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화개나루터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남해바다와 합류하는 섬진강의 물길은 212 km. 자그마치 500여 리가 넘는 이 섬진강의 풍모는 지리산과 하나로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온전해진다. 섬진강과 지리산은 단순히 서로 인접한 강과 산이 아니라 가시버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처럼 편안한 섬진강이 있어 지리산은 더 우뚝하고, 아버지처럼 듬직한 지리산의 허리를 휘감고 흐르기에 섬진강은 더욱 유장하다.

구례읍 외곽의 문척교를 지날 때면 가시버시처럼 껴안은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쪽에는 섬진강 물길이 도도히 흐르고, 구례군 마산면 광평리와 사도리 사이의 너른 들녘 뒤쪽에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이 우뚝하다. 때마침 안개 같은 비구름이라도 내려앉은 새벽녘이면 섬진강과 지리산은 사뭇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지리산 월령봉의 산자락에 등을 기댄 채 섬진강 물길에 발을 적시는 사도리는 상사마을과 하사마을로 나뉜다. 그 중 상사마을은 소문난 장수촌(長壽村)이다. 장수의 비결은 여러 가지겠지만, 주민들 스스로는 지리산의 약초 뿌리가 녹아서 흘러내린다는 ‘당몰샘’ 덕택이라고 여긴다. 지금도 이곳 샘물은 깨끗하고 물맛도 좋아 그냥 떠 마셔도 아무 탈이 없다. 특히 삼복염천에 한 사발 들이키면 오장육부까지 서늘해지는 듯하다.

사도리와 이웃한 토지면 오미리에는 조선 3대 명당터의 하나를 차지했다는 운조루가 있다. 그리고 이 마을길을 쭉 따라가면 왕시루봉의 서쪽 골짜기에 자리잡은 문수리다. 가파른 산비탈에 민가와 논밭이 들어서 있는데, 경사가 급하다보니 층층이 계단을 이룬 논들은 모두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이른바 ‘공중배미논’이다. 외지인들의 눈에는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서정적인 풍경으로만 보일 수 있겠지만, 주민들에게는 대대손손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삶의 터전이다. 이 공중배미논은 피아골 마을인 토지면 내동리와 내서리 일대의 산비탈에도 밀집해 있다.

토지면 파도리의 간전교 삼거리에서 하동 화개장터까지는 약 20리 길.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 중에서도 가장 운치 좋은 구간이다. 줄곧 섬진강 물길을 옆구리에 끼고 달리기 때문에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아름답고 상쾌하고 편안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붉고 탐스런 꽃송이를 몽실몽실 피워 올린 배롱나무 가로수가 일품이다. 허리까지 물이 잠기는 강 한복판에서는 하류로 내려가는 은어를 낚으려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이따금씩 목격된다. 섬진강 따라 가는 여정이 유달리 여유롭고 서정적인 까닭도 어쩌면 이런 풍경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피아골의 청류(淸流)가 섬진강의 본류와 합해지는 외곡 삼거리에서 5리쯤 내려가면 경상도 하동 땅이다. 도계(道界)를 넘어서자마자 강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줄나룻배 하나가 떠 있는 나루터가 보인다. 그 유명한 화개장터와 구례 간전면 하천리를 잇는 화개나루터다. 몇 해 전 늙은 사공이 세상을 뜬 뒤로 잠시 비어 있다가 지금은 젊은 사공이 언제 올지도 모를 길손들을 태우기 위해 강심(江心)에서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