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호/20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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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산 신화’ 안병균, 석연찮은 재기 행보

부인 사업체 ‘부림비엠’ 실질 경영설에 업체 인수 과정서도 잇단 잡음

일반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기업 ㈜부림비엠이 재계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단체급식업과 예식장 운영 등을 하는 자본금 60억원의 이 회사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골프장 인수를 시도하고 백화점을 인수하는 등 ‘몸집 불리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 이 회사 오너가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 부인이라는 점도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안씨는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무일푼으로 시작해 90년대 중반 중견 재벌 총수 자리에까지 올랐던 ‘나산 신화’의 주인공.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월 초 주력 계열사였던 ㈜나산이 부도나고 이후 이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안씨의 ㈜나산 지분도 모두 소각됐다.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나산스위트, 종로5가 상가건물 등 그가 소유한 부동산과 서울 성북동 자택도 경매로 넘어갔다.

그러나 안씨의 이런 ‘비운’과 상관없이 부림비엠은 나산그룹 부도 이후 오히려 더 ‘잘 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과거 나산그룹 계열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 “남편이 못 다 이룬 사업을 부인이 대신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하다. 92년 11월 설립한 부림비엠은 안씨의 부인 박순희씨가 지분 86.67%를 가진 대주주. 2000년 경영실적은 매출액 667억원, 당기 순익 3억원이었다.

‘나산 부실 책임 다했나’ 곱지 않은 시선

부림비엠은 지난 2월8일 경기도 광명시 나산클레프백화점 경매에 참가, 이를 325억원에 낙찰받았다. 부림비엠측은 인수 자금과 관련해 “금융권 차입으로 해결할 계획이지만 차입이 안 되더라도 인수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유통업체가 두 곳이나 있어 별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부림비엠이 나산클레프백화점을 완전히 인수하기 위해서는 이 백화점 납품업체와 임대업체들의 채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들은 경락대금 325억원이 1, 2순위 채권자인 산은캐피탈과 서울보증보험의 채권액 3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해 자칫 임대보증금이나 납품 대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날릴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부림비엠측은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부림비엠은 2000년 10월 수탁 경영중이던 경기도 포천 나산골프장의 임의경매에 참가해 330억원에 낙찰받았다. 그러나 인수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했던 금융기관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계약금만 날리고 말았다. 또 법정관리중인 할인점 업체 ㈜나산클레프가 시공중이던 전남 여수점 인수를 시도했으나 ㈜나산클레프측이 계약을 해제하는 바람에 무위로 끝났다.

안씨는 현재 부림비엠과는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안씨는 다만 부인이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36년 사업 경험이 있는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조언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안씨의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안씨가 부림비엠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그런 시각 가운데 하나. 나산그룹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그가 자신은 뒤로 빠진 채 부림비엠을 앞세운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안씨가 이 회사 설립 때부터 98년 10월까지 등기이사를 역임한 사실을 그 건거로 제시한다.

안씨는 이런 시각에 대해 “재기하는 게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재기 노력에 대해서는 그가 나산그룹 부실 경영에 책임을 다했는지, 재기 과정의 투명성 등이 검증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는 한국적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구설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나산클레프가 시공중이던 여수점을 인수하려는 과정에 벌어진 논란은 안씨에게 부담이 될 듯싶다. 부림비엠은 나산클레프 채무 72억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장부 가격 137억원의 여수점을 인수하기로 했으나 나산클레프측이 작년 초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부림비엠측이 인수 채무 72억원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등 취득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안씨는 이에 대해 “법정관리중임에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산클레프를 도와주기 위해 인수를 시도했으나 나산클레프측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고, 이로 인해 여수점 마무리 공사 비용 등을 포함한 투자비 60억원을 건질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산클레프는 부림비엠이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여수점을 일방적으로 완공했기 때문에 그 책임은 부림비엠측에 있다고 반박한다.

“일방적 계약 파기로 오히려 손해 봤다”

시장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CRC) ㈜밸류텍과 안씨의 관계도 주시 대상이 되고 있다. CRC란 부실기업의 인수 및 정상화, 매각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민간회사로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98년 2월 산업발전법 개정에 따라 도입됐다. 밸류텍은 바로 이 제도에 따라 2000년 3월 설립됐다. 작년 말 현재 자본금은 85억원.

밸류텍은 2000년 하반기에 서울 수서동 로즈데일백화점 건물 임의경매에 참가해 300억원에 낙찰받았다. 김헌 당시 사장은 “98년 초 나산그룹 부도 당시 완공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던 이 건물을 인수, 완공해 큰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미 분양이 완료됐던 11~20층 오피스텔 부분에서는 수입이 없었으나 10% 정도만 임대 분양됐던 1~10층 백화점 매장 부분을 사무실로 용도 변경했고, 이를 임대함으로써 수익을 올렸다는 설명이다.

밸류텍과 안씨의 관계가 주시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밸류텍 경영진 가운데 과거 나산그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 83~89년 ㈜나산 사장을 역임했던 현 대표 임모씨뿐만 아니라 안병균씨의 동생이자 역시 나산그룹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던 병오씨도 이 회사 설립 직후 2개월 동안 대표를 지냈다. 안씨의 승용차 기사로 일했던 지모씨도 작년 5월 이 회사 이사로 선임됐다.

이에 대해 김헌 전 사장은 “나산그룹 부도 전 분양받은 사람들의 민원이 많아 로즈데일백화점을 완공하고 분양하는 과정에 안씨의 ‘협조’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는 안씨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안씨도 “동생 병오씨가 ‘로즈데일백화점 건물은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변 인사들을 설득해 돈을 끌어모아 밸류텍을 설립한 것으로 안다”면서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밸류텍의 한 전직 임원의 얘기는 다르다. 밸류텍 설립 이후 1년여 동안 몸담았던 한 고위 임원은 “밸류텍이 기업 구조조정 회사 본래의 사업 목적보다는 로즈데일백화점 건물 투자를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는 점과 구 나산그룹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아는 순간 더 이상 몸담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그만두었다”고 증언했다.

현재 안씨의 ‘최근 행보’와 관련,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지만 부림비엠을 뒤에서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밸류텍이 안씨와 특수관계는 아닌지 등 세간의 의혹을 풀어주어야 할 사람은 당사자인 안씨 자신일 것이다. 그는 어쨌든 부실 경영에 책임 있는 오너 경영인이기 때문이다.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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