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2호/200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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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공무원은 놀고 먹는다?

업무 적고 인사 부담 업어 일부에선 근무 태만 … 행자부 지침, 관리시스템도 부재

사례 1. 건설교통부 산하 한 정부투자기관에 근무하는 엄기호씨(30·가명)는 지난해 가을 파견 나와 있던 공무원들의 기간 만료가 다가오니 연장을 요청하는 공문을 작성하라는 '뜬금없는 지시'를 받았다. "(파견 공무원들과) 같은 사무실을 쓰기는 하지만 캐비닛을 벽처럼 세워두어 완전히 다른 방처럼 분리돼 있어요. 그 사람들을 우리 부서에서 관리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직제를 확인하고 나서야 알았지요."

결국 엄씨는 그 대상자가 '기관의 긴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파견기간 연장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정말 긴요한 업무를 수행하느냐고요? 그 사람들 명의로 공문 한장 나간 적 없고, 제대로 된 업무협의 한번 해본 적 없다면 말 다했죠."

업무용 컴퓨터에는 증권거래 화면이 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자리를 비우고, 1시를 한참 넘어서야 들어오는 것은 애교에 속한다. "감사 앞두고 모든 부서원이 일주일째 야근하는데, 자기들만 6시 땡 치면 가방 챙겨들고 나가는 거 보면 열받죠."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나오는 기념품이며 하계휴가 콘도 사용은 꼬박꼬박 챙기는 게 더 얄밉다고 엄씨는 말한다.

사례 2. 경기도 용인의 경찰대학 내 치안연구소에 연구관으로 나가 있는 한 경찰 간부(총경)는 평일에도 골프를 즐긴다. 경찰대학 구내에 마련된 골프 코스에 오후 라운딩을 나가는 것. 다른 연구관이나 교수요원들의 예약이 많아 매일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울에서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근무시간에 골프장에 나서는 것이 개운치는 않지만 연구관마다 개별 사무실이 마련돼 있어 눈치볼 필요는 거의 없다. 골프가 아니더라도 자리를 비우는 데 큰 부담은 느끼지 않는다. 간혹 경찰대 학장 차원이나 연구소장 차원에서 평일 골프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치안연구소는 격무에 지친 간부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자리'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까닭에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대신 골프장에 근무하는 의경들에게는 외부 사람이 물을 때 '일과시간이 끝난 이후에나 골프를 친다'는 모범답안을 내놓도록 교육시켜 뒀다.

사례 3.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제시카 강씨(24)는 지난해 한국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문을 연 현지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3급 소장과 2명의 직원이 나와 있는 이 사무소 사람들을 보고 그는 '세상에 이렇게 팔자 좋은 사람들이 있나' 싶었다고 말한다.

"시차 때문에 근무시간이 한국과는 정반대예요. 한국에서 전화가 올 리도 없으니까 큰일이 없는 한 적당히 출근해 있다가 적당히 퇴근하는 거예요." 소장은 시간 날 때마다 골프가방을 둘러매고 자리를 비우기 바빴고 직원들도 덩달아 사라지기 일쑤였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나들이 올 때만 바쁘죠. 스케줄 맞춰 마중 나가고 관광 코스 안내하고."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종 부리듯 하는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다는 강씨는 결국 2개월 만에 사무실을 그만뒀다. "한국에서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뭐 크게 달랐겠어요?"

공무원 파견제도란 관계법령에 따라 정부 부처간 업무 지원이나 인력 교류를 위해 부서 외부로 직원을 보내 근무시키는 것을 말한다. 크게는 '일을 하러 나가는' 직무파견과 '공부하러 나가는' 교육파견으로 나뉘고, 이는 다시 각각 국내와 국외로 갈린다. 이러한 부처간의 공식파견을 허가하고 처리하는 것은 행정자치부 인사과. 그러나 산하기관이나 단체로의 파견, 산하 연구조직 등으로의 이동, 해외 사무소 근무 등도 넓은 범위에서 파견으로 보는 것이 공무원 사회에서의 일반적인 개념이다.

'색다른 경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주무부서인 행자부조차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파견 나가 있는지 정리된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대형 부처들만 살펴보면 재정경제부 89명(본부 정원 641명), 외교통상부 59명(재외공관 포함 본부 정원 1500명 내외), 건설교통부 120명(본부 정원 900명) 가량이 현재 파견 중이라는 것이 각 부처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앞서 설명한 근무태만 사례들은 예외적인 경우일 수도 있다. 당사자들은 파견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2의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로 파견 나와 1년6개월을 보낸 박선광 팀장은 "법조문과 틀에 박힌 업무를 벗어나 행사 프로그램 진행이나 주요 인사들과의 회의 같은 귀한 경험을 얻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에서 일하는 10년차 한 공무원은 "대부분의 경우 파견은 특혜"라고 잘라 말한다. 어차피 원 부처로 돌아갈 사람에게 주요 업무를 맡길 기관도 없거니와 인사평정 역시 제대로 매겨지지 않는 마당에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계급 연한이 찬 사람의 경우에는 파견이 왕따일 수도 있지만,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잠시 나가 쉬었다 오라'는 뜻에 가깝다."

파견을 어디로 나가느냐에 따라 근무의 성격은 달라진다. 상급기관이나 '끗발 있는 부서'로의 파견은 소속 부서에 남아있는 것보다 오히려 더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급기관이나 산하단체로의 파견은 '당연히 업무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당도 마찬가지. 파견공무원의 월급은 소속 부서 예산에서 나오지만 파견수당은 파견기관에서 지급한다. 상급기관에 나가면 수당이 아예 없거나 소액인 경우가 많지만, 하급기관이나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정부투자기관의 경우는 월 70~80만원의 높은 수당을 받기도 한다.

문제 있어도 교체 요구는 드물어

파견을 받는 입장에서는 어떨까. 고속철도관리공단 직원들은 공단에 파견 나와 있는 150여명 철도청 공무원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해 있다. "자신들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대등하게 업무를 나눌수 있겠나." 공단 노조 관계자는 철도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9급 공무원이 공단의 대졸 신입사원과 같은 직급으로 규정돼 있는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견을 받은 기관에서 제대로 근무성적 평정을 매기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사례 1의 엄씨는 "이들의 경우는 그냥 최우수, 우수 등의 점수를 매겨 소속 부서에 보내는 것이 관례"라고 전한다. 고속철도공단의 경우 파견 공무원들의 근무평정을 담당하는 1차 책임자인 해당 부서장 역시 파견자다.

제도에도 맹점이 있다. 행자부는 파견자들의 근무평정 문제에 대해 분명한 지침이나 관리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파견을 내보낸 부서가 외부에서 보내온 근평을 반영하기 싫으면 그뿐인 것. 파견자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어 교체를 요구하는 경우도 "몇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드문 케이스"라는 게 행자부 담당자의 설명이다. 이쯤되면 그냥 놀고 먹는 공무원이 있어도 파견받은 하부기관으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행자부측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담당 과장은 "공무원들의 책임감에 맡겨야 할 문제라고 본다.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는 파견공무원은 극소수가 아니겠나. 외부에서 일일이 감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므로 파견받은 기관의 장이 역량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례 3의 제시카 강씨는 "미국에서도 공무원들이 욕을 먹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그게 다 세금 축내는 일이잖아요.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이런 불합리한 점부터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 황일도 기자 > jockey@donga.com


해외파견 나가보니…

수당으로 생활 …'남는 장사'에 지원자 쇄도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해양수산부 등의 중앙부처는 재외공관에 주재관을 두고 있다. 이들 주재관은 2002년 현재 모두 231명(외교통상부 통계). 이들의 경우 수당 등 모든 보수가 외교부 예산에서 지급된다. 부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해외자료 수집, 파견국과의 업무협의 등의 업무 부담은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는 것이 경험자들의 한결같은 전언.

정부 중앙부처 4급 서기관인 L씨(38)는 몇년 전 러시아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파견기간 중 L씨는 관련규정에 따라 추가수당을 지급받았다. 파견자와 가족이 머물 아파트 등 주거와 사용할 자동차는 별도 지급. 한마디로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 비용은 수당만으로도 해결됐다"는 것이 L씨의 경험담이다. 그가 지급받은 수당을 현재의 규정에 따라 재구성해보자.

재외근무수당은 파견 국가와 공무원 직급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 러시아에 근무하는 4급 공무원의 경우 월 2300달러. 여기에 특수지 수당이 추가로 붙는 경우도 있다. 결혼을 해 1남1녀를 둔 L씨에게 붙는 가족수당은 부인이 재외근무수당의 4분의 1, 자녀는 각각 60달러, 도합 700달러 가량이 된다. 러시아어 3급 검정을 통과한 L씨는 월 100달러 가량의 특수외국어 수당도 받는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은 외국인학교를 다녔지만 학비와 병원비는 전액 실비 정산이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월 3100달러가 된다. 반면 줄어든 것은 월 15만원의 교통보조비 뿐. 현재 규정에 따른 추산액이지만 그때도 대략 비슷했던 것 같다고 L씨는 말한다. 저축이 금세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 2년간의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니 7000만원 정도가 잔고로 남았다. 떠날 때는 치안이 걱정스러웠지만 여러 모로 '남는 경험'이었다는 게 L씨의 소감이다.

주재관이 아니더라도 정부조직이 해외에 공무원을 파견할 때는 이에 준해 대우한다. 공무원들이 해외파견근무를 너도 나도 자원하는 것이 당연지사. 서울시가 지난달 선발한 일본 도꾜사무소 파견의 경우 6: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고 그 결과를 두고 직원들 사이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외교부의 관련업무 담당자는 "각 부처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해외주재관을 파견하고 있지만 인사적체 해소 등을 위해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견문을 넓혀주는 '교육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만 일부 공관의 경우 대사관 직원보다 주재관이 더 많기도 해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 "외국의 경우 주재관이 대사관 업무를 함께 처리하지만 우리나라 주재관은 자기 부서 일 외에는 잘 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굳이 외교부 예산으로 나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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