몇 개가 예리한 각도로 유리창에 부딪혔다. 비가 오는군. 그가 말했다. 그럴 리가, 오늘은 날씨가 화창할 거라고 일기예보에서 말했는데? K가 옆에서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 빗방울 몇 개가 떨어졌는걸. 그가 다시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빗방울은 좀더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기예보 신봉자인 K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자코 창문을 바라보았다. 앞 건물에 매달려 있는 늙은 사내는 비가 내리자 옥상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옥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17층에 매달려 있던 늙은 사내는 자신이 앉아 있던 발판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늙은 사내의 허리춤에 있던 안전 벨트가 밧줄과 엉켜서 늙은 사내의 허리를 붙잡았다. 늙은 사내는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안전 벨트를 풀어보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 것 같았다. 늙은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안전 벨트를 잘랐다. 늙은 사내가 다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발판이 기우뚱했다. 순간, 늙은 사내의 몸이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늙은 사내가 급히 밧줄을 잡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늙은 사내가 잡은 밧줄은 이미 자신이 잘랐던 안전 벨트의 밧줄이었다. 늙은 사내는 안전 벨트와 함께 17층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그는 놀라서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 그는 자신도 모르게 1초, 2초, 3초 하고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늙은 사내가 17층에서 떨어져 지면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을 재었다. 사내가 떨어지는 시간은 딱 3초였다. 늙은 사내는 그의 삶에 남아 있는 마지막 시간을 공중에서 허둥대다 보냈다. 늙은 사내의 몸은 아스팔트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진 찰흙처럼 퍽! 하고 일그러졌다. 그 광경을 보고 그는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고무공처럼 몇 번 튕겨 오를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한 인간의 죽음을, 그것도 자신과 조금이나마 안면이 있었던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고작 떨어지는 시간이나 재고 있었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자신에 대한 일종의 배반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는 늙은 사내가 죽는 광경을 보고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왜 고무공처럼 튕겨 오르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없는 상상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아주 나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악마 같은 부류의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옆에 있던 K가 갑자기 아주 큰 소리로 "이봐! 이봐! 저기 사람 떨어졌어!" 하고 말했다. 그러자 사무실 직원들은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들처럼 진짜? 어디? 어디? 하고 소리지르면서 창가로 모여들었다. K가 유리창 청소부가 떨어져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직원들이 창가에 모여서 웅성거리거나 탄성을 지르면서 죽음을 구경하는 저마다의 놀라움을 표현했다. 눈이 나쁜 여직원 한 명이 저기 까만 쓰레기 재활용 봉투처럼 보이는 것이 그 시체냐고 K에게 물었다. 그러자 K가 "내가 처음부터 지켜봤는데 말이야 떨어지는 데 딱 3초 걸리더만, 죽는다는 게 그렇게 싱거운 일이야." 하고 신이 난 듯 말했다. 그는 K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K도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계속 K를 쳐다보자 K는 뭐 어떠냐는 듯이 어깨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는 K에게 "저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야" 하고 말했다. K는 저 사람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늙은 사내가 회사 유리창을 청소하러 왔을 때 자신이 물을 가져다 주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K는 피식 웃으면서 "여기 4천만의 친구가 나타나셨군." 하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K가 몹시 미워졌으므로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고 현장으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고 있었다. 사람들 때문에 찰흙처럼 일그러진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직원들은 "정말 신기하다.", "나는 사람 죽은 거 처음 봤어." 같은 말들을 떠들어대면서 모두들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직원들은 금세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는 책상 서랍을 다시 열어보았다. 이제 책상 서랍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는 프라이데이와 결별을 했으므로 더 이상 사무실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사무실을 나서기 위해 가방을 들었다. 가족 사진 액자 때문에 가방의 지퍼가 닫히지 않았으므로 그는 가방에서 가족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가족 사진을 다시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은 그가 버린 업무상 가치가 있거나 혹은 가치가 없는 서류 파일들과, 그가 이름을 보아도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 명함들로 이미 가득했으므로 그는 가족 사진을 버리기 위해 쓰레기통 안을 발로 꾹꾹 밟아야 했다. 그가 쓰레기통 안을 발로 꾹꾹 밟고 있을 때 다시 K가 다가와서 부장님도 참석하고 더구나 상무님까지 참석하니 열시 반에 있을 <공격적 마케팅에 관한 전략 회의>에 늦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그는 사무실을 나와서 잠시 휴게실에 들렀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고 담배를 피웠다. 몇 번이나 찢어질 듯한 싸이렌 소리가 빌딩 유리창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고개를 내밀어 늙은 사내가 떨어진 지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늙은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문득 아까 K가 말한 일기 예보를 떠올렸다. K가 들은 일기 예보에 따르면 오늘 날씨는 화창해야 했다. 그렇다면 유리창 청소부의 죽음에 기상청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비가 오는 줄 알았다면 늙은 사내는 유리창을 닦기 위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늙은 사내의 죽음과 상관없이 오늘 저녁 뉴스에도 여전히 예쁘장한 리포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일의 비 올 확률이 20% 라든가 혹은 비 안 올 확률이 20% 라고 말 할 것이다. 그러자 그는 조금 화가 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다.

열시 반에 그는 회사문을 나섰다. 물론 프라이데이와 결별했으므로 <공격적 마케팅에 관한 전략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 회의에 참석한다고 해도 공격, 전략, 마케팅에 대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격이니 전략이니 하는 말들은 언제나 그를 두렵게 만들곤 했었다. 그러나 그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장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장이 생각하기에 상무님이 참석하는데 나머지 부하 직원들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화가 난 부장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를 그에게 추궁할 것이다. 어쩌면 프라이데이가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퍽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그는 프라이데이가 누구인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만큼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회사 빌딩의 회전문을 밀치고 나왔을 때 회사 앞에는 119 구조대와 경찰들이 몰고 온 구급차와 경찰차 그리고 소방차로 혼잡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 노란 테이프로 선을 쳐 두었기 때문에 거리는 마치 폭탄 테러를 당한 도시처럼 삼엄하고 부산스러웠다. 그는 사내가 살아 있을 때는 알량한 밧줄 하나만을 내려주던 이 사회가 죽은 시체를 위해서 저렇게 막강한 장비와 인원을 보낸다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그는 늙은 사내의 마지막 모습이 어떻게 되었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지만 사고 현장은 너무나 복잡했고 또 관계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는 안내판을 붙이고 경찰들이 접근을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는 늙은 사내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빌딩 유리창에 30년 동안이나 매달려 살았고, 죽어서는 저렇게 관계자 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노란 테이프 속에 갇혀 있으니 늙은 사내의 인생은 무척 외로웠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방울은 이제 내리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한방 쏟아질 듯한 두껍고 무거운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일기예보가 사람을 죽이다니, 그렇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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