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신리 너와집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마을은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이다. 마을 곳곳에 옛 화전민들의 고단한 삶과 진한 체취가 묻어 있는 민속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내륙을 관통하거나 혹은 동해안 해안도로를 거쳐 신리마을로 향하는 길은 고향 가는 길이나 다름없다. 특히 중앙고속도로 신림나들목을 빠져나와 영월과 태백을 거쳐 곧장 신리마을로 넘어가는 노정(路程)은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 내륙지방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기에 일부러라도 거쳐갈 만한 드라이브 코스다.

태백시 통리에서 구절양장 같은 신리재를 넘기 전에 잠시 길을 멈추고 꼭 들러볼 데가 하나 있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는 통리협곡(桶里峽谷)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역암층(礫岩層)이 신생대 초의 심한 단층운동과 강물의 활발한 침식작용으로 인해 V자형의 협곡을 이룬 곳이다. 협곡의 양쪽 곡벽(谷壁)은 새도 내려앉지 못할 정도로 가파를 뿐더러 그 높이 또한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을 보여준다.

통리협곡의 상단부에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미인폭포가 있다. 폭포의 높이는 약 30m에 지나지 않지만 암벽의 검붉은 빛깔과 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대조를 이루면서 장엄한 풍광을 연출한다.

통리협곡 입구에서 신리 삼거리까지는 20여 리. 이 삼거리에서 왼쪽 길인 427번 지방도를 타고 곧장 500m쯤 가면 오른편 길가에 물레방아가 보인다. 그리고 다시 약 200m를 더 가면 길 왼쪽의 산비탈에 커다란 너와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은 이미 오래 전에 어디론가 떠났으나,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아주 멀쩡해 보이는 집이다.

신리마을에는 현재 너와집 세 채와 물레방아 통방아가 하나씩 있는데, 통틀어서 중요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도 피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김칫독, 싸리나무를 항아리 모양으로 엮어 만든 채독, 불씨를 보관하던 화티, 눈 위를 걸을 때 신발에 덧대어 신던 설피, 너와집이나 굴피집 내부 벽에 설치되어 난로와 등불 구실을 겸하는 고콜, 그리고 멧돼지를 사냥할 때 쓰던 창 등도 함께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신리 너와집을 지나 2km 가량 더 가면 문이재의 아랫마을인 문이골에 이른다. 이곳 산비탈에도 주인을 잃은 지 몇 년쯤 된 너와집 한 채가 남아 있다. 또한 마을 앞 개울가에는 번듯한 통방아도 하나 있는데, 이것 역시 물길이 끊기고 방아소리가 멈춘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체취와 온기가 사그라진 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유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씁쓸하고도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그나마도 허망하게 사라진 뒤에는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겪었던 시절, 살림은 궁핍했어도 인심만큼은 넉넉했던 그 시절을 영영 추억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