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4

2009.02.24

대형 5성급 호텔 지고 ‘부티크 호텔’ 뜨다

예술적 콘셉트 + 독특한 인테리어로 세계 여행객 유혹

  • 뉴욕 = 조벡 광고기획자·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입력2009-02-19 16: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형 5성급 호텔 지고 ‘부티크 호텔’ 뜨다

    런던 ‘세인트 마틴스 레인’의 레스토랑(맨 좌측). 런던 ‘세인트 마틴스 레인’의 나이트클럽(중간 좌측). 파리의 ‘호텔 아무르’(중간 우측). ‘호텔 아무르’의 침실(맨 우측).

    광고를 기획하고 만드는 직업을 가진 필자는 1년의 3분의 1 정도는 집이 아닌 호텔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호텔을 예약해주는 광고주 측이 대부분 패션 브랜드이다 보니, 힐튼이나 하이야트 같은 대형 체인의 호텔보다는 독특한 콘셉트에 객실 하나하나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이른바 ‘부티크 호텔(Boutique Hotel)’에 머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판에 별 5개가 새겨진 유명 호텔보다는 인지도가 낮아서 가끔 호텔 이름만으로 장소를 찾느라 어려움을 겪지만, 부티크 호텔 로비나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수고는 말끔히 사라진다.

    ‘디자이너 호텔(Designer’s Hotel)’, ‘콘셉트 호텔(Concept Hotel)’이라 부르기도 하는 부티크 호텔을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뉴욕의 전설적인 클럽 ‘스튜디오 54’(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아지트로 미국 팝문화의 산실로 꼽힘)와 ‘팰러디움’의 오너였던 이언 슈레거가 기존의 5성급 호텔과는 다른 콘셉트의 ‘모건 호텔(Morgans Hotel)’을 개장하면서부터 부티크 호텔 붐이 일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슈레거는 뉴욕 매디슨가의 오래된 건물을 사들여 리노베이션을 단행, 1984년 ‘모건 호텔’이란 이름으로 개장하면서 호텔업계로 진출했다. 그는 이 호텔이 ‘스튜디오 54’처럼 당대에 잘나가는 인물들이 모이는 화제의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그는 모든 객실 벽에 전위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흑백사진 작품을 걸고, 유명 레스토랑 오너이자 기획자인 제프리 초도로를 영입해 아시아와 라틴의 퓨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 ‘아시아 드 쿠바(Asia de Cuba)’를 오픈함으로써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파격적인 콘셉트의 럭셔리 호텔을 탄생시켰다.

    뉴욕 매디슨가 ‘모건 호텔’이 원조



    모건 호텔이 대성공을 거두자 슈레거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과 의기투합해 뉴욕에 ‘더 로열튼(The Royalton)’ ‘더 허드슨(The Hudson)’이라는 부티크 호텔을 개장하고 샌프란시스코의 ‘클리프트(Clift)’, LA의 ‘몬드리안(Mondrian)’까지 컬래버레이션을 이어갔다. 그의 성공 비법은 각각의 호텔에 각기 다른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영입해 호텔마다 색깔을 달리하고, 객실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들이나 가치 있는 앤티크 가구를 채우고, 욕실에도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을 구비해 숙박자들에게 극상의 럭셔리를 제공한 데 있다.

    대형 5성급 호텔 지고 ‘부티크 호텔’ 뜨다

    뉴욕에 ‘모건 호텔’을 열어 세계적인 부티크 호텔 붐을 주도한 이언 슈레거가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 뮤론을 기용해 만든 ‘40본드’. 부티크 호텔에서 한발 더 나아간 뉴욕 최고의 레지던스로 건물이 예술품 그 자체다.

    또한 기존 호텔들에서는 직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데 비해 부티크 호텔은 화젯거리를 가진 레스토랑이나 바를 아웃소싱 방식으로 호텔 내에 오픈시켜, 사교계 인사나 트렌드 세터들이 모여드는 ‘스폿’으로 자리잡게 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 드 쿠바’에는 젊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드나들고, 슈레거가 런던에 오픈한 부티크 호텔 ‘세인트 마틴스 레인(St. Martins Lane)’은 시크한 런더너들의 만남의 광장이 됐다.

    슈레거가 도입해 성공을 거둔, 부티크 호텔과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조합(Successful Boutique Hotel = Inner Hotel Hot-Spot)은 이후 출범한 다른 부티크 호텔들에 공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는 미국뿐 아니라 런던 파리 등 유럽 대도시들에도 다양하고 새로운 부티크 호텔이 생겨났고, 그 열풍은 지중해나 아시아의 섬 지역에 있는 고급 휴양지로 확산됐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부티크 호텔의 콘셉트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아시아 지역에선 처음으로 서울에 진출한 W호텔이 부티크 호텔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W호텔은 쉐라톤과 웨스틴 등이 속한 호텔 체인 ‘스타우드(Starwood)’에서 부티크 호텔을 표방해 만든 고급 호텔로, 엄밀히 따지면 부티크 호텔의 범주에 넣기는 어렵다.

    얼마 전 필자가 런던에 머무는 동안 한국에서 호텔 관련 학과를 다니는 학생 몇 명을 만날 기회가 있어 런던에서 인기가 높은 부티크 호텔 ‘샬롯 스트리트 호텔’로 초대했다. 필자는 그 학생들에게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부티크 호텔에 관한 지식이 ‘W호텔’ 외에는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부티크 호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부티크 호텔=럭셔리 호텔’이라는 것이다. 실제 모든 부티크 호텔의 숙박비가 5성급 호텔이나 그 이상으로 비싸지는 않다. 요즘은 부티크 호텔 초창기 때와 달리, ‘부티크 호텔=럭셔리’라는 관점보다 ‘독특한 콘셉트’에 ‘감각 있는 디자인’이 부티크 호텔과 일반 호텔을 구분짓는 기준이다.

    대형 5성급 호텔 지고 ‘부티크 호텔’ 뜨다

    런던 ‘세인트 마틴스 레인’의 독특한 로비(위). LA‘몬드리안 호텔’의 바(하단 좌). 런던 ‘샬롯 스트리트 호텔’ 입구(하단 우).

    얼마 전 파리에 문을 연 ‘호텔 아무르’는 객실이 20개밖에 없고 숙박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요즘 인기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무슈 A(Monsieur A)’나 KAWS의 작품이 가득한 방에서 머물 수 있어 패션 피플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 뉴욕 ‘룸메이트 호텔-그레이스’ 역시 타임스퀘어 옆의 중심 지역임에도, 심플한 배치와 유니크한 동선을 구성해 저렴한 가격대로 숙박이 가능한 색다른 콘셉트의 부티크 호텔 중 하나다.

    감성적인 자극과 묘미 체험 공간

    대부분의 부티크 호텔은 체인 호텔들보다 객실 수가 현저히 적고, 체계화된 서비스나 편의성이 떨어져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높은 가격을 치르면서라도 부티크 호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숙박과 서비스라는 기능성을 넘어 감성적인 자극과 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주거공간에 부티크의 개념을 도입한 ‘부티크 레지던스(Boutique Residence)’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선봉에도 이언 슈레거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주거와 호텔이 결합된 그래머시 파크 호텔과 그래머시 파크 노스를 거장 줄리앙 슈나벨을 영입, 최고의 ‘아트’로 중무장한 부티크 호텔과 부티크 레지던스로 바꿔놓더니 얼마 전에는 독일월드컵 주경기장을 설계한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 뮤론을 기용해 최고급 레지던스인 ‘40본드(40 Bond)’를 완공했다.

    ‘진정한 뉴요커라면 뉴욕에 있는 각양각색의 부티크 호텔을 다녀봐야 한다’는 슈레거의 말처럼, 그 나라와 도시의 문화적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선도하는 곳이 부티크 호텔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도 종로와 강남 일대에 작지만 콘셉트가 분명한 호텔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니, 특정한 부티크 호텔에 머물기 위해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