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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기획특집│와인 제대로 즐기기

”와인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탤런트 김형일 부부와 함께 떠나는 와인 여행

■ 글·이선민 ■ 사진·최문갑 기자

2002. 10. 09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분위기’를 찾는다. 바람이 차가워지면서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거리를 떠올리며 분위기 좋은 곳에서 와인 한 잔 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가을 바람이 선선한 어느 날 잉꼬 부부로 소문난 탤런트 김형일씨 부부가 신세대 와인전문가 최성순씨와 함께 와인여행을 떠났다.

”와인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와인전문가가 권하는 와인병을 꼼꼼히 살펴보는 김형일씨.

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비워준다. 한 잔 술을 마시고 나면 세상 만사가 그렇게 힘든 것만도 아니라는 여유를 갖게 되고, 두 잔 술을 마시고 나면 옆에 앉은 모든 사람이 벗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세 잔 술을 마시며 묵은 감정을 털어내고 모두가 하나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술의 힘이 아닐까?
그러나 묵은 감정을 털어내는 경지를 넘어서면 풀리던 한이 다시 응어리가 지면서 술판에서 싸움이 일고 다음날 눈을 뜨면 술이 원수처럼 느껴진다. 술은 적당하면 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이라고 하는데 그 중용의 도를 지키기 어려워 우리에게 독으로 와닿을 때가 많은지도 모르겠다.
소주는 조금만 마셔도 이성을 잃게 하는 독함을 지녔고, 맥주는 아무리 마셔도 기분 좋은 취기보다 포만감이 먼저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취기도 적당히 느끼기에는 와인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와인의 태생 자체가 그렇지 아니한가?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점심이건 저녁이건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마냥 먹고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다.
느림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와인이 요즘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도 바로 답답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고 싶은 현대인의 마음을 반영한 것일 터. 즐거운 사람과 함께하는 와인 여행. 걸쭉한 목소리와 그에 걸맞는 외모를 지닌 김형일씨(42) 부부와 와인이 좋아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와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와인 전문가 최성순씨의 와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평소에도 부부끼리 대작하는 애주가 부부
소녀 같은 분위기를 지닌 아내 한복희씨(37)와 훤칠한 체격을 자랑하는 김형일씨 부부. 최근 TV에 자주 얼굴을 비추며 금실을 자랑하던 그들이 삼청동으로 와인나들이를 나섰다. 삼청동 대로변에 있는 호젓한 레스토랑 콩두. 바쁜 스케줄이지만 잠시 짬을 내 와인을 맛보기로 한 곳이다.
“전 레드 와인이 좋아요. 달콤하면서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가 다른 술은 못 따라오는 것 같아요. 연애할 때 형일씨를 따라다니며 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많이 마시진 못해요.”
남편과 매일 대작을 하다보니 맥주 한두 병쯤은 너끈히 마시고 분위기에 맞춰 술을 즐길 줄 아는 애주가가 됐단다. 연애할 때는 위스키를 주로 마셨지만 요즘은 소주를 자주 마시는 걸 보면 이제는 알뜰파 생활인이 다 됐다는 한복희씨.
얼마 전 히말라야를 등정하고 돌아와서 곧바로 동해를 헤엄치며 듬직한 외모만큼이나 강한 체력을 지녔음을 보여줬던 김형일씨는 요즘 브라운관보다 스크린에서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안성기, 최지우와 함께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남겨둔 상태이고, 곧 새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 출연할 예정이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는 그의 평소 이미지대로 경호대장으로 분했다.
영화로 데뷔를 해선지 드라마보다는 영화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는 김형일씨. 겹치기 출연이 잦은 드라마에 비해 영화가 완성도나 집중도에서 더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래도 TV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에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 것이기 때문에 뜸하다는 인상은 주지 않을 것이란다.
김형일씨는 털털한 외모와 달리 매우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다. 집안에 있는 주방용품 대부분은 그가 바꾼 것이고, 틈만 나면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곤 한다. 요즘처럼 바빠서 한씨 혼자 갈 때는 시장 아줌마들이 “요즘 신랑이 바쁜가보지?” 하고 안부를 물을 정도다. 또 촬영을 위해 해외로 나가야 할 때도 가급적 아내와 함께 나간다. 혼자 집에 남아 있을 아내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찡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이를 유산하고 난 후에는 더욱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중이다. 아이가 없어서 항상 신혼인 듯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한씨의 일과는 아이를 갖기 위한 체력 키우기. 두 사람 다 아무 문제 없는데도 아이가 안 생기는 것을 보면 부부 금실이 너무 좋아도 아이가 안 생긴다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와인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습니다.”

와인라벨에는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와인애호가 중에는 라벨만 따로 모으는 경우도 있다.

김형일씨는 특별한 일 없으면 항상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주종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소주가 제일 좋은 것 같다”며 원래 자신은 독주 체질인 것 같다고 하며 웃는다. 아내 한씨는 술 그 자체보다 분위기를 즐기기 때문에 와인이 좋지만 독주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자주 먹지는 못한다고. 그러나 김형일씨도 요즘은 맥주를 즐기고 있다. 운동 처방을 해주는 전문가가 맥주가 다른 술보다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술 예찬론자인 그도 한동안 술을 딱 끊은 적이 있다. 히말라야 등정을 앞두고 석달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때 키워놓은 체력으로 속초에서 금강산까지 도영하는 행사에 곧바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했던 경험을 살려 앞으로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것도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무슨 와인을 드시겠어요?”
최성순씨의 한마디에 난감해하는 김형일씨. 일반 사람들처럼 와인을 어려운 술로 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술이 다 똑같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와인은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무슨 이름이니, 종류니 하는 것이 왜 그리도 많은지 섣부르게 말을 꺼냈다가는 망신당할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와인은 본산지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물이나 우유 같은 대중적인 음료일 뿐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는다
“와인을 잘 모를 때는 소믈리에에게 자신의 취향을 알려주고 골라달라고 하세요. 소믈리에는 와인을 소개해주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적당한 것을 골라주거든요. 그리고 초보일 때는 너무 비싼 것을 고를 필요가 없어요.”
이날은 레드와인을 좋아하는 한복희씨의 취향에 맞춰 드라이하지만 부드러운 맛의 칠레산 마르케스 멜로를 맛보기로 했다. 칠레산 와인은 같은 질의 프랑스산 와인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맛이 뛰어난 편이라고 한다.
“잘 알려진 와인들은 대부분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처럼 유럽 산이 많습니다. 그밖에도 호주나 캘리포니아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요. 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게 보면 더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은 와인을 찾을 수 있어요.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도 수준급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거든요. 아직 덜 알려졌거나 지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싼 거죠. 싸다고 다 나쁜 것도, 비싸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적당한 예산에 맞춰 이것저것 시도해봐야 내 입맛에 맞는 좋은 와인을 찾을 수 있게 되지요.”
또 오래된 것이 좋다는 생각에 무조건 연도가 오래된 것을 고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피해야 할 일이라고 최씨는 충고한다. 오랜 시간 보관할 때는 보관 상태가 와인의 맛을 좌우하는데 제대로 보관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와인을 보관하는 최적의 상태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 전문 와인숍이나 와인바가 아닌 경우 좋은 와인이 햇빛을 받아 상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와인이 상했을 때는 시큼하거나 고무 냄새, 에나멜 냄새처럼 기분 나쁜 냄새가 납니다. 소믈리에가 따라주는 와인을 테스팅할 때 바로 이 점을 살피는 거예요. 내 취향에 안 맞는다고 와인을 바꿔달라는 게 아니라 와인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체크해서 교환 여부를 결정하지요.”
음식과 같은 색깔의 와인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
술에 따라오는 것이 바로 안주. 와인은 대부분의 음식과 궁합을 맞출 수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블랙올리브나 치즈, 크래커, 바케트 등과 같은 안주가 가볍게 곁들이기에 좋다. 김형일씨 부부는 평소 낚시를 자주 다니기에 술과 안주 이야기에서 낚시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잡자마자 회를 떠서 먹으면 맛있겠다”는 최성순씨의 말에 김형일씨는 모르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친다. 고기를 잡아서 몇시간 동안 얼음 속에 넣어 살짝 언 듯한 상태가 되었을 때가 가장 맛이 좋은 때라고 낚시광다운 조언을 한다.

“어떤 음식에 어떤 와인이 잘 어울릴까 고민이 된다면 음식 색깔에 맞는 와인을 고르는 것이 좋지요. 보통 고기에는 레드, 생선에는 화이트라고만 생각하는데 정해진 것이 아니거든요. 흰살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 어울려도 붉은 색이 도는 생선 중에는 레드가 어울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사람이나 음식과 마찬가지로 융통성을 발휘하면 큰 문제가 없는 것이 바로 와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 와인을 맥주 마시듯 벌컥 들이키지 않아야 한다. 와인을 따르고 나면 잔을 약간 기울여 빛깔을 보며 눈으로 느끼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 와인 잔의 목부분을 잡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여러 번 돌려 잔 입구에 향이 모이면 코로 한 번 음미한 후 혀를 적시는 기분으로 조금씩 들이켜 맛을 음미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 와인잔을 잡을 때도 둥근 볼 부분이 아닌 긴 목을 잡아야 와인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와인은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와인의 맛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김형일씨는 독주 애호가답게 벌컥 들이키려다 최씨의 지적을 받고 쑥스러운 듯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최성순씨는 와인이 좋아 잘 나가던 회사도 그만두고 와인 사이트를 개설한 후 일주일 내내 와인을 마시는 와인 전문가이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상식을 뒤엎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1천여 가지의 와인을 마셔봤지만 여전히 와인의 오묘한 맛을 다 표현하기는 힘들다고.
보통 레드 와인은 타닌의 씁쓸한 맛이 매력이고 화이트 와인은 과일향을 맛볼 수 있으며 샴페인은 톡 쏘는 맛이 그만이라며 초보자에게는 화이트 와인이 적당하다고 권했다.
“독일의 리슬링이나 호주, 미국산 샤도네면 무난할 거예요. 달콤한 맛이 부담 없거든요.”
레드 와인은 너무 부드럽지 않고 약간 떫은맛이 나는 게 좋은 것으로 초보자에게는 보졸레가, 육류나 치즈 요리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적당하다. 식전에는 식욕을 돋워주는 샴페인이 좋다고 한다.
여러 와인을 싼값에 다양하게 시음하는 좋은 방법은 와인 시음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2만∼3만원의 회비만 내면 새로 나온 와인을 맛볼 수도 있고, 와인에 대한 강연도 들을 수 있으므로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보자가 가볼 만한 곳이다. 만약 시음회에 가기 힘들다면 가까운 레스토랑이나 와인 매장에 들러 테스팅해볼 수도 있다.
“이것저것 마신 후에 이름과 맛에 대해 메모를 해두는 습관을 갖는 것도 미각을 키우는 방법이에요. 와인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길이 바로 많이 마셔보는 거지요.”
포도 품종만 알아도 맛은 비슷하기 때문에 와인 사이트나 와인 서적을 통해 기본적인 것만 익혀도 웬만한 자리에서 실수하는 일은 없단다. 남자들이 양주 한 병 먹는 값보다는 싼 편으로 경제적 부담 또한 그다지 큰 편은 아니지만 더욱 저렴하게 다양한 맛을 즐기고 싶다면 와인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 세 사람이 와인에 대해 서로 의견일치를 보는 동안 와인은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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