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호/20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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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린이육영회 ‘동문 잔치’ 말썽

직원들 상당수 이정환 회장 모교 출신으로 채워져… 연구비도 타대 출신에겐 ‘그림의 떡’

한국어린이육영회(서울 송파구 신천동ㆍ이하 육영회)란 단체가 있다. 교육당국에 등록된 비영리 사단법인인 이 단체의 전신(前身)은 새세대육영회.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가 1981년 설립했으며, 유아교육 및 연구사업이 주된 역할이다. 비자금 조성의 여파로 이씨가 초대회장에서 물러난 뒤 1988년 12월 이정환 회장(70ㆍ여)이 취임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고, 이회장은 올해로 15년째 장기 봉직하며 육영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임기 4년의 회장직은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최근 이 단체가 파행적으로 운영돼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이회장. E여대 출신으로 같은 대학 유아교육학과 교수를 지낸 그는 자타칭의 유아교육 전문가다.

문제는 지난해 9월 근속 14년의 육영회 생활교육원 과장 L씨(42ㆍ여)가 담당업무 관계로 이회장과 마찰을 빚은 뒤 감봉조치를 당한 후부터 불거졌다. L씨가 이에 항의해 구제신청을 하자 같은 해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감봉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이에 불복한 이회장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한 상태다.

지난 2월 중순 사직한 L씨는 현재 업무차 캐나다로 간 남편과 함께 그곳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L씨는 출국 전 육영회 지회장 30여명에게 육영회 운영 실상을 폭로하는 서신을 보내 이미 육영회 내부에선 이 문제가 표면화됐다.

이회장 외조카 영입 후 초고속 승진

L씨의 서신에 따르면 이회장은 육영회 직원 상당수를 자신의 모교인 E여대 출신들로 채웠다. 육영회 전체 직원은 4개 부설기관까지 합쳐 130여명.

이중 유치원장, 연구개발실장, 치료교육연구소장, 육영학교장 등 부설기관장들이 모두 E여대 출신이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대학측 추천을 통해 특채로 들어왔다. 또 사무처 소속 5개 부서(관재팀 제외) 가운데 연수원장 역시 E여대 출신. 기획조정팀장과 생활교육원장은 남성이며, 지원사업팀장은 타 대학 출신이다. 나머지 총무팀장은 E여대 출신은 아니지만 이회장의 외조카다. 이회장 취임 이후 들어온 연수원의 전ㆍ현직 일반직원 중에도 E여대 출신은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한다.

E여대 출신의 ‘독과점’은 1989∼2000년도 연도별 학술연구비 지급 현황을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L씨가 재구성한 이 도표에 나타난 20명의 연구비 수혜자(특수교육 분야 3명은 제외)중 2명을 빼곤 모두 E여대 출신이다.

평소 교육계의 평판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이회장의 직원 인사가 왜 이렇게 획일적으로 모교 출신들에 편중됐을까. 이에 대해 이회장은 “인사는 회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50년 전통의 E여대 유아교육학과 출신들 중 타 대학 출신자에 비해 유능한 인재가 유독 많아 임용한 것이지, 모교 후배나 제자라고 해서 우대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기능 못지않게 연구기능을 중시하는 육영회의 특성상 특정대학의 한정된 교수들 밑에서 동문수학한 인력이 대거 포진하면 연구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육영회의 한 전직 직원은 “육영회의 이런 인사는 평소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유난히 강조해 온 이회장의 말과는 완전히 배치된다”며 “사정이 이러니 J대, S여대, D여대 등 타 대학 유아교육학과 출신들 사이에 ‘E여대 출신이 아니면 육영회에서 일할 수 없다’는 반감마저 커져 직원모집 공고를 내도 이력서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이회장은 지난 2월28일 퇴임한 부설 유치원장 후임으로 내부 승진 대신 또다시 E여대 출신 인사를 외부에서 영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육영회 이사 11명(회장 포함) 중 E여대 출신이 6명이다. 육영회의 중대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의 구성원 중 과반수 이상이 특정대학 출신으로 이뤄져 있는 것. 회장의 운영 독주를 견제해야 할 이사회의 위상치곤 매우 의문스러운 임원진 구성이다.

이회장은 또 1997년 1월 자신의 외조카 P씨를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총무과장으로 발령냈다. P씨는 육영회에 오기 전 포항제철과 철강협회 등에서 총무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과장 발령 11개월 만에 부장직무대행으로, 다시 13개월 만에 총무팀장(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해 현직에 재직중이다. 육영회 총무팀장은 인사ㆍ급여 관리는 물론 500여억원에 달하는 현금기금을 관리하는 요직. 이에 대해 이회장은 “친인척이어서가 아니라 유능하기 때문에 스카우트한 것”이라 답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런 고속승진은 육영회 인사규정을 개정한 직후 이뤄졌다. 승진 소요 연한을 낮춘 것. 개정 전엔 과장(3급 직원)이 부장(2급)으로 승진하려면 통상 4년이 걸렸다. P씨는 이를 절반이나 단축한 셈. 이회장은 “규정을 고친 후 다른 직원들도 덕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L씨는 이회장이 무보수 명예직이었다가 지난해 1월부터 보수를 받는 상근직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한다. 6년 전 이사회에서도 이회장이 보수 지급 승인건을 상정하려 했으나 일부 이사의 반발로 무마된 적이 있다는 것. L씨는 또한 지난해 3월 서울대 출신의 사무처장(56)이 퇴직한 뒤 이회장이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을 겸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사무처장직은 공석이다.

“반감 품은 직원이 사실 날조” 반박

그러나 이회장은 “1988년 취임 당시부터 상근직이었으며 이는 문서화돼 있다. 사무처장은 임기 2년의 별정직인데, 특별히 필요성을 못 느껴 새로 임용하지 않았다. 보수 지급도 이사회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징계처분 이후 내게 반감을 품은 L씨가 잘못 알고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회장은 ‘문서화’된 자료를 확인해 주지는 않았다. 설령 이회장의 답변이 사실이더라도 취임 이후부터 1997년까지는 그가 E여대 교수와 E여대 부속 유치원장, E여대 사범대 부속 중ㆍ고교장으로 재직중이던 시기. 상식적으로 양쪽 일을 병행하며 실질적인 상근직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난해 1월부터 보수를 지급받기 시작한 이회장의 연봉은 6140만원. 판공비 등을 합하면 1억원이 넘는다. 육영회의 전국 회원 1만여명이 내는 연회비가 7000만∼1억원쯤인 현실과 비교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L씨는 3월1일 ‘주간동아’와의 국제통화에서 “공익법인 운영 행태가 한마디로 ‘동문 잔치’에 가깝다. 이렇게 학맥(學脈)에 치우쳐 단체를 사조직처럼 계속 운영할 경우 유아교육 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지회장들에게 실상을 알렸다”고 밝혔다.

현재 감독기관인 서울 강동교육청은 L씨의 민원 내용을 본청으로부터 이첩받아 조사를 진행중이다. 강동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초기 검토단계여서 뭐라 단정짓긴 힘들다. 육영회에 관련 자료를 요청해 계속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낙후된 기존 유아교육을 한 차원 끌어올린 이회장의 공적과 열정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유아교육에 관한 한 그토록 E여대 출신들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육영회는 왜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닌 인사를 차기회장에 선임했을까.

육영회는 지난 2월21일 정기총회에서 1988년부터 현재까지 육영회 이사로 있는 E여대 K교수(65)를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이회장 임기는 오는 6월22일 만료). 이회장 동문 후배인 그의 전공은 유아교육이 아닌 교육심리다.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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