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해인사

해인사는 깊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해인사를 가려면 홍류동천 계곡을 거쳐야 한다. 합천군 가야면 사무소 삼거리에서 시작해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20리 골짜기다. 계곡의 물줄기를 따라 찻길이 나 있고, 길가에 나무들이 우거져 있기에 무심코 들어서면 홍류동천을 알아보지 못한다.

홍류동천 안에는 빼어난 곳이 많아, 모두 16곳이 이름을 얻었다. 가야산 정상에 있는 봉천대와 우비정, 해인사 뒤편의 학사대까지 꼽으면 모두 19경이다. 계곡 아래의 제1경 경맥원에서 축화천, 무릉교, 칠성대로 이어지는 비경은 제6경 농산정에서 절정을 이룬다. 우람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농산정은 신라 말 문장가 최치원을 기려 세운 것이다. 최치원은 이 계곡에 들어와 갓과 신발을 남겨 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춰, 가야산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입산시(入山詩)의 각오가 비장하다.

‘스님이여 말씀 마오 청산이 좋다고 산이 좋다더니 어이 산을 벗어납니까 두고 보소 뒷날에 이 내 자취를 한 번 들면 청산에서 다시 나오지 않으리’

해인사는 802년 신라 애장왕 때에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창건했다.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따온 말인데 “해인삼매란 이 세상을 한없이 넓고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海) 속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는 것이다.

해인사 가장 깊숙한 곳에 팔만대장경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1236년에 몽고족의 침입을 받았을 때 고려 왕실이 강화도에서 새긴 것이다. 자작나무를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꺼내 판을 만들고, 다시 소금물에 삶은 뒤 그늘에서 말리고 대패질해 만들었다. 그 정성이 놀랍고, 그 규모가 놀랍다. 목판은 8만1340판이고, 책으로 묶으면 6791권이 된다. 그 책을 읽기도 쉽지 않은데 새긴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더욱이 글자를 한자 새기고 나서 절 한 번 했다는데 신앙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그 정성을 되새겨보자는 뜻에서, 이번 수련법회에서 경전 한 자 베껴 쓰고 절 한 번 하는 시간을 마련했는가 보다.

올해로 해인사의 여름 수련법회는 18회째를 맞았다. 가장 짱짱하고 꼼꼼하게 진행되는 수련법회다. 예불과 발우 공양을 하고 나면 큰스님 특강이 있고, 불경을 한 자씩 베껴 쓰고 한 번 절하기, 경전을 소리 내어 읽기, 1080배 하기, 스님과 대화하기, 참선하기, 해인사 암자 순례하기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가야산 해인사에 안겨보는 것만으로도 먼 구름을 타는 것처럼 가슴이 뛰는 일인데, 해인사에서 800년 된 팔만대장경과 함께 반짝 출가 생활을 해본다면, 그거야 말로 이승의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