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마곡사

누가 춘마곡 추갑사(봄엔 마곡사, 가을엔 갑사가 좋다)라 했던가. 마곡사는 사철 마곡이다. 사철 사람이 많은지라, 마곡교가 있는 주막거리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상가와 식당가까지는 무척 소란스럽다. 도열해 있는 식당들을 지나치기가 힘겹다. 좌판이 길을 막아서고, 음식점 주인들이 낚아챌 듯 호객한다. 산나물과 약초 좌판을 벌인 노인들은 행인들과 눈을 맞추려든다. 모두 속세의 풍경이다.

하지만 매표소를 통과하고 나면, 새소리와 물소리가 걸음 장단을 맞춘다. 길은 마곡천을 따라 길게 나 있고, 마곡천 건너편으로 절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길과 개울과 절이 동행한다. 그러다가 서로가 하나로 합쳐지려는 대목에 다리가 놓이고, 길은 절로 빨려든다. 계곡을 한껏 완상케 한 뒤 길손을 절로 끌어들이는 솜씨가 어여쁘고 노련하다.

지금의 기술이라면 매표소 쪽에서 곧바로 절 마당으로 다리를 놓아 쉽게 드나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절은 극락교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졌다. 마곡천 개울 한 자락이 절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남쪽 마당의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가면, 왼편으로 명부전과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은 1651년에 지어진,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김시습이 이 절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세조가 찾아온 적이 있다. 그러나 세조는 그를 만나지 못하고 영산전 현판 글씨만 남기고 떠났다.

이 절에 근세에 머물렀던 명사는 백범 김구다. 김구는 일본 헌병을 살해한 죄로 갇혀있다가 도망쳐 나와 마곡사에 몸을 숨겼다. 훗날 광복 뒤에 김구는 마곡사에 찾아와 고마움의 표시로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 그 나무는 마곡사 풍마동 다보탑 (보물 제799호)를 바라보며 잘 자라고 있다. 김시습에게나 김구에게나 이 절은 은신하기 좋았던가 보다. 한때 도둑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는 마곡사는, <택리지>와 <정감록>에서 난세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로 꼽고 있다.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산나물과 약초가 많아 굶주리지 않고 화를 면할 수 있는 땅이라는 것이다.

절 가장 안쪽에 웅장한 팔작 지붕의 2층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의 천장을 올려다보면 서까래와 대들보, 기둥들이 육중하게 들어 차 있다. 그 뼈대에 그려진 문양들은 여름 밤의 별처럼 빛난다. 우주가 따로 없다. 대웅보전 안이 세계의 중심이다. 염라대왕도 이 대웅보전을 떠받치고 있는 싸리나무 기둥을 대단하게 여겼던가 보다.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염라대왕이 물어 많이 돌수록 극락행이 쉽고, 적게 돌수록 지옥행이 가깝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싸리나무 기둥은 손때로 번들번들하다. 마곡사 앞뒤로 명가천과 마곡천이 흐른다. 마곡사 입구 주막거리에서 구암마을을 지나 상원재를 넘고 구재를 넘어 유구에 이르는 12km 길 옆으로는 3개의 계곡이 펼쳐진다. 상원계곡, 가마본동계곡, 구계계곡이다. 이 계곡에 몸을 숨긴 채 십승지지의 은밀함을 만끽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