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0호/200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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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기자의 세상 속으로]

그들의 ‘쇼와 시대’, 우리들의 ‘쇼와 시대 ’

마법과 주술의 팬터지에다 온갖 테크노의 현란한 볼거리로 채워진 ‘어드벤처 로망’이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는데 한가하게 ‘반딧불이’라니…. 이 고색창연하고 고답적인 오브제로 누선(淚線) 자극이라는 고지식한 전략을 택한 영화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본 영화 ‘호타루’(ホタル·반딧불이)의 국내 개봉 소식을 접한 첫 느낌은 그랬다. 만약 주연배우가 ‘철도원’(원제 포포야)의 다카쿠라 켄 (高倉健)이 아니었다면, 더구나 감독 역시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降旗康男)가 아니었다면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블랙 레인’(黑雨)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와 함께 출연한 다카쿠라 켄 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그에 대한 인상은 그리 깊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도 저런 멋있는 배우가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철도원’ 이후 기자는 다카쿠라 켄 의 팬이 되었다. 일본에서 왜 ‘국민배우’로 불리는지도 알 수 있을 듯했다. ‘철도원’을 통해 기자는 우리네 텔레비전에서 흔히 얘기하는 국민배우나 국민가수와는 층위가 다른 관록의 깊이에 압도당했다. 무엇보다 모든 슬픔을 안으로 갈무리한 채 울지 않기 위해 굳게 다문 그의 입술과 강렬하면서도 슬픈 눈을 보고 있자면 ‘영화배우는 모름지기 저래야 한다’는 하나의 전범(典範)을 보는 듯했다. 적어도 그는 싸구려가 아니었다.

군국주의 향수 없지만 반성 기미도 안 보여

‘호타루’는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사망함으로써 쇼와(昭和) 시대(1926~1988)가 막을 내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인들에게 ‘쇼와 시대’는 전쟁의 지긋지긋함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이 시절에 1, 2차 세계대전이 모두 일어났으며 일본은 그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만주사변, 중일전쟁, 관동대지진 등도 모두 이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쇼와 다음으로 천지와 내외가 모두 평화를 이룩한다는 뜻의 ‘헤이세이’(平成)를 연호로 삼은 것만 보아도 이들이 얼마나 전쟁에 지쳐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야마오카(다카쿠라 켄 )는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의 일원이었으나, 비행기 고장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아 어부가 된 사람이다. 전쟁 당시 그의 상관은 가네야마 소위. 그러나 가네야마는 경북 안동이 고향인 ‘조센진 김성재’로 일본 패망을 앞둔 오키나와 출격으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야마오카의 아내 도모코는 김성재의 약혼녀. 쇼와 시대가 끝난 것을 기념하는 특집기사를 위해 옛 가미카제 특공대를 취재하러 온 아사히신문 기자를 만나면서 야마오카는 애써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그러나 결코 잊히지 않는 조선인 상사 가네야마의 이야기와 유품을 그의 고향에 전해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야마오카는 도모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전하지 않으면 가네야마는 역사 속에서 그냥 사라질 거야.”

‘호타루’는 일단 쇼와 시대를 끝냈지만 쇼와 시대의 죄책감과 원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양심적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화해의 몸짓으로 읽힌다. “나는 조선 민족을 위해, 도모코를 위해 출격한다. 조선 민족 만세, 도모코 만세”라는 가네야마의 비장한 유언이나, 특공대원들을 보살피는 여관집 주인 도미코가 “어머니라면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을 거야”라며 오열하는 장면 등 화면 곳곳에서 한국에 대한 ‘배려’가 자리잡았다. 물론 그 몸짓과 배려는 다분히 그들의 인식 차원으로 국한된다.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는 배제되었지만 군국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마치 ‘호타루’의 홍보차 한국에 온 다카쿠라 켄 이 일본에서 취객을 구하고 사망한 고 이수현군의 부모를 시사회에 초대하고, “일제강점기를 산 배우로 한국에 대한 느낌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향(후쿠오카)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때 같은 반 학생 5, 6명이 한국인이어서 ‘아리랑’ ‘도라지’ 같은 노래를 들으면 그들의 그리움이 느껴진다. 부족하겠지만 이것이 대답”이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쇼와 시대’를 잊고 싶어한다. 그들을 억누르는 그 답답한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길은 매우 험난하다. 그들의 ‘쇼와’와 우리들의 ‘쇼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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