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재단은 ‘金心’의 숨은 손?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왠지…” 한나라당 정치 공세
“결국 저 빌딩을 넘어야 해.”
지난 12월22일 ‘아태평화재단이 김대중 대통령의 사저 옆 새 건물로 이사하고 있다’는 TV 뉴스를 지켜보던 한나라당 한 고위 당직자가 독백처럼 던진 말이다.
“김대통령이 저곳에서 김구처럼 남북통일 문제를 연구하고 카터처럼 세계평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건 퇴임 후 일이고, 지금 당장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 인사는 김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을 사퇴하며 정치를 떠났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 그는 김대통령이 아태재단을 통해 지방선거와 대선 등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아태재단을 통한 김대통령의 ‘원격정치’를 예상하는 것은 과거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92년 정계를 은퇴한 김대통령은 93년 7월 영국에서 귀국, 아태재단을 만들어 당의 주요 사안에 ‘김심’(金心)을 작동시킨 바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나라당은 여권 흐름을 주도하는 파격적 조치와 행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기획되고 있으며 그 배경에 아태재단이 있는 것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을 내놓는다. 민주당 특대위가 제시한 상향식 공천제, 총재직 폐지, 조기 전당대회, 당권·대권 분리 등 각종 개혁안들이 사실상 아태재단의 아이디어가 아니냐는 것.
또 김대통령의 아들 홍업씨(아태재단 부이사장)와 동교동의 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수동씨(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김대통령의 핵심 인물들이 이 재단에 몸담고 있는 점도 눈길을 뗄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확증은 없지만 뭔가 ‘작업’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런 판단에 따라 한나라당 인사들은 DJ의 언행을 읽을 때 아태재단을 쳐다보거나 의식하는 버릇이 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아태재단을 공략하기 위해 여러 방법과 채널을 가동했다. 조직과 역할, 자금 등 공개된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 그렇지만 실체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 대부분이 무력화되고 힘이 빠졌지만 유일하게 철옹성처럼 버티는 조직이 아태재단이다”고 강조한다. 아태재단마저 무력화해야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지킬 수 있다는 전략이다.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 최택곤씨가 김홍업씨를 찾아가 “수사 중단 로비를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아태재단의 실체를 밝혀라”며 한나라당이 즉각 정치공세에 나선 점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에서 ‘공격은 하고 싶지만 내용이 없는’ 한나라당의 한계도 동시에 읽힌다.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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