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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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중년돌’ 전성시대

‘따도남’ 중견 배우들 탄탄한 실력과 연륜으로 왕성한 활동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1-02-14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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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계 ‘중년돌’ 전성시대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가장 주목받는 커플은 주인공인 유승호(김민재 역)와 서우(백인기 역)가 아니다. 아름다운 중년의 로맨스를 보여주는 조성하(김영준 역), 김희정(윤정숙 역) 커플이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 지친 재벌 2세 영준은 따뜻하고 착한 시골 여자 정숙을 만나 설레는 감정을 느낀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남자를 하늘로 떠나보낸 후 희생적인 삶만 살아온 정숙 역시 영준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랑에 마음을 연다. 불륜이지만 애틋하고 순수한 이들의 사랑에 2050 여심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뒤늦게 안방극장에 얼굴을 알린 조성하는 영준으로 인해 ‘꽃중년’ 스타로 급부상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도 이들의 열정을 막진 못했다. 1월 23일 오후 4시 서울 동숭동의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앙코르 상연하는 ‘민들레 바람 되어’를 보기 위해 40, 50대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 앞에서 일상의 고달픔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는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고, ‘연극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연일 매진 세례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중적인 인기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중견 배우 정보석과 조재현이 남편 ‘안중기’ 역을 맡아 더욱 화제다. 주연이자 이 연극의 프로그래머인 조재현은 “무대에 설 때마다 중장년층 관객, 특히 남성 관객이 부쩍 늘어 깜짝 놀랄 정도”라고 귀띔했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역

    ‘NEO 50’ 열풍은 문화예술계에서도 거세다. 우선 방송계에서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특히 SBS 드라마 ‘자이언트’의 정보석(49), ‘싸인’의 전광렬(49), KBS ‘신데렐라 언니’의 김갑수(54), MBC ‘욕망의 불꽃’의 조민기(46) 조성하(45), ‘황금물고기’의 박상원(52) 등은 ‘중년돌’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의 팬층은 10대에서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른다.

    과거 중견 배우들이 주인공의 부모 또는 삼촌, 이모 등을 맡으며 ‘감초’ 역할에 충실했던 데 반해, 지금의 ‘NEO 50’ 배우들은 사건의 중심축이 돼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자이언트’에서 정보석이 분한 악역 조필연이 적절한 예다. 또 과거엔 이들의 사랑이 지저분한 불륜 또는 코믹한 설정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진지하고 애틋한 로맨스로 그려진다. ‘욕망의 불꽃’에서 조성하, 김희정 커플의 사랑에 시청자들은 더욱 마음을 졸이고 눈물을 흘린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연유한 걸까.



    SBS 드라마국 허웅 국장은 “20~3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와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드라마 영역이 넓어지면서 40, 50대 중견 배우의 역할 또한 다양해지고 구체화됐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엔 연기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 배우가 자신보다 3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역할도 소화해야만 했다. 즉, 30대 여배우가 60대 할머니까지 연기했던 것. 하지만 연기자 풀(pool)이 넓어진 지금 50세 전후라면, 딱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면 된다. 따라서 제작자나 배우 모두 평범한 부모나 삼촌, 이모가 아닌 사건을 이끌어가고 감성을 여실히 표출하는 역할을 요구한다는 것. 또 시청자 수준이 높아지면서 한류 스타나 아이돌이 아닌, 연기력 좋은 중장년층 배우들을 선호하게 된 영향도 있다.

    문화예술계 ‘중년돌’ 전성시대

    영화나 연극에서 중견 배우들의 왕성한 활동은 중장년층의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그들을 관람석에 앉히는 구실을 하고 있다.

    더욱 매력 있어진 중견 배우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가 중장년층, 특히 여성으로 이동하면서 50세 전후 배우들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다뤄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는 드라마 간접광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드라마 제작 지원과 간접광고 등을 총괄하는 마케팅회사 어치브그룹디엔 이희관 마케팅사업본부장은 “여성복이나 골프웨어, 화장품, 건강식품 업체들과 건설회사 등이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에 간접광고를 많이 하는데, 이는 중년 여성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중견 남성 배우들이 여성 시청자에게서 사랑을 받는 건 경제 불황과도 연결된다. 불황기에 여성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문원 씨는 “장기불황을 겪는 일본도 부부 나이가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결혼이 부쩍 늘고, 중견 남성 배우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영화나 연극으로도 이어진다. 특히 방송보다 배우의 연기력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연륜과 탄탄한 실력을 갖춘 50세 전후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게 되는 것. 또 이들은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를 선보이면서 대중성과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중견 배우들의 활발한 활동은 중장년층의 지갑도 열게 하고, 이들을 관람석에 앉힌다. 실제로 ‘민들레 바람 되어’는 2008년 초연 때 관람객 중 30~50대 비중이 70%를 넘었는데, 이번 앙코르 공연의 경우 그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녕하세요, 배우 김갑수입니다. 극단 배우세상 대표입니다. 바이크 BMW R1200GS, 할리데이비슨 883R을 타고요. 강아지 단오 · 우수를 사랑하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좋아해요. 싸이월드, 다음 공식 팬카페, 배우세상 트위터에 놀러 오세요.”

    중견 배우 김갑수가 트위터에 남긴 자신에 대한 소개글이다. 이처럼 지금의 ‘NEO 50’ 배우들은 과거 중견 배우들과 달리,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젊은 세대와 활발히 소통한다. 젊은 팬들이 이들을 좋아하는 건 더욱 매력 있어진 중견 배우 자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선 글에서 보듯 김갑수는 자신의 삶이 젊은 감각으로 점철해 있음을 방송이나 트위터 등 여러 루트로 보여준다. 중견 배우 조성하도 “살이 쪘다고 생각하면 하루 1만5000보에서 2만 보까지 걷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 영화제작자는 “최근 중견 배우 열풍 이면에 얼어붙은 투자 환경이 있다”고 귀띔했다. 특히 영화계에서 중견 배우의 활약이 크게 늘어난 것은 소재가 다양해진 측면도 있지만, 영화에 대한 투자 액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것. 한때 50억~100억 원의 자금이 투자된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많이 제작됐지만, 투자 환경이 얼어붙은 지금은 투자 액수가 10억에서 15억 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몸값’이 비싼 젊은 톱스타를 섭외하기 어려워졌다. 이 제작자는 “솔직히 우리나라엔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가 없다”며 “관객은 배우보다 영화의 내용과 감독을 보고 영화를 선택한다”고 했다. 따라서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몸값이 비싸지도 않으면서 연기력이 보장된 중견 배우들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년 전 문화 실험, 만개하다!

    한편 오늘날 문화예술계를 이끄는 기획사, 제작사 등의 대표와 주요 결정권자도 ‘NEO 50’이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제1회 국제만화예술축제를 기획한 문화예술전문법인 (주)아르떼피아의 이철주(47) 대표는 “극도의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나 어릴 적부터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었고, 문화예술을 ‘진흥’이 아닌 ‘복지’ 대상으로 바라본 첫 세대가 관련 회사의 수장(首長)을 맡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10여 년 전 이들이 중간 간부였을 때 1인당 GNP 1만 달러 시대가 열렸고(1995년), 처음으로 문화 예산 1%가 확보됐다(2000년). 즉 문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지원 역시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자기결정권이 있었던 이들이 다양한 문화적, 예술적 실험을 해볼 수 있었고, 이것이 지금 다양한 ‘꽃’으로 만개하고 있다는 것.

    문화기획자 및 행정가(경기도 문화의전당 이사장 및 경기공연영상위원회 위원장)로 활동하는 중견 배우 조재현도 “문화예술은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고, 변화해야만이 발전할 수 있다”며 “문화기획자 및 행정가로서는 더더욱 호오(好惡)와 정치적 신념, 개인 취향 등을 떠나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는 2010년 자신이 집행위원장을 맡은 제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용산 참사를 다룬 ‘용산 남일당 이야기’,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투쟁을 기록한 ‘저 달이 차기 전에’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을 선정, 상영해 논란이 된 바 있다.

    ‘NEO 50’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며, 문화예술계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참여와 활동이 문화예술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자못 기대된다.

    인터뷰/ ‘욕망의 불꽃’서 열연 탤런트 조성하

    “50세 때도 로맨스 남자 주인공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문화예술계 ‘중년돌’ 전성시대
    웃을 때마다 눈가에 살며시 잡히는 주름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윽한 속쌍꺼풀 눈매와 나긋나긋한 중저음의 목소리, 살짝 목을 가리는 스카프와 몸에 적당히 붙는 옷매무새 모두 요즘 유행하는 ‘따도남’(따뜻한 도시 남자)을 연상케 했다. MBC 드라마 ‘욕망의 불꽃’에서 김영준 역을 맡아 중년의 사랑을 애틋하게 보여주는 탤런트 조성하(45·사진). 1월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실제로도 영준처럼 멋있었다.

    “얼떨떨하죠. 젊은 층뿐 아니라 50, 60대 여성도 많이 좋아해주세요. 우선 ‘영준’이라는 역할이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 여자만 바라보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데다 부유하고 외모도 좋으며 능력까지 있으니(웃음), 어떤 여성이라도 좋아할 만한 남자죠. 특히 상대역인 ‘정숙’에게서 여성 시청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면서 더욱 공감하는 것 같아요. 정숙은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희생하다가 뒤늦게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된 여자니까요.”

    조성하는 뒤늦게 뜬 중견 배우다. 서울예대 연극과 85학번인 그는 연극 및 뮤지컬 무대에서 10여 년을 보냈다. 199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맞아 ‘연극판에서 날린다’는 연기자들이 우후죽순 영화로 빠져나갔을 때도 그는 묵묵히 연극무대를 지켰다. 당시만 해도 연극배우가 영화나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 2000년 초부터 독립영화 주연, 상업영화 조연 등을 맡으면서 조금씩 얼굴을 알렸으나 대중적 인지도는 떨어졌다. 하지만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따뜻하고 합리적인 임금 정조 역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더니, ‘욕망의 불꽃’에서는 유승호-서우 커플을 넘어서는 절절한 사랑을 선보이며 ‘꽃중년’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황해’에서는 주연급인 비열한 살인청부업자 ‘태원’을 맡아 또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젊었을 때는 ‘눈이 너무 강하다’ ‘눈에 광기를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부릅뜨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 눈에 힘을 빼는 법을 저절로 알게 되더군요. 정숙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을 좋아하는 분이 참 많죠(웃음). 물론 ‘황해’를 통해서는 비굴한 눈빛도 보여줬고요. 솔직히 저는 잘생긴 외모도, 아주 뛰어난 연기력도 가지지 못한 배우였어요. 하지만 삶의 연륜, 특히 힘겨웠던 세월이 한 줄 두 줄 더해지면서, 고맙게도 젊었을 때보다 매력적인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젊을 때보다 매력적인 배우

    문화예술계 ‘중년돌’ 전성시대
    조성하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연기자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가족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실제 그도 영준만큼 로맨틱한 남자일까.

    “며칠 전 결혼 17주년 기념일을 맞았어요. 하지만 그날 촬영이 있어서 서랍에 편지를 남기고 왔죠.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사랑한다’고 썼는데, 아내와 중학생인 첫째 딸이 보고 엉엉 울었다고 하더군요. 초등학생인 둘째 딸도 덩달아 울었고요. ‘꿈을 좇는다’며 늘 어린애처럼 살아가는 부족한 남편을 아내가 붙들어줬어요. 무척 고맙죠. 전 두 딸에게도 전혀 엄하지 못해요. 오히려 만만한 친구 같다고나 할까요. 최근에 아빠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무척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제가 더 행복했죠.”

    조성하는 자신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린 딸들의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는데, 아빠의 눈매를 꼭 닮은 두 아이는 무척이나 예쁜 얼굴이었다. “나중에 연예인 해도 되겠다”고 말을 건네자 “그렇다면 적극 밀어줄 것”이라며 허허 웃는 그는 ‘팔불출’ ‘딸 바보’ 아빠였다. 또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팬들을 만난다는 조성하는 최근엔 스마트폰인 휴대전화로 댓글 다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얼굴도장’을 확실히 찍은 그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

    “영화나 드라마 시놉시스가 꾸준히 들어오는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어요. 이 중에는 가슴 절절한 로맨스물도 있는데요. 사실 지금도 ‘꽃중년’이니 ‘중년돌’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조금은 멋쩍어요. 하지만 50세 이후에도 할리우드 배우처럼 중년 남성의 로맨스를 멋지게 보여주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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