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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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流 번영과 문화 소통의 場”

  • 김상수/ 극작가·연출가·미술가·문화기획가 www.kimsangsoo.com

    입력2005-10-31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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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韓流)에 이어 혐한류(嫌韓流) 현상이 가까운 이웃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한국 대중문화의 파급 현상을 한철 ‘돈벌이’ 정도로 이해하는 비좁고 얕은 생각으로는 한류는 역류(逆流)로 흐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한국의 사회 문화를 잘못 읽는 결과를 빚거나 일본 극우세력 등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빌미로, 또는 낚시에서 밑밥을 뜻하는 일본말 마키에사(まきえさ)라는 말처럼 떡밥으로 한류가 이용당하는 문화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 한류로 나타나는 현상은 대중 문화적 현상이지만 근거 없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솟아난 것으로 인식해서는 곤란하다. 한류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있게 다듬고 세련시키면서 우리 일방의 발신(發信)만이 아닌,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한류에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한·중·일 협력과 경쟁 공존

    유럽이 단일화폐를 쓰는 초국가적 공동체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한자 유교 문화권이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한, 중, 일 3국의 경우에는 세계 여타 지역보다 경제협력이 더딜 뿐 아니라 반목과 갈등이 상존하는 정치·경제적 교류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 남북 문제와 중국 대만 문제, 경제적 격차, 역사 이해의 갈등 등은 이 지역의 평화와 발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도 한, 중, 일 3국은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다. 또한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고 인적·물적 교류도 빈번해지면서 각국의 경쟁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동북아 지역에는 활력과 도전,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

    동북아 지역은 세계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경제적 생산성과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인구 비중도 크다. 동북아와 동아시아는 세계 장래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에서 이미 지역권을 넘어선다. 여기에 한류는 서로 인접한 지역권에서 오는 정서적 공감대를 촉발시켰으며 지역권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자로 등장했다. 이는 한, 중, 일 3국의 문화권을 뛰어넘어 더 넓은 지역권으로 나아가게 하는 상호 이해의 교차점에서 한류가 작동 가능하다는 것을 내다보게 하면서, 더 넓은 커뮤니티 네트워크로 한류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게 한다.



    가야와 백제 문화의 이식을 통해 문화의 꽃을 피운 일본은 천년 역사를 지나면서 힘의 논리를 기층 논리로 받아들이고 폐쇄적인 사회로 변화했다. 지난 100년 동안 힘의 강제와 실현이 일본의 국시(國是)였고 이는 이웃나라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기면서 자국민의 목숨까지 숱하게 앗아갔다. 그런 일본인들이 새삼 한류를 통해 한국인이 일본인에 비해 자연스러운 심성을 지녔고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임을 재발견했다. 그들은 일본의 문화처럼 인공적인 특성이나 중국의 문화처럼 자연을 압도하는 작위성과 극단적인 위계성을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들 얘기한다. 또한 중국인들과 몽골인들도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표현의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을 본다고 말한다.

    “韓流 번영과 문화 소통의 場”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만든 ‘아르테’ 방송사의 스튜디오 모습.

    그렇다. 여기에 한류의 새로움이 있고, 이러한 특징은 한류가 동북아 한자문화권인 한, 중, 일 3국의 상생성(相生性)으로 발전하여 동아시아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장(場)이 되기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수년 전부터 아시아 문화·예술·역사 경험의 새로운 발견과 구축의 장을 만들기 바라며, 또 지난 100년간의 비극적인 역사를 극복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또한 한류가 더 지속적이고 더 세련된 형식과 깊이를 갖고 발전하게 하기 위해서, 광복 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획전문위원을 2월에 스스로 사퇴하기 직전까지, 한, 중, 일 세 정부가 공동출자하는 가칭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East Asia Broadcasting System-TV)’ 출범을 줄곧 주창해왔다. 광복 60년을 맞아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에게 제안하여 방송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광복 60년 기념사업의 정체성에 동의할 수 없었던 필자가 사퇴하면서 이 계획은 현재 수포로 돌아간 상태다.

    한국정부 진지한 논의 필요

    여기서 참고로 유럽의 아르테(ARTE)란 텔레비전 채널을 보자. 서로 이웃했지만 반목과 전쟁을 일삼던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어 문화교류의 장을 만들고, 어두운 역사를 불식시키면서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방송에 의한 유럽통합을 이뤄낸 배경과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르테(ARTE)란, 1986년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콜 수상이 유럽연합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추진한 사업이다. 문화 방송의 실현을 목적으로 문화·교양·역사·예술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송하며 독어와 불어 2개 국어로 시청이 가능하다. 7년간 양국의 관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끝에 방송의 기본 형식과 내용, 조직과 시설을 갖추어 1992년 5월30일 첫 방송을 실시했다. 광고가 없고, 예산, 인원, 프로그램 모두 양국이 2분의 1씩 부담하면서 예산 조달은 프랑스는 정부보조금으로, 독일은 수신료로 충당한다. 프로그램은 양국이 분담하여 제작한다.

    이 방송은 독일,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대상으로 방송을 실시하면서 유럽공동체(EU)의 산파역을 했다.

    한, 중, 일 3개국의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는 방송을 통해서 동북아와 더 넓게 동아시아까지 포섭하는 상생적 기틀을 지속적 상시적 네트워크로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류는 이제 일방적인 문화전파가 아닌 소통의 발현이고 발신일 수 있어야 한다. 문화란 흐름이고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의 영향이 계속되는 것일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지식과 정보의 ‘창의성(Creativity)’이 국가와 지역의 풍요를 결정하며 선진 사회는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문화적 성숙이 뒤따라야 가능해진다. 한류가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에는 소통이란 역할의 증대뿐 아니라 글로벌 시대 국가의 핵심 역량을 문화가 결정한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한류는 더욱더 창의적인 콘텐츠로 채워져야 하며 정부는 창의적 문화가 기반이 되는 경제 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제반 인프라를 하루바삐 구축하고 가동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인류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창의성이다. 문화나 예술은 이제 국가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란 사실을 국가 정책에서 우선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

    창의성과 문화의 산업화를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 국가발전의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한, 중, 일 3개국의 ‘동아시아 문화, 역사, 예술 텔레비전 방송위원회’의 설립은 한류의 주체인 한국이 먼저 주도권을 쥐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제안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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