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6월호

고지혈증의 원인과 증상

  • 조홍근 연세대 노화과학연구소 교수 / 한기훈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입력2005-05-26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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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쓰러져 결국 ‘4중 심장 우회로’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심한 동맥경화증으로 말미암아 막히다시피 한 심장혈관들을 대신하기 위해 무려 네 군데에 혈관을 이식했다는 의미다. 당시 미국 ABC 뉴스에 따르면, 클린턴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물을 복용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해 체중이 줄어들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내려가자 안심한 나머지 약물 복용을 중단했는데 그것이 그만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클린턴을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로 내몰았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수십년간 그의 몸에 도사린 고지혈증이 심장병을 일으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은 자명하다.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심각한 상황을 불러들이는 대부분의 성인병과 같이 고지혈증 또한 달리 눈에 띄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결국 동맥경화증으로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는 합병증이 발생한 후에야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고지혈증을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는 단순한 ‘이상’쯤으로 여겼다가는 클린턴처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개인사업을 하는 유모(53)씨는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해병대를 제대하고 토목 현장에서 근무하던 30대까지만 해도 그의 근육질 몸매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40대에 들어 시작한 사업도 그의 성실함에 힘입어 순탄하게 운영됐다. 그런데 차츰 고객과의 상담, 서류검토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운동량이 많이 줄었고 담배도 피기 시작했다.

    상담이 끝난 후 저녁에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모처럼의 주말엔 TV를 보면서 청량음료, 과자, 빵, 사탕 등을 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의 몸무게와 뱃살은 계속 불어나서 85kg이 넘는 거구에 허리 사이즈는 35인치가 넘게 됐다. 어느 새 그에게 붙은 별명은 ‘술통 사장님.’

    급기야 올봄의 등반대회에서는 산자락을 오르다 숨이 너무 차 그냥 내려와야 했고, 다음날은 그의 기억 속에 생애 최악의 날이 되었다. 회사 직원의 걱정 섞인 전화를 받은 부인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간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병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알게 되었다. 고혈압에다 심각한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症’이라고 무시했다간 큰코다친다

    젊음이 떠나가는 남자 40대, 여자 50대부터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무리 부모에게서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365일 잘못된 몸 관리로 일관하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유씨의 경우처럼 중년의 나이에 고지혈증과 함께 흡연, 고혈압, 비만 등 심장병을 일으키는 위험요소를 여럿 가지게 되면 최소한 5명 중 1명꼴로 환갑이 되기 전에 심장병이 돌발하여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지혈증을 직접 유발하거나 고지혈증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요소들은 크게 조절 가능군과 조절 불가능군으로 나뉜다. 조절 가능군은 주로 생활습관에서 발생하는 요인들이다. 비만, 흡연, 음주, 당뇨, 고혈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 당뇨와 고혈압은 고지혈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고지혈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는 강한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조절 불가능군으론 나이, 유전적 요인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요인들이다.

    ●비만 : 비만은 고지혈증 발생에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 체지방량이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내장 지방이 인슐린 호르몬의 기능을 떨어뜨려 당뇨병, 고혈압, 심장 질환 등 각종 합병증을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부가 제시한 아시아인의 비만 기준에 의하면 자신의 몸무게(kg)를 키(m)로 두 번 나누었을 때의 수치를 체질량지수(BMI, kg/㎡)라고 표현하여 비만을 판정한다. 가령 67.5kg, 150cm이면 BMI 수치는 30이다.

    대략 체질량지수가 25 이상이면 비만을 의심한다. 서양인은 BMI 수치가 25 이상이면 과체중, 30을 넘으면 명확한 비만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뱃살보다 우람한 근육 때문에 체중이 많이 나가는 운동선수들도 높은 수치가 나오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허리둘레를 특정하는데, 특히 허리둘레는 몸의 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내장비만의 척도라는 장점이 있다.

    문제가 되는 허리둘레 수치는 남자의 경우 90㎝(36인치) 이상, 여자는 80㎝(32인치) 이상이다. 허리둘레를 엉덩이둘레로 나눈 값이 남성은 1.0 이상, 여성은 0.85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판정한다. BMI 수치가 25를 넘으면서 복부비만이 있다면 동맥경화증이 진행되어 심장병 발생 위험도는 더욱 높아진다.

    ●마른 비만 : 체중이 덜 나가는 마른 사람이라 해서 무조건 안심하면 안 된다. 표준체중 이하라도 몸 안에 지방이 많이 쌓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지방 분석을 통해 개인의 체지방 비율을 알아볼 수 있는데, 적당한 체지방량은 남성은 10~18%, 여성은 20~25% 범위다.

    체중이나 비만도가 높지 않아도 이 수치가 남성 25%, 여성 30%를 넘으면 주의를 요하는 ‘마른 비만’에 해당한다. 특히 운동량이 모자라고 식생활이 불규칙한 직장인, 다이어트를 여러 차례 시도한 경험이 있는 젊은 여성에게 많다고 한다. 이들은 사지 근육이 거의 없으면서 아랫배가 볼록 나오는데, 가령 칼로리 제한에 치중한 다이어트를 할 경우 근육량이 줄어들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에너지가 마땅히 쓰일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복부에 지방이 축적된다.

    ●담배와 술 : 비만만큼 심혈관 질환에 위험한 것이 흡연이다. 흡연이 동맥경화성 질환을 일으키는 데 관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하는 남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관상동맥경화에 의한 심장병 발생률이 3~5배 높다. 그뿐만 아니라 사망률도 70% 더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담배와 더불어 술은 중년 건강을 위협하는 주된 원인이다. 음주로 지방간이 생기면 혈액 속의 중성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높아져서 뇌혈관 동맥경화증이나 관상동맥 질환이 생긴다. 담배와 술은 모두 생활습관병의 근원인 복부비만을 부추긴다.

    알코올 의존증 수치라는 것도 있다. 알코올 의존증은 환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파괴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자신이 가족에게 저지른 잘못 가운데 단지 10%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술은 고혈압과 뇌졸중 발병의 위험을 높이므로 삼가는 것이 좋으나, 만약 마셔야 한다면 주 1~2회 이내, 두 잔을 넘지 않도록 한다.

    ●기타 원인들 : 일단 고지혈증 판정을 받았다면 잘못된 식습관이나 유전적 요인, 다른 질병의 2차 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 밥이나 빵 등 기름이 아닌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도 몸 안에서 중성지방 형태로 저장된다. 따라서 무엇이든 과식하는 것은 고지혈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콜레스테롤 수치도 조금씩 올라간다. 따라서 심장병이나 고지혈증은 고령에서 많이 관찰되므로, 남성 40대와 여성 50대에는 꼭 자신의 지방수치를 점검해봐야 한다.

    매우 높은 수치의 고지혈증으로 진단됐다면, 유전성이 있는지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병원의 도움을 받아 자녀의 지방수치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굳이 심한 유전성이 없더라도 가족은 생활습관이 비슷하므로 고지혈증이 대물림될 수 있다.

    또한 환갑이 가까운 고지혈증 환자에게는 갑상선 호르몬 수치의 점검이 필수적이고, 기타 신장 기능의 이상으로 말미암은 단백뇨나 약제에 의해서도 고지혈증이 생기거나 악화될 수 있다.

    아시아인이 더 위험

    고지혈증과 관련하여 한국 사람들은 위험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서양 사람이 더 위험하며, 한국 사람은 웬만해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그것이다. 이는 체질과 음식 때문에 그렇다. TV를 보면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살이 출렁거리는 뚱보이며, 모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들이 하루 한 끼 이상을 몸에 그토록 나쁘다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것으로 단정한다. 저녁식사 때에는 대부분 프라이팬만한 스테이크를 먹고 후식으로 단 케이크를 반드시 먹을 것으로 단정한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일단 체격이 작다. 게다가 방송매체에서 된장이나 김치가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지상 최고의 건강식이란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하루에 김치 한 조각 안 먹는 한국인이 없고 일주일에 된장찌개 한 번 안 먹는 한국인이 없으니 적어도 피나 혈관과 관련된 질병에는 선천적으로나 생활습관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고지혈증이나 심장병은 이제 부자 나라에서만 흔한 병이 아니다. 현재 전세계 심혈관 질환 사망자의 80%가 저소득 또는 중간 소득층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이 선진국병이란 상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사결과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심혈관 질환은 이미 196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최근엔 그 당시와 대비할 때 50% 이하로 떨어졌다. 고지혈증 등 위험요소에 대한 적극적인 조절이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04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4차 아태 동맥경화 및 혈관질환 연례회의’에서는 아시아인의 동맥경화증 사망률이 증가 일로에 있다는 현황을 보여주는 학술보고서들이 제출됐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40~50대 남성에서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경계대상 1호가 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오스트레일리아 심장재단의 브루스 닐 박사는 “뇌졸중 사망률의 경우 2020년까지 중국은 120만명에서 250만명으로, 인도는 5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기타 아시아국은 평균 30만명에서 80만명으로 100% 이상 급증할 것이지만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은 증가한다 하더라도 10% 이내 수준의 미미한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통계는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한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불과 십여 년 사이에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10명에서 25명으로 급증했다.

    한국인에게 흔한 대사성 증후군

    이처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고지혈증 및 심장질환 환자가 급증하는 까닭은 생활습관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고열량·고지방 서구식의 보급, 운동량 감소, 흡연·음주와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 등은 성인병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인 성인의 경우 고지혈증을 비롯해 고혈압, 당뇨병 등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성인병이 증가하고 있으며, 흡연율 역시 고공비행 중이다.

    한국인의 콜레스테롤 평균 수치는 10년마다 10mg/dl씩 높아지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요주의 수치인 200mg/dl을 넘어섰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1mg/dl 올라갈 때마다 심장병의 발생 위험이 최대 2~3% 증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 학술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체질은 동맥경화증에 대한 저항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듯하다. 동맥경화증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입증된 Apo A5라는 유전자 변이가 한국인의 경우 전체 인구의 30%에서 발견됐다는 연구결과가 일례다. 참고로 이 유전자는 서양인의 8%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한국인의 체질이 ‘절약형’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과거 평소 에너지 섭취량이 매우 부족한 데다 긴 춘궁기를 버티며 생존한 ‘절약형’ 후예들이 갑작스럽게 고열량·고지방 서구식을 마음껏 먹게 되면서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고지혈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노예선에서 생존한 미국 흑인들의 자손이나 수세기 동안 초원생활을 한 미국 인디언에게서 비만과 고지혈증, 당뇨병이 많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비만하고 출렁이는 뱃살을 가지고 있으며 혈압, 혈당 및 지질 수치에 이상이 발견되는 경우를 대사성 증후군이라고 한다. 대사성 증후군이란 동맥경화증의 위험요소가 잠재된 상태로 당뇨, 뇌졸중, 관상동맥 질환 등 성인병의 전 단계를 말한다. 대사성 증후군이 위험한 것은 당뇨의 전 단계이며, 대부분 두 가지 이상의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30%, 여성의 14.9%가 대사성 증후군에 속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노년층의 대사성 증후군이 노화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라면 40~50대 중년의 대사성 증후군은 대개는 생활습관에서 비롯된다. 가령 고지방식을 한 결과로 몸 안에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쌓인 것이다.

    한국인의 열량 섭취 중 고지방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9년 7.2%에서 2001년 19.5%로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노년층으로 갈수록 대사성 증후군이 증가하는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대사성 증후군은 40~50대 남성에게 집중되어 있어, 남성의 성인병 조기 발병과 40~50대 남성의 돌연사 빈발의 배경이 되고 있다.

    고지혈증의 원인과 증상

    고지혈증 유발 원인 중 하나는 복부비만이다.

    고지혈증이 무서운 것은 당뇨병, 고혈압 등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전혀 없이 찾아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 고지혈증 자체에 의한 증상은 쉬 피로를 느끼는 것 같은 사소하고도 경미한 증상일 수 있다. 고지혈증 증상에 대해 피가 탁하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고지혈증이 세포와 조직에 대한 산소 공급률을 떨어뜨려 쉬 피로를 느끼고 피로 회복도 느리며 장기적으로는 혈관의 노화현상이 빨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한 정도의 고지혈증을 가진 경우 피부나 인대 등에 지방이 침착되어 반점이나 혹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증상이 없기 때문에 고지혈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심장병 등의 합병증이 발병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고지혈증 상태에서 높은 농도의 나쁜 콜레스테롤은 천천히 동맥혈관에 침투하여 혈관 벽에 쌓인다. 이렇게 수십년이 지나면 혈액순환이 안 될 정도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게 된다. 동맥혈관이 좁아진다고 해서 바로 이상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까지는 불편한 증상을 느끼지 않는다. 동맥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혈관의 직경이 75% 이상 좁아지면 좁아진 부분을 통과하는 혈류가 심각한 장애를 받으며, 비로소 그 말단 심장근육에 산소부족 현상이 생겨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라는 혈관이 심하게 좁아질 때의 상태를 협심증, 혈관이 아주 막히는 경우를 심근경색증이라 부른다. 이러한 심혈관 질환은 전조증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발병했을 때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은 원인이 같지만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 비슷할 수도 있으며, 사람에 따라선 느끼는 증상이 다를 수도 있다. 대체로 공통점을 요약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가슴 가운데가 뻐근하게 아픈 증상, 누르는 듯한 증상, 조여오는 느낌 등 가슴의 불편함이 발생하여 수분 이상 지속된다.2) 가슴에서 느껴지는 증상이 팔, 등, 목, 턱, 또는 배의 위쪽 부분으로 퍼진다.3) 숨이 차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 구역질, 어지러움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환자들은 대개 ‘가슴이 아프다’ ‘뻐근하다’ ‘쥐어짜는 것 같다’ ‘눌린다’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고 호소한다. 협심증의 흉통은 가슴 중앙 부위를 격심하게 쥐어짜는 듯한 양상을 보이며, 통증이 목이나 어깨, 왼팔 또는 복부로 뻗치기도 한다.

    운동, 스트레스, 성관계, 과식 등 심장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에 흉통은 더 흔히 나타나 대개 3~5분 지속되며, 10분 이상 지속되는 일은 드물다. 관상동맥을 넓혀주는 니트로글리세린 알약을 혀 밑에 넣으면 대부분 통증이 가라앉는다. 만약 통증이 30분 이상 지연되면 심근경색일 확률이 매우 높다.

    심장병 환자에게 시간은 생명

    평생을 금융계에서 보낸 정모(65)씨. 지점장을 거쳐 중역까지 승진가도를 달린 그가 40대와 50대 때는 아직 선진 금융기법이 도입되기 전이라 예금 유치, 대부 업무에 따르는 접대가 많았다. 거의 날마다 접대를 주고받으며 회사생활을 해온 그에게 은퇴 후 2년이 지나 일이 터졌다. 오래간만에 동창들과 뷔페식당에서 만나 음식 몇 접시를 반주와 함께 해치운 후 집으로 돌아와 저녁 뉴스를 보던 중 예전과 다른 한기가 느껴졌고 진땀이 나면서 배도 아팠다. 그저 소화불량이려니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었으나 증상은 더욱 심해져서 응급구조를 요청한 후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종합병원 중환자실이었다. 심장 혈관이 막혀 심근경색이 발생한 것이다. 그의 집까지 응급차가 오는 데 14분, 아파트 1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옮기는 데 4분, 종합병원으로 달리는 데 23분, 응급실에 들어가 간단한 검사를 받는 데 16분. 총 57분이 걸렸다. 시간이 적게 걸린 덕에 막힌 혈관을 뚫는 등의 응급조치가 효과를 나타내어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건졌다.

    이후 고지혈증 강하제 등을 비롯한 약물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심근경색의 후유증도 심하지 않아 1년이 지난 지금은 가벼운 등산도 가능한 상태다.

    정씨의 경우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쓰러져 빨리 구제될 수 있었던 운이 좋은 경우에 해당한다. 자신의 증상을 늦게 알아차리거나 병원까지 후송이 지연되거나 병원에서 검사가 지연되는 경우 없이, 바로 구급차를 불렀고 큰 병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길도 막히지 않았다. 또한 병원에 도착한 직후 신속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마치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처럼 네 박자가 고루 잘 맞은 것이다. 이처럼 치료가 지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증상을 ‘문제가 있다’고 빨리 인지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의들은 심장병 환자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라고 말한다. 일단 가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면 지체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심장혈관이 100% 막혀 심장근육이 죽어가는 심근경색의 경우에는 치료가 늦어지면 증상이 나타난 지 1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급사’는 물론이고 생명을 건진다 해도 후유증이 심각하다. 따라서 되도록 빨리 병원에 가서 막힌 혈관을 다시 뚫어야 하는데, 적어도 통증이 발생한 지 12시간 이내에 수술을 받아야 더욱 큰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지혈증부터 잡아라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2003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방문한 환자 수가 1998년에 비해 약 75% 증가했다. 이는 대다수 종합병원의 통계와 유사하다. 이렇듯 심장 질환이 늘고 있는데도, 성인 대부분은 심장병이 발생했을 때 얼마나 빨리 조치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실제 상황에서도 늦게 대응하는 결과로 나타나며, 환자 대다수가 입원한 후에야 자신의 초기 대응법이 매우 서툴렀음을 알게 된다.

    지난해 10월 대한순환기학회의 설문조사에 나타난 바로는 전국 16개 대학병원의 환자 350명(협심증 217명, 급성 심근경색 133명)에게 질문한 결과 흉통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후에야 발병 사실을 알았다고 응답한 환자가 대다수(77%)였으며 심장 발작 직전까지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62%)고 답했다. 또 흉통을 느꼈을 때 전체 환자의 31%가 급체 등 소화기계 이상으로 오인, 손가락을 따거나 우황청심환 복용 등 민간처치를 시도했으며, 전문 의료기관에 도착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무려 만 24시간을 넘긴 경우가 12%나 됐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심장병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는 고지혈증을 비롯한 위험요소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혈관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심각한 심혈관 질환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심장병의 주범인 고지혈증 같은 위험요소부터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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