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비밀번호
   
  회원정보수정
  비밀번호확인
donga.com[여성동아]
여성동아 > 화제의 인물
  목록 아래로
 
 인물과 화제
     
 

[반갑습니다] 동양인 최초로 미스캐나다에 선발된
조   성   희

“미스캐나다로 활동하느라 한국음식을 오랫동안 못 먹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지난해 8월, 미스캐나다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인으로서 미스캐나다에 선발된 교포2세 조성희씨(크리스틴 조)가 지난 4월 한국을 찾았다. 백인중심 사회인 캐나다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높인 그를 만나 한국에 온 느낌과 아름다움의 비결, 그리고 앞으로의 꿈을 들어보았다.

지난해 8월, 미스캐나다 선발대회 50년 역사상 유색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스캐나다에 오른 교포2세 조성희씨(21·크리스틴 조)가 지난 4월6일 우리나라를 찾았다. 10일 간의 방문기간 중 ‘한국방문의 해’ 명예홍보위원 위촉, 청와대 방문, 각종 방송출연, 자선행사 참석 등 바쁜 일정을 보낸 그를 어머니 채병희씨(49)와 함께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는 기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할 만큼 기침을 계속했다. 서울의 공기가 그가 살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탁한 데다, 황사현상까지 극심한 탓일 게다. 하지만 캐나다를 대표하는 ‘미의 여왕’답게 시종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미스캐나다로 선발된 후 대학(토론토대학 영문과)을 휴학한 채 1년 동안 캐나다를 대표하는 미의 사절로 캐나다 각지와 세계각국을 돌아다니며 활동하고 있다. 미의 여왕으로 활동하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포기하고 쉬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한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요.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고…. 한국을 찾은 이유도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미의 여왕’이라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지만 아직은 갓 스물을 넘긴 어린 나이. 낯선 곳에서 끊임없이 낯선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아시아를 여행하는 일정이 잡히자 무조건 한국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곳이라고 마음놓고 푹 쉴 수만은 없지만 그는 부딪치는 사람들마다 같은 피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니까 친근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에요. 한국에 친척들이 살거든요. 그래서 낯설지가 않아요. 서울은 캐나다보다 사람들도 많고, 바쁘게 움직여서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아 좋아요.”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청바지 입고, 화장 안하고, 머리도 풀어헤친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단다.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데 일정이 빡빡해 제대로 구경을 못하고 돌아가게 돼 아쉽다고.

“며칠 전 남대문시장에 갔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캐나다에는 이런 쇼핑몰이 없거든요. 이곳저곳 구경하면서 물건 사는 게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에게 줄 핸드폰 액세서리를 샀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는 오는 8월 자신의 임기가 끝나면 다시 한번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한다.

김치찌개, 육개장 등 매운 음식 즐겨

처음 그를 만나러 갈 때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교포 2세라 한국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정작 만나보니 교포2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우리말에 능숙했다. 게다가 한국음식도 잘 먹는다고. 그러기까지는 어머니 채병희씨의 남다른 자식교육이 한몫했다.

캐나다에 살던 남편 조준상씨(52)와 결혼하면서 75년 캐나다로 간 채씨는 다른 이민온 한인들이 자식교육 때문에 고민하고, 심지어 이민온 것을 후회하는 것을 보며 자녀교육을 다른 무엇보다도 최우선에 두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못해 부모와의 대화가 단절되고, 한국음식이 냄새가 난다며 싫어하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으면 캐나다인으로서도 올바로 설 수 없다는 게 채씨의 생각. 그래서 그는 조성희씨를 비롯해 3남매를 키우는 12년 동안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을 하며 자식교육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한국말을 가르쳐주셨어요. 학교에서는 영어를 쓰지만 집에서는 한국말을 하도록 하셨죠.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두 시간씩 한글을 배웠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왜 어머니가 저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셨는지 알게 되었지요.”

조씨는 한때 한국말을 배우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별 필요가 없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국말을 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저절로 같은 민족끼리 뭉치게 돼요. 인도인은 인도인끼리,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모여요. 한국인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쓰게 되죠. 그래서 한국말을 못하는 친구들은 그것 때문에 창피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또한 채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식탁에 한국음식만 올려놓았다고 한다. 처음엔 먹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배고프니까 먹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자꾸 먹다보니까 한국음식에 길들여졌다.

“김치찌개랑 육개장 같은 매운 음식을 좋아해요.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한국음식을 못 먹을 때면 한국인 식당을 찾아가서라도 꼭 먹어야 할 정도로 좋아해요. 미스캐나다가 되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매운 한국음식을 못 먹는 것이었어요.”

그는 키 172cm, 몸무게 50kg, 신체사이즈 34-25-34의 날씬한 몸매를 가졌지만 식탐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군것질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그런데도 늘씬한 몸매를 관리하는 비결은 운동. 시간이 나는 대로 헬스클럽에 가는 게 취미란다. 어려서부터 남자애들하고 야구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등 운동을 좋아했다는 그는 공부를 두 시간 하면 밖에 나가 두 시간은 뛰어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에겐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살을 빼기 위해서 운동을 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잖아요. 저에겐 오히려 운동이 스트레스를 푸는 제일 좋은 시간이에요. 뛰다보면 몸은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안정이 되어서 좋거든요.”

미스캐나다에 선발된 후 쉼 없는 해외여행과 빡빡한 일정으로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그는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하루 한시간 이상 운동을 한다고 한다.

사실 그는 우리의 시각으로 보기에 빼어난 미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캐나다 최고의 미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같은 동양인이 보는 미인의 기준과 서양인이 보는 동양 미인의 기준이 다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적인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대회에 나오는 여자들이 그냥 예쁘게 보이려고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표현한 게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웃을 때도 예쁘게 웃으려고 노력하지만 전 크게 웃고, 말을 할 때도 자신감이 있으니까 심사위원들이 그런 모습을 좋게 본 것 같아요.”

출전하면서부터 좋은 성적을 기대했었냐는 질문에 그는 꼭 미스캐나다에 뽑혀야겠다는 욕심을 갖고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하나의 재미있는 추억이 되겠다 싶어 출전했던 것이라고.

“한국 학생들은 서른 살이 되도록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쓰지만 캐나다에서 그러면 다 비웃어요. 저도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용돈을 벌었어요. 서빙도 하고, 과외도 하고, 바이올린 교습도 하고, 옷가게에서 일도 하고, 모델도 하고요.”

미스캐나다 된 후 인종차별 느껴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그가 모델활동을 하던 것을 지켜본 사람이 미스캐나다 선발대회에 출전하라는 권유를 해온 것이다.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여겼지만 생각해보니 출전하는 자체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물론 미인대회에 나간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면 하라”며 적극 후원을 했다고 한다.

“미인대회 출전은 그 나이의 여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말려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빨리 한번 해보고 포기하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떨어진 후에 다시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있냐고 물어봤어요.” 그게 어머니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채씨의 말이다.

부담없이 출전한 대회여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내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했고,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스캐나다의 왕관을 쓰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아름다움은 단지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빼어난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활동을 하다보니까 아름다움은 자신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얼굴만 예쁜 사람은 이야기하다보면 오히려 더 미워질 수가 있어요. 머리에 든 것이 많고 교양이 있어서 이야기를 할수록 끌리는 사람이 진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미스캐나다가 되어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한다. 인종편견이 없는 줄 알았던 캐나다에서조차 동양인이 뽑힌 것을 두고 싫어하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전에는 인종차별을 느끼지 못했는데 미스캐나다가 되면서 인종차별을 느꼈어요. 마음이 아팠죠.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조차도 진정한 미스캐나다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또한 미스캐나다로 활동하면서 자기가 하기 싫더라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통해 인내하는 법을 배우는 등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다며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v 우리나라는 미스코리아가 되면 대부분 연예인이 된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할 정도. 앞으로 연예계에서 활동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그쪽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아직은 어려서 그런지 꿈이 많아요. 교수가 되고 싶은 꿈도 있고, 또 방송앵커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아무튼 지금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요.”

그는 대학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영어에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한다. 특히 작문은 항상 최고점수를 받는다고 어머니 채씨가 자랑한다. 지도교수가 “유색인종이 백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느냐”며 “넌 그럴 수 있다”고 격려해줄 정도라고.

미스캐나다 임기가 끝나면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그에게 데이트할 애인은 있냐고 물어보았다. 친구는 많지만 결혼을 생각하는 이성은 아직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결혼이란 단어를 생각하기도 싫다며 웃는다.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전 다른 나라 사람이라도 괜찮은데 부모님은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자신의 생각을 자신있게 이야기하면서도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는 그를 보면서 동양적 미덕과 서양적 사고의 장점을 고루 가진 것 같아 좋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아름답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사진·정경택 기자

기사 입력시간 : 2001.5.14

 
  목록 위로
 
         

e-커머스

소호 쇼핑몰
인터넷복권
공동구매


생활정보 가이드

동아 베스트 닥터
구인구직가이드
옐로우페이지


 
  | 제휴안내 | 광고안내 | 여성동아 사람들 l 잡지구매 |   ▲ up
  Copyright 2001 donga.com Privacy policy.
각종 문의: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