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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숨은 사연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 통해 개인사 털어놓은 작가 권지예

“고등학교 때 동생 작품 표절해 백일장 장원, 동생 떠난 뒤 그 몫까지 열심히 쓰겠다고 결심했어요”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 ■ 사진·박해윤 기자

2004. 05. 10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나타난 작가 권지예씨가 최근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을 펴냈다. 그가 암으로 죽은 여동생을 위해 작가가 되어야 했던 사연을 처음 털어놓았다.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 통해 개인사 털어놓은 작가 권지예

단편 ‘뱀장어 스튜’로 200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 권지예씨(44)가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을 펴냈다.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1970년대 청량리와 전농동을 배경으로 김혜진이란 12세 여자 아이가 사랑과 죽음, 아픔을 겪으며 한 여성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많은 부분 권씨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꿈은 크지만 늘 실패를 거듭하는 군인 출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내조하면서 네 자녀를 키우느라 점점 더 그악스러워지는 어머니, 그리고 열일곱살에 세상을 떠난 바로 밑의 동생을 비롯한 애틋한 동생들까지…, 그의 가족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지옥’은 작가의 자전소설이라는 문패를 달았고, 이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누군가 권씨를 두고 “새침떼기 같은 도시풍의 여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얼굴은 ‘전형적인(?) 이대 영문과 졸업생에 프랑스 같은 고상한 나라에서 유학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첫인상은 그 말 그대로였다. 아담한 체구에 예쁘장하게 생긴, 세상의 풍파는 다 비껴갔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런 권씨를 보고 처음엔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단 한번도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언제나 삶이란 그저 견디는 것”이라고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푸르름이 점점 짙어가는 봄날에 꽃을 보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그에게서 새침떼기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소탈하고 솔직하고 순수했다.
“어느날 남편이 출장을 갔다오더니 파리에 반해, 유학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권씨는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6, 7년 동안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서 집도 막 장만하고 이제 안정된 생활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남편의 느닷없는 제안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반대를 했다. 그러다 똑같은 일상이 지겹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힘들게 내린 그 결정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영어교사 그만두고 남편 따라간 파리에서 작가의 꿈 키워
권씨는 91년 여름 남편과 함께 어린 딸을 데리고 파리로 떠났다. 처음 1년 정도는 살림만 했는데, 줄곧 직장생활을 하다가 살림만 하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한다. 그러다 점점 생이 막막하고 무료해지면서 “내가 왜 이런 낯선 곳에서 이렇게 30대를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꼭 움켜쥐기 위해 연필을 잡았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는 바로 그가 지나온 길들이었다.
‘아름다운 지옥’은 그렇게 92년 봄 프랑스에서, 아파트 정원의 하얀 자두나무 꽃그늘 아래에서 시작되었다. 생각나는 대로 그냥 쭈욱 써내려가면서 절반 정도 정리를 했을 무렵 권씨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것을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그러다 2년 전부터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하기 시작해 이번에 완성을 했으니 꼭 12년에 걸쳐 이루어낸 결실이다.
“그저 자유롭게, 한 여자 아이가 미로 같은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길을 비추기도 하고, 타인들의 색유리 조각 같은 삶을 비추기도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세상에 때가 묻고 닳고 닳아서 세상이 이런 거지 뭐,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을 되돌아 순수하고 풋풋했던 시절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 통해 개인사 털어놓은 작가 권지예

권지예씨는 ‘아름다운 지옥’을 완성하는데 12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을 쓰면서 권씨는 참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자전적 소설이라고 규정하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그러면 독자들이 ‘이 이야기는 권지예 이야기다’라고 판에 박아 생각할 텐데, 그게 싫더라고요.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다 곧 마음을 비웠다.
“소설에는 어차피 소설가의 삶이 묻어나는 건데, 자전소설이라 하고 안 하고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었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소설 속 주인공인 김혜진이 나인 것 같았어요. 내 안의 것을 풀어낸다는 식으로 썼지요.”
권씨는 ‘아름다운 지옥’을 쓰면서 ‘작가인 나’와 ‘주인공인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로서 통과의례처럼 넘어야 할 과정이라면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권씨 자신이 아니었다.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였고, 특히 가족들이 문제였다.
“남편은 소설을 알고 이해해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워낙 어릴 때 만나 연애를 했기 때문에 다 아니까 신경쓰이지 않았어요. 시집 식구들은 다르잖아요.”
권씨의 남편은 책이 나오자 자신의 형과 누나에게 주자고 했다. 그는 주기가 싫었다고 한다. 시집 식구들이 이 소설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혜진이 교외의 한 여관에서 박영문과 처음으로 성관계를 갖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단지, 이 소설이 자전소설이란 이유로 소설의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그 부분마저도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까봐 조심스럽고 어색했던 것이다. 이렇게 시집 식구들을 신경쓰는 권씨의 모습은 평범한 한국의 여느 주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권씨는 벌써 결혼한 지 18년이나 된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다락방’이라는 문학동아리에서 문학을 공부했는데, 거기서 지금 미술평론가로ㅋ 활동하는 남편을 만났다. 당시 미학을 전공하던 남편은 시분과에 있었고, 그는 소설분과에 있었다는데 어느날 남편이 소설분과에 놀러와 서로 알게 되었고, 권씨가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결혼을 했다.
그후 살면서 남편은 아내가 문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 같아 데리고 살았더니 말짱 꽝이잖아” 하는 농담섞인 말을 던지면서 아내가 소설을 쓰도록 항상 자극했다. 끝까지 자신의 재능을 믿어준 남편이 있어 권씨는 든든했다고 한다.
권씨의 남편은 아직 시집은 안 냈지만 ‘시문학’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권씨에겐 누구보다 좋은 문학적 동지였다. 남편은 미술과 문학에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진도 잘 찍는다. 두 번째 소설집인 ‘폭소’에 담은 사진과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담은 사진이 모두 남편이 찍은 것이라고.
“제가 걱정이 많고 소심한 편인데, 남편은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서로 성격이 다르니까 다른 점이나 부족한 점을 채워주게 되고, 좋은 거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걱정이 많고 성질이 급한 제가 늘 일처리를 하게 된다는 거지요(웃음). 그래도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남편의 낙천적 성격이 굉장히 힘이 돼요.”

그렇게 치명적인 줄 몰랐을 만큼 고통 드러내지 않았던 동생
권씨가 지금 이렇게 작가가 된 것은 그의 문학적 재능에 남편의 외조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남편은 늘 이게 다 자기 덕이라고 말해요. 자신이 아니었으면 지금 그냥 그런 선생님이었을 거라고. 사실 맞는 말이죠(웃음). 그래도 전 남편 때문에 내가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했다고 오히려 투정부리죠.”

자전소설 ‘아름다운 지옥’ 통해 개인사 털어놓은 작가 권지예

2000년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손꼽히는 작가 권지예씨.


권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큰딸은 지금 고1이며,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두 아이가 터울이 많아요. 아들은 파리에 있을 때 낳았는데….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하나냐 둘이냐에 따라 정부 보조금이 차이가 많아요. 그래서 둘째를 낳았죠(웃음).”
아들은 책이 나올 때마다 담임선생님 갖다드린다고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쑥스럽다고 한다.
권씨는 자신의 첫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의 서문에, 자신에게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의 마음을 알게 했던 천재 동생이 있었다며, 열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 동생에게 소설집을 바친다고 썼다. 그의 가슴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을 동생의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이 그의 아픔을 들추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소설을 쓴 계기가 죽은 동생 때문이냐고 묻자, 권씨는 뜬금없이 여고시절 교내 백일장에 참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글짓기를 해서 상다운 상을 받았는데, 그는 집에 가서 자랑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누가 알까 자신의 수상소식이 실린 교내 신문기사를 꼭꼭 숨겼다고 한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는데,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표절이었어요. 백일장이 있기 얼마 전 우연히 동생의 문집을 발견하고 그 속에 있는 ‘육손이 엄마’라는 동화를 몰래 읽었어요. 그런데 백일장의 주제가 ‘창’ ‘눈’ ‘손’ 인 거예요. 저는 번개를 맞은 듯 ‘손’이란 제목으로 빠르게 글을 써내려갔죠.”
그렇게 동생의 작품을 가지고 상을 탄 그는 글 잘쓰는 아이로 전교에 소문이 났고,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 들통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틈만 나면 도서실에서 책을 대출해 읽었다. 그렇게 그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권씨가 결정적으로 소설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바로 동생의 죽음이었다. 권씨가 대학생이 된 스무살 초겨울,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세 살 아래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은 죽는 날까지 한번도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고통을 삼켰다. 그래서 권씨는 동생이 죽기 얼마 전까지 동생의 병이 그렇게 치명적인 줄 몰랐다고 한다.
“동생이 죽고 얼마 뒤, 어머니와 동생이 쓰던 흰 베갯잇을 빨려고 뜯었더니, 그 속의 등겨를 싼 자주색 나일론 천이 눈물로 더께가 앉았는지 검게 굳어져 있었어요. 두 사람 것이 다 그런 거예요. 두 사람이 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밤마다 서로 들키지 않게 몰래 눈물을 흘렸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동생은 재로 흩어졌지만 권씨는 동생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우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작가가 돼서 동생 몫까지 자신이 열심히 쓰겠노라고 결심했고, 지금 그것을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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