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8

2015.07.27

추억 대신 힐링 만화방의 대변신

웹툰 열광, 순정만화 부활 등 소비층 늘어…데이트족부터 가족 단위 손님까지 북적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5-07-24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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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대신 힐링 만화방의 대변신
    장거리 운전과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치이는 휴가보다 느긋하게 뒹구는 휴가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이러한 ‘힐링 휴가’를 보내기에 ‘딱’인 장소가 서울 도심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간 곳은 서울 강남구 일명 세로수길에 위치한 만화카페 ‘섬’. 평일 오후 4시쯤, 한 건물 2층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방금 지나온 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후텁지근한 날씨 탓에 한산했던 거리와 달리 만화카페 안은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여러 개의 2층 침대와 그네소파, 1인용 쿠션소파 등으로 채워진 실내에서 사람들은 눕거나 엎드린 채, 혹은 소파에 푹 파묻힌 채 만화 읽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오승민 섬 사장은 “사람들이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심 속 휴양지 같은 느낌을 살리려 애썼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고 실내 분위기가 화사해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 여자 손님이 많다”고 했다.

    1만 원짜리 데이트 코스로 인기

    이곳에서 만난 10대 후반 남녀 커플은 “베트남에서 함께 유학하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재외국민 특례입학시험을 치르려고 잠시 귀국한 이들은 “그동안 시험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짬을 내서 왔다. 내 방 침대는 아니지만 푹신한 침대에서 맘껏 뒹굴며 만화책을 보니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성민 섬 매니저는 “대학 방학이 시작되면서 평일 낮부터 만석인 날이 많아졌다. 근처 카페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 대학생과 직장인 커플 등 20, 30대 손님이 많은 편”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만화카페 ‘와이랩(YLab)’은 2013년 12월 문을 열었다. 동명의 만화제작사(대표 윤인완)가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다양한 만화책과 ‘아이언맨’을 비롯한 유명 캐릭터 피규어가 곳곳에 놓여 있어 마치 만화 속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벽면에는 만화가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일러스트 액자를 걸어놓아 만화마니아의 방이 연상되기도 했다. 이재용 와이랩 매니저는 “원래 회사 소속 작가들의 작업실로 운영되던 곳인데 대표님이 만화카페로 꾸몄다”고 했다. 그는 “케이블TV에서 방송된 드라마 ‘미생’이나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 모두 원작이 웹툰이다. 최근에는 30대 중후반 여성들 사이에서 순정만화 붐도 일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만화와 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등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면서 만화방이 진화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15 1분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만화 매출액은 2276억83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6% 증가했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4 콘텐츠산업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국 만화방(만화카페 포함) 수는 782개다. 하지만 전국만화방연합회 측은 현재 전국적으로 850여 개 만화방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카페와 만화방을 결합한 만화카페와 달리 도서대여점에 속하는 만화방은 ‘면세사업자’에 해당돼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간이과세자로서 종합소득세만 내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둠침침한 불빛과 자욱한 담배연기, 퀴퀴하고 냄새나는 골방 느낌의 기존 만화방이 5060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한다면 최근 새로운 분위기로 거듭난 만화방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웹툰을 즐기는 젊은 층 취향에 맞춰 깔끔하고 쾌적한 느낌의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만화책 외에 커피와 음료, 떡볶이, 라면 같은 간식거리도 갖추고 있어 한곳에서 먹고 마시고 놀면서 데이트를 즐기려는 남녀 커플이 즐겨 찾는다.

    인천의 한 만화카페에서 만난 대학 2학년생 김은빈-이성현 커플은 “요즘 새로 생기는 만화방은 분위기가 좋고 가격도 시간당 2000~3000원 정도여서 인기가 많다. 두 명이 만화책을 맘껏 보고 음료와 간식을 먹는 돈까지 전부 합쳐도 1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며 흡족해했다. 이 카페 관리책임자인 이성용 씨는 “만화방뿐 아니라 북카페도 겸해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이 많다. 아이는 만화책을 보고 어른은 소설이나 수필을 읽고 간다. 평일 낮에는 아이 손을 잡고 학습만화를 빌리러 오는 주부도 많다”고 했다. 그는 “보통 만화방은 24시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밤 12시면 문을 닫는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이 아니면 가족 단위 손님이나 젊은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만화카페는 대부분 밤 11~12시에 영업을 마친다.

    ‘묻지 마 창업’은 피해야

    이처럼 만화방이 인기를 끌자 만화방 전문 창업컨설팅 업체도 늘고 있다. 중·장년층 은퇴자들의 퇴직금을 노린 만화방 창업 사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대전에서 28년째 만화방을 하고 있는 정승만 전국만화방연합회 회장은 “기존 만화방 옆에 새 만화방을 차린 뒤 가격을 후려쳐 손님들을 단시간에 끌어들인 다음 정보지에 창업상담 광고를 내고 비싼 값에 가게를 넘기는 수법을 쓰는 악덕업자들이 생기고 있다. 장사가 안 돼 가게를 내놓으면 악덕업자가 다시 그걸 헐값에 사들여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떠넘긴다. 중·장년층 은퇴자가 은퇴자금을 날렸다고 상담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 안타깝다. 정부에서 업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단속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일명 ‘19금 책파파라치’도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르면 만화방은 청소년 출입이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19세 미만 구독불가’ 만화는 일반 만화책과 따로 구분해 진열해야 한다. 이른바 ‘책파라치’들은 성인만화가 일반만화에 섞여 있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다음 신고포상금을 타낸다. 만화방 업주 김모 씨는 “가끔 손님들이 성인만화를 보고 아무 데나 꽂는 경우가 있다. 수만 권의 책 가운데서 그걸 제때 골라내기가 쉽지 않은데, 일단 걸리면 벌금이 300만 원이라 아예 ‘청소년 출입금지’ 팻말을 내거는 만화방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한편 만화방 인기는 백화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현대백화점 울산점에는 국내 최초 백화점 만화카페 ‘익살스런 상상’이 생겼다. 96㎡ 넓이에 복층으로 된 이곳은 다락방과 토굴을 만들어놓아 신발을 벗고 들어가 편히 뒹굴면서 만화책을 볼 수 있게 실내를 꾸몄다. 박인호 현대백화점 울산점 판매기획팀 주임은 “가족 단위로 쇼핑을 오면 쇼핑에 관심 없는 40, 50대 남성들이 쉴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화방을 떠올렸다. 까치, 독고탁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추억의 만화부터 신세대 만화책 그래픽 노블까지 비치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조성했다. 평일 아이 손을 잡고 백화점을 찾은 주부들이 2~3시간씩 아이를 만화방에 두고 쇼핑을 즐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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