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별 상영작 가이드

대작·블럭버스터 바람

올해 영화제 개·폐막작의 특징은 모두 대작 사극이란 점.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갔으며 역사적 모티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성장해 가는 아시아 영화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수리요타이
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태국영화. 16세기 태국 여왕이던 수리요타이의 결혼과 사랑, 그리고 궁전에서의 생활과 미얀마군의 전투 등이 생생하게 재현된 대작이다. 무려 150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

△ 방라잔
올 상반기 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타니트 지트나쿤의 영화. 18세기 미얀마군의 침공에 맞서 싸운 평범하고도 용기 있는 마을 사람들의 전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 생생한 전투장면이 인상적이다.

△흑수선
배창호 감독의 신작으로 영화제 개막작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퓨전 역사극으로 5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연쇄살인사건의 내막에 한국전의 상흔을 숨겨놓았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중량감 있는 작품인 동시에 일반 관객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

△라가안
상영시간 3시간40분의 대작.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보유했던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뜻하지 않은 역경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다양한 소재, 새로운 시각' 여성감독의 영화

지난해부터 두드러진 여성감독들의 수준작을 올해도 대거 만날 수 있다. 상영작은 20여편.

△몬순 웨딩
인도의 여성감독 미라 네어의 작품. 뉴델리 중산층의 한 결혼식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을 엮으면서 인도의 변해가는 성과 사랑의 지형도를 그려 보인다.

△캬카라바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경력이 있는 여성감독 나오미 카와세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헤어져 살았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좀더 가까이 느껴보고자 하는데, 후반부의 문신 장면이 충격적이다.

△사랑스런 리타
유럽 영화계 최고의 데뷔작으로 평가받는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의 작품. 제목과 정반대로 부모 살해를 다룬 충격적인 소재의 영화다. 가족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담아내는 동시에 분노의 표출을 극단적으로 그려냈다.

성장·가족영화

성장영화 역시 올해 영화제 목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변화하는 가족문제에 대한 경쾌하고도 진지한 접근 역시 영화제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허쉬
가족의 부재로 상실감을 느끼고 새로운 방식의 가족을 꾸려보려는 ‘신인류’들의 이야기. 가족문제에 대한 동시대적 공감대를 구축한다. 퀴어영화 전문감독 하시구치 료스케의 신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러브 레터’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일본 이와이 슈ㄴ지 감독의 신작으로 한 여자를 좋아하는 남학생의 그늘진 성장기다. 따돌림과 집단폭행, 성폭행까지 등장하는 고등학교의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들과 대조적이다.

△고
재일한국인의 삶을 일본인의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 한일 합작 영화로 일본영화사상 최다 예매기록을 세운 화제작이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심각한 정체성의 문제를 감각적이고도 유쾌하게 풀어낸 성장영화다.

△엄마는 갱년기
중국 5세대 감독 황지엔신의 신작. 무너지는 결혼제도를 유쾌하게 다뤘다. 관료주의의 폐해를 끊임없이 질타해 온 감독은 유머까지 얹어진 작품을 통해 결혼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프간 내전·중동을 다룬 영화

미국 뉴욕 테러참사 이후 탈레반 정권 등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제에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이슬람 사회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소개돼 눈길을 끈다.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
새로운 영화미학에 도전하며 국경을 넘어 인류애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작가이자 현자인 마흐말바프(이란)의 신작.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 걸고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델바란
이란의 숨은 거장 잘릴리 감독의 신작. 장엄한 산맥 바로 너머로 전쟁의 소음이 들리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에 자리한 이란의 마을 델바란. 카메라는 아버지가 탈레반 진영에 가담한 뒤 난민이 된 소년을 잔잔히 좇는다.

△약속
골드버그 감독의 다큐멘터리. 7명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어린이 이야기를 통해 두 국가간 분쟁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한 작품. 오래된 중동 사태가 아이들의 육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성담론 다룬 영화

성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해부하고, 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이 시대의 감독들. 욕망의 찬가는 계속된다.

△잔다라
과감한 성애묘사로 올해 태국영화의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잔다라’는 태국에서 성의 교과서라 불리는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홍콩의 종려시가 주연을 맡았다. 성을 통해 인간의 양면적 본성을 그렸다.

△붉은 다리 밑의 미지근한 물
‘간장선생’에서 보여줬지만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가 욕망을 밝게 풀어헤치면서 자유러운 삶을 찬양하고 있다. 77년을 살아온 노감독의 무시 못할 충고가 이 작품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직장을 잃고 부인과 결별한 뒤 한 노숙자의 조언을 따르는 요스케(야쿠쇼 고지)의 이야기다.

△피아니스트
‘퍼니 게임’이라는 영화로 관객을 아주 불편하게 했던 오스트리아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빈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노처녀 에리카의 기이한 사랑을 도발적으로 다뤘다. 에리카는 아주 차갑게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밤이 되면 포르노 극장과 카섹스 현장을 찾아 묘한 방식으로 욕구를 충족한다.

△인티머시
‘여왕 마고’를 만든 프랑스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첫번째 영어영화. 이름도 모른 채 만나 섹스에 탐닉하던 한 남녀 커플이 서로를 알게 되면서 겪는 관계와 심리의 변화를 좇는다.

에니메이션·다큐멘터리

삶과 예술의 숨결을 담는 다큐멘터리의 소재와 형식이 다양해졌다. 다양해진 국내 작품과 함께 해외 화제작도 대거 만날 수 있다.

△쿨 앤 크레이지
프로그래머들이 ‘극영화보다 재미있다’고 추천한 노르웨이 다큐멘터리. 남자, 사랑, 정치, 물고기 등의 주제를 통해 이야기를 엮어가면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존엄성을 찬양한다.

△천년여우
‘퍼펙트 블루’로 잘 알려진 산토시 콘 감독의 작품으로 올해 일본 애니메이션이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꼽히는 작품. 은퇴한 여배우의 화려했던 삶과 그녀가 평생을 간직했던 첫사랑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인터뷰 │자원봉사자 조성아·문상진씨

“5대 1 경쟁 … 영화 한 편 못 봐도 자부심”

“자원봉사도 아무나 못해요.”

영화제 임시사무소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조성아(23·동아대 경영학과)·문상진씨(23·동의대 산업공학과)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의 선발기준은 웬만한 기업의 입사시험 못지않게 까다롭고 높은 경쟁률을 자랑한다. 올해에는 400명을 뽑는 자원봉사자 모집에 2000명이 몰려 평균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 2차 심사를 통해 최종 인원을 확정하고 소양교육을 거쳐 각 팀에 배치된 이들은 스태프들과 함께 영화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홍보팀 소속으로, 영화제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제 일이에요. 영화제가 끝난 후 책자로 발간하게 되거든요.”

1회 때부터 줄곧 영화제를 찾은 단골손님이었다는 조씨는 휴학기간을 이용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영화제를 지켜보면서 부산에 산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그녀는 영화제를 찾는 손님들이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한다.

반면 얼마 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문씨는 옥외광고팀에 배치되어 학교·은행마다 티켓 카탈로그를 배부하고 현수막과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 “쉬는 동안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몸으로 ‘때우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는 게 즐거워요. 이번 기회에 잘 모르던 예술영화와도 친해지고 싶어요.”

행사기간 하루 1만원의 식사비와 유니폼 지급이 거의 전부인 그야말로 ‘자원봉사’지만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정작 영화제 기간에는 일하느라 영화 한 편 제대로 못 볼 신세지만,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전문가가 말하는 관람 요령

부산 토박이로 부산국제영화제 성장의 일등공신이자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영화평론가 김지석씨(사진)는 “영화나 감독의 네임 밸류만 따라가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영화를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올해 영화제에는 부대행사도 별로 없어요. 오로지 영화만 즐기자는 것이지요. 잠깐 동안의 방문이라도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챙겨 자신의 취향대로 시간표를 작성해 차분하게 움직인다면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사전정보를 충분히 입수하라

티켓 카탈로그와 영화제 홈페이지 등에는 7개 섹션별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선호하는 작품이나 감독, 장르별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 시간표를 짜면 된다. 관객과의 대화와 극장간 이동거리도 감안해야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 수작부터 미리 보라

영화제 상영 이후 국내에서 개봉되지 않는 아시아권을 비롯한 해외 수작이 수두룩하다. 이런 영화를 대거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제만의 매력. 이런 영화들부터 먼저 감상하는 것도 영화감상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다.

△ GV를 놓치지 않는다

상영일정표에 ‘GV’(Guest Visit)라고 표시된 영화는 감상 직후 바로 감독이나 출연배우들과의 대화를 통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올해에도 영화제측은 약 90회의 GV를 준비하고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 매진돼도 포기는 금물

보고 싶은 영화의 입장권이 매진됐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예년의 경우 환불표가 전체 예매표의 20∼30%에 달하는 경우도 많았다. 영화제 홈페이지의 정보교환 게시판을 이용하면 의외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또 임시매표소의 환불창구에도 영화를 보다 지친 이들의 표가 잠자고 있을 수 있다. 보고 싶은 영화의 상영 당일 임시매표소의 환불창구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