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떠나는 유적 답사 신나요

주말이면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오가는 교통길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 생각을 접는 사람들에겐 기차여행이 제격이다. 또 많은 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여행에도 기차 만한 수단이 없다. 그래서 기떠문(기차로 떠나는 문화유적 답사회, www. godapsa.com)동호회를 이끌고 있는 김구영씨(35, 철도청 서울지역 사무소 열차운용과 사령)는 가족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싣는다.

김씨는 2년 간 흥사단에서 ‘통상단우활동’을 하며 ‘기차로 떠나는 국토기행’을 기획했다. 매달 어린이들을 데리고 문화유적답사를 다닌 김씨는 부모도 함께 가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듣고, 99년 직접 기떠문 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이 동호회는 전국을 6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운영하는데 회원이 2000여 명에 이른다. 지역별로 매달 한 차례, 전국적으로는 분기별로 1년에 4차례 함께 여행을 떠난다.

기떠문 동호회는 단지 기차로 여행한다는 특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회원을 거느린 만큼 사전답사와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쓴다. 먼저 답사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며 지도, 나침반, 줄자, 간단한 필기도구는 필수다. 기떠문에서는 학술부가 회원교육을 맡고 있다. 학술부 회원들이 답사지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고, 미리 현장답사를 해서 슬라이드 사진을 찍어온다. 그리고 답사 떠나기 바로 전날 회원들을 모아놓고 슬라이드 상영을 한다. 이때 전문가를 모셔와 설명을 듣기도 하고 회원 중 전공자가 설명을 한다.

미리 슬라이드를 보는 것은 막상 답사현장에 가면 시선 집중이 잘 안 되는 아이들에게 효과적이다. 영화 보는 것처럼 재미있어 하면서 교육적 효과도 높다. 그러나 과도한 사전학습은 오히려 답사에 방해가 된다고 김씨는 말한다. 입력된 사전정보가 너무 많으면 자신의 생각이 아닌, 전문가의 식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답사는 스스로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책에 나온 지식만 줄줄 왼다고 훌륭한 답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행 때는 반드시 지도를 챙기도록 한다. 답사지는 초행길인 경우가 많아 길을 잃기 쉽고 또 지도를 보며 길을 걷다 예상치 못한 곳을 구경하기도 한다. 또 나침반은 폐사지 답사 때 유용하다. 실제 건물은 무너지고 터만 남은 곳에서는 나침반을 이용해 방위를 확인하고 입구를 찾는다. 예를 들어 절의 입구는 대부분 남향을 하고 있으며 탑도 남쪽이 앞면인 경우가 많다. 줄자는 건물 크기나 석탑의 크기 등을 정확히 재어 보고 다른 유물과 비교해 볼 때 필요하다. 이밖에도 금석문(金石文)해석을 위해 한자사전을 챙기면 좋다.

“우리 선조들은 건물 하나를 지어도 산세, 풍수지리는 물론, 사람의 심리까지 읽어 행보에 맞게 계단을 만들고 비탈길을 만들어 지루함까지 없게 했어요. 우리 문화유적에는 인간세상사를 총체적으로 보는 안목이 녹아 있어요.”

김씨는 답사여행을 다녀오면 항상 뭔가 얻고 돌아와 피곤함보다 뿌듯함이 크단다. 그것도 가족과 공통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도 함께 갈 수 있어 더욱 즐겁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하던 이들도 일단 함께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금방 친해져 다음 여행을 기다리게 된다. 기떠문 동호회도 운영된 지 3년째 접어들다 보니 아이들끼리 친해져 답사를 간다면 먼저 좋아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아이들은 답사지에 가면 보는 듯 마는 듯 설렁설렁 놀기만 하는 데도 언제 다 보았는지 다녀온 느낌을 적어 인터넷사이트에 올리기는 걸 보면 기특하단다. 어른들이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된다.

김씨는 답사를 다녀오면 답사지에 대한 입장권이나 안내책자, 팸플릿을 모아 두고, 기억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기만의 간단한 답사기록 카드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안내책자의 경우 유물·유적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설화적인 내용이나 전설 등 책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에 꼭 구입하도록 한다. 입장권과 팸플릿도 모아 놓으면 사진보다 더 좋은 추억을 제공한다. 김구영씨네는 올 여름 휴가 때 강진 다산 초당과 월출산, 보성다원을 돌아볼 계획이다. 물론 준비물은 지도, 나침반, 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