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2003~2007년까지 3000여 만kg 수입 … 갈비찜, 갈비탕, 꼬리곰탕용으로 팔려나가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5-29 11: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5월20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한우를 구입했다. 육수용 양지머리, 구이용 안심을 각각 500g씩 샀는데 금전출납기에 찍힌 가격이 8만원을 훌쩍 넘었다.

    서울에서 팔리는 한우 등심 최상품(1㎏)은 10만원 안팎인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할인점에 진열된 쇠고기 등심 최상급(1kg)은 24달러(2만2000원). 한우 값은 월급쟁이 처지에선 지나치게 비싸다. “쇠고기보다 훨씬 맛있다”면서 아내가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고집해온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가격으로 쇠고기 요리를 내놓는 식당들이 많다.

    ‘쇠갈빗살 1인분 6000원’ ‘매운갈비찜 1인분 5000원’.

    쇠갈비찜 5~6인분에 쇠갈비탕을 얹어주는 패키지는 인터넷에서 2만원대에 거래된다. 쇠고기의 ‘원산지’는 ‘수입산’이라고만 밝혀져 있다.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이 쇠고기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일까? 호기심이 동했으나 정체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송형, 나는 통조림 안 먹어. 다른 집으로 갑시다.”

    3월 초 인천세관에서 일하는 취재원 A씨를 만났다. “단백질 좀 보충하죠”라며 한 식당을 가리키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그랬다. 값싼 쇠고기는 중국에서 수입된 통조림이었다. 호기심이 꼬리를 물었다. 중국은 구제역 발생 국가인데, 중국에서의 쇠고기 수입이 금지돼 있을 텐데….

    국회 박재완 의원실에서 일하는 또 다른 취재원 B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국산 꼬리곰탕 갈비탕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저가 식당들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조사팀이 촬영한 중국의 한 쇠고기 캔 공장. 붉은빛의 고기는 냄새가 나는 등 신선도가 떨어졌다(아래).

    취재에 나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중국산 진공캔 상태 쇠고기 수입 현황’ 자료를 입수했다. 2003~2007년(3월 현재)에 들어온 중국산 캔 쇠고기는 3064만6276kg. 4500만 달러에 이르는 규모다(표1 참조).

    쇠고기 캔을 수입하는 회사들은 대부분 ‘식품’ ‘통상’ ‘상사’ 등의 이름이 붙은 군소업체였는데, 눈에 익은 대기업이 한 곳 포함돼 있었다. 식자재 유통과 위탁급식 사업을 벌이는 C업체.

    C업체에 전화를 걸어 쇠고기 캔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물었다. C업체가 식자재를 납품하는 한 회사 구내식당에서 가끔 끼니를 때우는 터라 궁금한 점이 많았다.

    “학교 식당엔 절대로 납품 안 한다. 확실하다. 다만 우리가 도매상에 납품한 쇠고기 캔이 학교 식당으로 갈 수는 있다. 산업체(기업)급식당에 주로 들어간다. 일반 식당엔 도매상에서 납품하는 것으로 안다. 중국 쪽 공장의 공정을 단계별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위생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완제품을 랜덤해 조사하는 등 만전을 기한다. 우리가 관리하는 공장은 다른 공장과는 다르다.”(C업체 관계자)

    과연 믿어도 될까. 구제역은 소 돼지 사슴 양 등 우제류(偶蹄類)에 전염돼 생기는 악성 가축전염병이다. 한국은 구제역 발생국에서의 육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처럼 구제역이 똬리를 튼 나라다. 그러므로 가축전염예방법 32조 및 농림부 고시(2007-28호)에 의해 중국산 쇠고기 돼지고기의 수입이 봉쇄돼 있다. 그렇다면 쇠고기 캔은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쇠고기 캔 수입은 불법이 아니다. 멸균처리하지 않은 중국산 햄, 소시지 반입은 금지돼 있지만 끓는 물에서 삶은 쇠고기, 돼지고기는 세관을 통과할 수 있다. 끓인 뒤 밀봉했다면 구제역이 문제 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쇠고기 캔 3kg들이의 거래 가격은 5달러(4700원, 같은 양의 최상급 한우 값은 30만원 안팎이다). 한국의 식당엔 캔 하나가 1만5000원에 납품된다.

    중국의 쇠고기 캔 제조업자는 “한국 쪽 마진이 쏠쏠해서인지 수출 물량이 늘고 있다. 매월 5000~6000t의 쇠고기 캔이 한국으로 수출된다. 우리 공장도 휴일 없이 쇠고기 캔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캔에 든 쇠고기 맛은 무미(無味)에 가까웠다.

    현지 조사팀 “안전성 장담 못해”

    B씨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보좌진 등 6명으로 조사팀을 꾸려 5월15~19일 중국 현지로 실태조사를 다녀왔다. 조사팀은 칭다오, 웨이팡, 웨이하이, 쇼우광, 라이시, 저머, 청양에 둥지를 튼 쇠고기 가공공장과 재래시장 대형마트를 방문해 캔 쇠고기의 안전성을 살펴봤다. 조사팀의 결론은 일부 공장의 경우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다음은 조사팀이 파악한 실태의 일부다.

    1. 중국인은 생쇠고기를 구입해서 먹지 캔 상태의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2. 일부 쇠고기 캔 제품은 털이 긴 소(야크·Yak)와 물소(Asiatic water buffalo)를 쓴다는 증언이 있었다.

    3. 도축 후 오랫동안 냉동하지 않은, 선도가 떨어지는 원료를 쓰는 공장도 있다고 한다.

    4. 쇠고기가 수천 km를 이동하는데도 냉장차나 냉동차를 쓰지 않고 보통 화물트럭으로 운반한다.

    조사팀이 중국 A시 재래시장에서 만난 50대 중국인 L씨는 “중국 사람들은 신선육을 선호한다. 캔 상태의 쇠고기는 먹지 않는다. 나는 쇠고기 통조림이 팔리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던 1970년대엔 질이 떨어지는 고기를 모아 통조림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말했다.”

    조사팀은 칭다오와 웨이하이의 대형마트에서 쇠고기 캔 판매 여부를 살펴봤는데, 상점 직원들은 하나같이 “쇠고기 통조림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말했다. 쇠고기 통조림 공장은 ‘오로지’ 한국 시장만을 겨냥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산둥성 C시의 공장은 한국이 수입하는 전체 쇠고기 캔 물량의 10%를 감당하는 곳으로, 이 공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양질의 쇠고기로만 통조림을 만든다고 한다.

    “한국 업자들은 질을 떨어뜨리는 대신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한다. A급과 B급 쇠고기를 섞어 쓰라는 것이다. 우리 물건은 다른 공장보다 비싸지만 품질은 확실하다. 황우(黃牛)만 쓰기 때문이다. 털이 긴 소나 물소는 맛이 조금 떨어진다. B급 고기에서 나는 누린내를 없애려면 또 한 번 가공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안 한다. 질 낮은 쇠고기를 가공할 때는 마야방(MSG의 일종인 것으로 보인다)을 첨가하는 것으로 안다.”

    날로 먹어본 캔 쇠고기의 맛은 형언조차 하기 어렵다. 고기는 질기고 국물은 탁했다. 고기를 씹는 건지, 종이를 씹는 건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없었다(無味). 서울에서 팔리는 1만원짜리 양푼갈비찜의 칼칼한 맛은 식당 아주머니의 손맛(조미료+기타 양념) 덕인 듯하다.

    단체 급식용으로 납품

    중국산 캔 쇠고기 서울 식당가 대공습

    적어도 학교 식당만큼은 식자재의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

    조사팀의 녹취 내용 등에 따르면 C시의 한 쇠고기 캔 제조공장은 둥베이(東北) 3성에서 원재료를 조달하는데, 일반 화물차에 실린 쇠고기가 2000km 넘게 이동되기도 한다.

    “생산지에서 도축한 고기를 비닐로 두 번 싸고 이불로 말면 수천km 넘게 운반해도 고기가 말짱하다. 우리 공장에선 안 쓰지만 일부 공장에선 도축 후 냉동실에 넣지 않고 밖에 놔뒀다가 냉동시킨 고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조사팀에 따르면 이 공장에는 한글로 쓰인 라벨이 굴러다녔다. 공장 직원은 “(한국 업체가) 라벨을 주면 우리가 한국 업체의 상표를 붙여준다”면서 “도가니 통조림 주문이 많은데 우리는 원료가 달려 생산을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힘줄, 찢은 고기, 갈비, 꼬리, 골수를 삶아 제품을 만든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건 3kg짜리 반성품(半成品)으로, 고기의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완전히 익히지는 않는다. 너무 익히면 요리할 때 뼈와 살이 갈라진다.”

    중국 B시의 제조공장은 C시의 그것보다 양호했다. 다만 가공 과정에서 맨손을 쓰는 게 문제가 될 듯했다.

    1. 삶은 고기를 위생장갑을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분류했다.

    2. 맨손으로 가위를 쥔 뒤 소의 막(膜)을 떼어냈다.

    3. 멸균 과정이 끝난 쇠고기를 캔에 넣기 전에 손으로 만졌다.

    4. 행주로 작업대를 닦은 뒤 파우치(비닐팩에 든 제품도 있다) 밀봉 부분의 국물을 훔쳤다.

    중국 E시에서 조사팀이 만난 한국인 오퍼상은 “중국산 3kg짜리 쇠고기 캔 하나로 9~10인분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단체급식용으로 납품된다. 허름한 뷔페식당, 결혼식 피로연에 나오는 갈비찜, 꼬리찜, 갈비탕의 상당수가 통조림이다”라고 말했다.

    조사팀의 B씨는 “모르고 먹는 것과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중국인도 안 먹는 통조림을 우리가 먹는다는 건 난센스다. 일정 규모가 넘는 음식점과 단체급식소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표기하게끔 하는 식품위생법 및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중국산이라고 무조건 의심해서는 안 되지만, 소비자 처지에선 ‘made in china’가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통닭, 김밥, 떡 등 자주 먹는 음식 원재료 상당수가 중국산이다.

    “웬만한 식당은 찐쌀을 쓴다고 보면 되요. 설렁탕 도가니탕도 통조림이 다 있어요.”(서울 장안동에서 만난 한 상인)

    중국산 찐쌀은 분식점과 일부 기업체 구내식당에서 사용된다. 또 쌀강정 등 가공식품에도 쓰인다. 수입한 뒤 재가공(요리)되는 식품은 원산지 표기 의무가 없어 소비자는 생산지를 파악할 수 없다.

    중국에서 찐 뒤 한국에 들어온 쌀은 한국쌀보다 길이가 짧고 폭이 넓다. 허름한 기사식당의 백반이 대표적이다. 찐쌀로 지은 밥은 찰지지 않아 구별할 수 있으나, 대학교 앞에서 파는 볶음밥과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살 수 있는 김밥 속 찐쌀은 구분하기 어렵다(찐쌀에선 표백제로 쓰이는 이산화황이 검출된 적도 있다).

    B씨의 주장대로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다르므로, 적어도 학교급식을 비롯해 특정 규모가 넘는 식당에선 식자재의 원산지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

    ▼ [표1] 중국산 쇠고기 캔 국내 수입 현황
    연도 중량(kg) 금액($)
    2003년 1,910,785 2,878,846
    2004년 2,837,178 4,003,158
    2005년 10,774,684 16,248,162
    2006년 12,155,401 17,444,038
    2007년 1~3월 2,968,228 4,157,098
    합계 30,646,276 44,731,302
    *자료 : 식품의약품안전청


    ▼ [표2] 중국 구제역 발병 현황
    연도 발생일 발생 지역 축종 혈청형
    2005년 12월6일 산둥성(山東省) Asia 1
    2007년 1월15일 간쑤성(甘肅省) Asia 1
    *자료 : 농림부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