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2004.05.27

탈북자 돕는 게 도대체 무슨 죄냐

‘중국 억류’ 제2 석재현씨 10여명 고통 … 정부 석방 노력 미흡 가족들 ‘절망의 나날’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5-20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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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자 돕는 게 도대체 무슨 죄냐
    중국에 3일만 다녀오겠다며 나간 아들이 열다섯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매일 밤 아들이 꿈에 나타나 ‘엄마, 난 김치 한 가지면 좋아’라고 말하는데, 휴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망명 과정을 취재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프리랜서 사진작가 오영필씨(34)의 어머니 강순남씨(65)는 아들을 떠올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착하고 성실하던 아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오씨는 2003년 3월17일 일본 도쿄방송(TBS)과 계약을 맺고, 중국 광저우에 있는 일본 영사관으로 잠입하려던 탈북자들을 동행 취재하다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타인 불법출국 알선 혐의’로 광저우 제1 간수소에 수감된 오씨는 지난해 8월 중국인민법원에서 1차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판결이 나오지 않아 가족의 애를 태우고 있다. 중국 국내법상 확정 판결을 받지 못한 사람은 면회가 불가능해 가족들은 1년 넘게 오씨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탈북자 돕는 게 도대체 무슨 죄냐

    중국에 억류돼 있는 프리랜서 비디오 저널리스트 오영필씨와 인권운동가 최영훈씨, 전도사 김희태(오른쪽)씨와 형 희준씨(왼쪽부터).

    대북 선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대표 천기원)가 ‘제2의 석재현’으로 불리는 오씨의 구명운동에 적극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탈북자 문제 등으로 중국에 억류된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탈북자 인권관련 시민단체들은 “우리 정부가 억류된 한국인들이 풀려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 내 탈북자들의 해상 탈출을 취재하다가 중국 공안에 붙잡혀 1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던 프리랜서 사진작가 석재현씨(35)는 가족과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온 석씨 외에 10명이 넘는 한국인이 여전히 탈북자 문제로 중국에 억류돼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왜 쉽게 돌아올 수 없는가. 또 중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할 수 없는 한국 정부의 고민은 무엇인가. ‘주간동아’는 중국에 억류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다.



    가족 뿔뿔이 흩어져 살며 ‘눈물’

    인권운동가 최영훈씨(41)는 지난해 1월 중국 옌타이 기차역에서 석재현씨와 함께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탈북자의 이주를 도운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중국 산둥성 웨이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취재를 위해 탈북자들을 만난 석씨와 달리 탈북자 이주를 주도한 최씨는 쉽게 풀려날 수 없었다. 당초 옌볜으로 들어가 탈북자 20명 정도와 함께 기차로 14시간을 이동한 후 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올 계획이었다.

    탈북자 돕는 게 도대체 무슨 죄냐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은신처(맨 왼쪽). 1997년 탈북자 김경일씨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모습(가운데 사진 동그라미)과 2001년 북한에 끌려갔다가 탈출해온 직후 매를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김씨.

    5월 초 최씨를 만나고 돌아온 부인 김봉순씨(36)는 중국의 감옥에서 높은 혈압으로 고생하는 남편의 수척한 모습에 마음 아파했다.

    “남편은 따뜻한 사람이죠. 감옥에서도 늘 가족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1998년부터 중장비 사업을 하며 중국에 드나들기 시작한 남편이 극한상황에 처한 탈북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어요. 황해도 해주 출신인 시아버지의 가족 소식을 수소문하느라 많은 탈북자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2002년 말 남편 사업이 중국에 진출하며 우리 가족 모두 중국으로 갔지만 남편은 두 달 만에 잡히고 말았어요.”

    최씨가 체포되면서 최씨 가족은 한국으로 바로 돌아왔으나 서울에서 집 구하기도 마땅치 않아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최씨의 큰딸은 경기 부천의 할아버지 댁에 보냈고, 부인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딸과 서울 중랑구 묵동의 작은집에 살고 있다.

    주말에 한 번씩 만나는 이들 가족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최씨의 편지를 읽는 일이다. 올해 1월 필기구 하나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최씨는 가족들에게 성경을 오려 만든 편지를 보냈다. 17일 동안 A4용지에 깨알 같은 글자를 빽빽이 오려 붙인 편지에는 온통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최근에는 두 딸의 스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식을 맡기고 한 번 찾아뵙지 못한 상황이어서 죄송하다”며 “두 딸이 공부로 1등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정직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부인 김씨는 “인류애에서 비롯된 일을 법으로 단죄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남편의 석방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전도사 김희태씨(32)는 2002년 8월31일 중국 지린성 창춘의 기차역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하려던 15살 소년을 포함한 탈북자 11명을 베이징행 기차에 태우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옌지법원에서 7년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현재 옌지감호소에 수감 중이다. 한신대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탈북 어린이 돕기에 앞장서온 그는 “헐벗고 어두운 곳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소신을 간직하고 중국에 갔으며 2002년 9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중국 눈치 보지 마라” 강력 촉구

    김씨의 형 희준씨는 한창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두 발이 묶인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해 탈북자의 이주를 도운 일본인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는데 7일 만에 풀려났어요. 그때 일본인과 함께 풀려난 한국인이 ‘내가 풀려난 것은 다 일본 사람 덕분’이라고 말하더군요. 일본처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 정부에 화가 날 따름이지요. 3년째 희태를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니….”

    김씨의 어머니는 2002년 초 남편을 잃고 몇 달 후 희태씨마저 중국에 억류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루빨리 희태씨가 돌아오는 것이다.

    최봉일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목사의 별칭은 ‘탈북자의 대부’다. 그는 중국 내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해오다가 2002년 4월 옌지시 자택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2003년 12월9일 1심 판결에서 9년형을 선고받고 지금 2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 최목사의 부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기보다 고통의 시간을 신앙의 힘으로 조용히 극복해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남편은 신의 뜻에 따라 탈북자 돕기를 했을 뿐이며 그에 따른 고통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억류된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 머물던 탈북자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인 김경일씨(28)는 1997년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동료 탈북자 70여명을 남쪽으로 보내는 등 헌신적 활동을 벌여오다 2002년 4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11년형을 선고받고 창춘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김씨의 부모 등은 98년 태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97년 탈북한 뒤 2001년 중국 공안에 적발돼 한 차례 북송된 경험이 있는 김씨가 또다시 북송된다면 생명조차 보장받을 수 없다. 김씨의 아버지 김복만씨는 “아들이 11년형을 선고받아 북에 끌려갈 확률이 줄어들었다지만 탈북자라는 신분 때문에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재미교포인 최요셉씨 등 10명이 넘는 한국인이 중국에 억류돼 있으나 개인적 사정이나 가족들의 반대로 억류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이렇듯 순수한 의도로 탈북자들을 돕는 이들이 중국에 억류되는 상황을 놓고 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천기원 두리하나선교회 대표는 “2001년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탈북자에 대해 난민 판정을 내렸다. 국제법 우선원칙이 적용되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난민인 탈북자의 이주를 도왔다는 죄명으로 한국인을 잡아들이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기 어려운 실정이다. 외교통상부 특수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헌법상 북한 주민은 우리나라 국민으로 명시돼 있어, 그들을 난민이라 칭하기 어렵다. 다만 탈북자 문제를 인도주의적 시각에서 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억류자 가족들은 “억류자들을 냉혹한 분단 현실과 미묘한 국제관계 속의 희생양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며 더욱 강력한 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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