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8

2004.06.10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말없는 설법

  • 입력2004-06-02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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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말없는 설법
    오대산 월정사로 오르는 전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신비한 느낌에 빠져든다. 쭉쭉 솟은 전나무의 기운으로 저절로 마음이 곧아지는 느낌이 든다. 자장율사가 적멸보궁을 지은 기념으로 꽂은 주장자(柱杖子·설법용 지팡이)가 그대로 자라난 나무, 강릉 등명락가사의 정자나무, 부석사 일주문의 은행나무들은 또 어떤가. 부처의 설법 못지않은 소중한 깨달음을 말없이 전해주는 나무들이다.

    기자 출신으로 1999년부터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서 머물며 나무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고규홍씨(44·사진)가 절집의 아름답고 오래된 나무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절집나무’를 펴냈다. 사진작업은 지난해 ‘이 땅의 큰 나무’를 펴내며 호흡을 맞췄던 사진작가 김성철씨가 맡았다. ‘이 땅의 큰 나무’ 못지않은 울림을 주는 나무 보고서다.

    “절집들은 모두 오랜 역사와 문화의 한켠을 말없이 지켜주는 전통문화의 증거물들이지요. 절집마다 오래된 이야기와 기록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는 소리 없이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사람살이를 지켜본 나무가 있습니다. 또 그런 나무를 말없이 키워온 절집 사람들의 생명존중 문화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절집은 모두 33곳. 170여곳의 절집 답사를 거쳐 선정했다. 나무는 산뽕나무, 산벚나무, 고욤나무, 보리수, 백목련, 고로쇠나무 등 60여종. 지은이는 각각의 절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나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진 환경, 식물학적 생태까지 보여준다.

    ‘자연이 빚은 수목원’이란 별칭을 얻은 전남 순천의 선암사 같은 곳에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들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절집 창건 초기에 심어진 나무를 이제껏 잘 가꿔오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가의 전통 덕분이다.



    충남 서산 개심사에선 자연의 생태를 존중한 건축 철학도 엿볼 수 있다. 이곳 요사채인 심검당에는 기둥으로 쓰기에 너무 심하게 휘고 비틀린 나무로 집을 지어 자연 모습 그대로를 건축물에 끌어들인 옛 스님들의 지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천리포수목원 재단 감사이며 무가지 ‘포커스마라톤’의 온라인팀장으로 있는 고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답사와 글쓰기로 보내며, 나무처럼 느리고 욕심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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