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마스코트 논쟁

야성의 진돗개냐, 해학의 삽살개냐

올 9월 결정되는 월드컵 마스코트를 놓고 진돗개와 삽살개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누가 진짜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개인가를 두고 설전을 벌이더니 급기야 ‘개싸움’이 사람의‘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기세다. 진돗개와 삽살개로 대표되는 한국 토종개의 이면세계를 추적해 보았더니…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2002 년 월드컵 마스코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인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가 돼야 한다. ‘한번 주인이면 영원한 주인’이란 말이 있듯이 진돗개는 의리와 충성심을 상징한다. 어떤 개보다도 뛰어난 용맹성과 진취성은 한민족의 기상을 대표하기도 한다. 진돗개는 96년 세계축견연맹(FCI)으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견종으로 인정받았고, 월드컵 마스코트로 지정되면 전세계적인 진돗개 수출 기반도 조성할 수 있다….”(김홍일 국민회의 의원·진돗개 애호가)

“한국의 토종개인 삽살개(천연기념물 제368호)가 월드컵의 마스코트가 돼야 한다. 삽살개는 예로부터 ‘벽사진경(퇳邪進慶)’이라 하여 큰 잔치때 삿된 기운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하는 동물로 상징돼왔다. 삽살개는 신라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역사성과 순수한 혈통성을 가지고 있고, 긴 털 사이에 눈이 보일 듯 말 듯한 해학적인 면모가 한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세계인의 잔치인 월드컵 마스코트로 지정되면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일 수 있다….”(김광일 전 대통령비서실장·한국삽살개보존회장)

2002년 월드컵 대회를 둘러싸고 ‘신토불이 개 마스코트’ 논쟁이 뜨겁다. 자칫 하면 개 마스코트 논쟁이 ‘사람 싸움’으로 번질까 우려될 정도다.

먼저 진돗개의 본산인 전남 진도군(군수 박승만)은 아예 ‘진돗개를 2002년 월드컵 마스코트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체적으로 마스코트 도안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청와대·국회의원·중앙부처 관계자·월드컵 조직위 등을 대상으로 진돗개가 마스코트로 지정될 수 있도록 입체적인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게 진도군 관계자의 귀띔.

삽살개 쪽의 홍보전도 만만치 않다. 한국삽살개보존회에서는 ‘독도 지킴이 삽살개’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보존회측은 지난해 3월 한국 영토임을 상징하는 독도 지킴이로 삽살개 암수 1쌍(동돌이, 서순이)을 기증한 뒤 “일본인에게 박해받아 멸종되다시피했던 삽살개가 독도를 지키는 수호 동물로 다시 태어났다”며 사람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150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애견가들은 어느 개가 되든 한국의 토종견이 마스코트가 돼야 한다는 데는 목소리가 일치한다. 개만큼 그 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품성을 상징하는 동물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

이를 테면 험한 인상의 불독은 영국인의 ‘집요한’ 성격을 표현하고, 예민한 푸들은 프랑스 사람의 감정과 비슷하며, 이지적이고 엄격한 셰퍼드는 독일 사람을, 좀체로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차우차우는 중국인의 성격을 드러낸다는 식이다. 이처럼 각 나라의 토종개는 그 나라 사람들의 인간성까지 상징한다는 것.

애견가들이 2002년 월드컵의 마스코트로 개가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은 유럽 선진국으로부터 ‘보신탕의 나라’ 또는 ‘동물 학대국’이란 오명(汚名)을 쓰고 있기 때문에 월드컵 마스코트로 ‘토종개 카드’를 내세울 경우 동물보호 실천국으로서 선진적인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개 원조는 한국 토종개

현재 우리나라 토종개로는 진돗개 삽살개 풍산개 제주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에서 북한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풍산개를 제외하면, 한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개는 진돗개와 삽살개다. 월드컵 개 마스코트 논쟁의 초점도 결국 이 두 견종 중 어느 것이 한국을 상징하는 데 더 적합한가다.

두 진영은 한·일 공동개최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했는지 일본쪽 개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먼저 한국동물보호연구회의 윤신근 회장(수의사)은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아키다 견(秋田犬)’을 끌어들여 진돗개의 우위성을 강조한다.

“일본에서도 동물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아키다 견이 일본측 마스코트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진돗개가, 일본에서 아키다 견이 각각 월드컵 마스코트로 선택될 경우 우리는 은근히 일본에 문화 전파국으로서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뛰어난 사냥개인 진돗개가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화한 것이 바로 아키다 견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삽살개측의 대응. 멸종될 뻔했던 삽살개를 유전공학적으로 연구, 원형을 찾아냈다는 하지홍 교수(경북대·유전공학과)는 일본 개와 비교할 경우 삽살개가 진돗개보다 할 말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일본 왕궁이나 신사(神社)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목조 또는 석조 동물상 중에는 ‘고마이누(高麗犬)’로 이름붙여진 것이 많다. 삽살개와 비슷하게 생긴 고마이누는 액을 쫓는 서수(瑞獸)로 일본에서도 널리 사랑받아왔다. 일본 기록(왜훈간)을 보면 고마이누가 고려(한반도)에서 전해진, 귀신을 쫓는 털 긴 사자개라고 돼 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삽살개가 왕궁에서 길러졌으며, 신라왕족 출신인 김교각 스님이 볍씨와 삽살개를 데리고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기록도 있다.”

말하자면 사냥용인 진돗개나 벽사진경의 삽살개 모두 일본 개의 먼 조상이 된다는 뜻이니 일단은 무승부인 셈.

거꾸로 이번에는 ‘삽살개의 대부’ 하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그는 “진돗개의 역사성은 검증돼야 한다”며 진돗개를 정면으로 걸고 넘어졌다.

“1938년 진돗개란 단어를 처음으로 활자화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토록 유도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모리(森爲三·경성제대)교수였다. 그는 일제 식민시절 진도의 개가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징표로서 가치가 인정된다’며 조선총독부에 추천한 뒤, 일본의 중형견인 기슈견(紀州犬)의 기준에 맞추어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진돗개는 그 우수성 때문에 문화재가 된 것이 아니라 일본 개 연구를 위한 학술적 가치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셈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랑스러운 우리 개의 상징으로 소개되는 진돗개의 이면에 일제 잔재가 묻어 있다는 것은 우리 정서상 문제가 있지 않은가?”

이것은 ‘진돗개 흠집내기’라는 국내 애견계의 금기에 도전한 충격적인 발언. 그러나 하교수는 아랑곳없이 진돗개 ‘육종 문제’에 대한 비판도 가했다.

“독일인 스테파니츠와 도베르만은 독일의 토종개들을 보존 개량해 오늘날 독일이 자랑하는 셰퍼드와 도베르만 등 세계적인 개로 육종시켰다. 삽살개의 경우도 일제 때 수난을 받아 멸종될 뻔하다가 경북대 탁연빈 교수(수의학)팀이 육종 작업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진돗개의 경우 일본인 학자가 일본 개와 유사한 것을 표준으로 정한 데다가 현재까지도 품종 연구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광복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진돗개 보호법이 제정돼 진돗개는 정부의 보호를 받아왔으나, 7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아키다 견, 중국의 차우차우와 광범위하게 교배돼 혈통상 문제가 많다. 게다가 진돗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공개적이고 학술적인 검토가 있어야 진돗개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진돗개 애호가측은 하교수의 말이 억지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한국의 진돗개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토종개인 기슈 견이나, 아키다 견이 됐으므로 설령 일본 개 표준에 맞추었다 한들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느냐는 것.

진도 현지에서 진돗개를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 진돗개 혈통 보존협회’의 박규태 회장은 “현재의 진돗개가 외견상 일본 개와 비슷하다 하더라도 일본 개와는 다른, 진돗개만의 독특한 품성은 변질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왔으므로 한국을 대표하는 고유견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또 전남대 이정길 교수(수의학)는 “진도 현지의 진돗개들을 대상으로 유전적 특성을 조사한 결과 일본개와 구별되는 진돗개 고유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교수는 앞으로 교잡종 문제로 시빗거리가 되는 육지의 진돗개들도 혈통을 분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토종개 수난사

이런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호흡을 같이하는 진돗개와 삽살개의 수난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제 식민치하의 토종개 역사를 심층 추적한 바 있는 언론인 김정호씨(‘진도견’의 저자)의 설명.

“1910년 우리나라를 침탈한 일본은 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북방으로 진출하면서, 군인들이 겨울철을 날 수 있는 모피(毛皮)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들은 한국 땅에 놓아 기르는 개가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견피(犬皮)로 방한화(防寒靴)를 만들기로 했다. 백정들에게 ‘야겡가리(野犬狩) 권’을 주는 대신에 견피 공출량을 배당함으로써 조선 개는 거의 거리에서 사라졌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일본인들이 기르는 양견(洋犬)과 교배시킨 등록 증표가 있어야만 겨우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사냥 등 특수한 능력을 보이던 토종개들도 사라져갔다. 일제 초기 거제도에서는 진돗개처럼 사냥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토종개들이 많았다. 그러나 사냥꾼들의 출입이 잦아 ‘좋은 씨’가 거의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양견을 데리고 온 일본인들의 거주가 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개들도 잡종이 되고 말았다. 또 제주도에서 목마(牧馬)용으로 사용되던 제주개 역시 잡종이 돼버렸다.

반면에 오지인 진도는 일본인의 정착이 늦어져 외래견의 교잡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산이 많은 진도에서는 개를 이용한 사냥이 활발해 견피 대신 짐승 모피를 제출할 수 있어 토종개들이 많이 살아남았다. 북한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풍산개 역시 함경남도 풍산이라는 오지에 있어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일본에서는 ‘일본 정통주의(正統主義) 바람’이 불면서 그간 버림받은 채 산간 오지에 소수로 남아 있던 일본 토착견에 대한 보존 열기가 고조됐다. 일본인들은 ‘일본견 보존회’를 만들어 아키다 견, 기슈 견, 시바 견 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국가적으로 보호했다. 그 과정에 일본인 모리 교수가 진돗개를 발견했고, 내선일체 정책의 하나로 조선을 대표하는 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모리는 일본 개가 진돗개보다 더 선조가 된다는 식의 억지 논리를 펴기도 했다.

여하간 이때 진돗개는 천연기념물로 정해져 살아남았다. 말하자면 진돗개는 일찍이 일본에 건너간 자손(子孫) 덕분에 ‘야겡가리’를 면했다고나 할까.

일제는 1940년대에 이르러 아예 총독부령으로 ‘조선 원피 주식회사’를 설립해 진돗개 이외의 개들은 모두 야견(野犬)이란 명목으로 도살했다. 기록에 의하면 대동아 전쟁중 연간 30만∼50만 마리의 조선 개들이 죽임을 당하고 껍질이 벗겨졌다.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토종개 수난의 세월이었던 셈이다.

삽살개의 기원을 연구한 하교수는 방습(防濕) 방한(防寒)에 좋은 가죽을 가진 삽살개들이 특히 최대의 피해자였다고 말한다. 삽살개는 남아 있는 일본 개들과 전혀 닮지 않았다. 그래서 용맹스럽고 싸움 잘해 어떤 면에서는 한국 사람들의 기질을 가장 많이 닮은 삽살개는 빠른 속도로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하교수는 또 광복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서양문물에 대한 선호 의식 또한 삽살개 멸종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외국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새롭고 좋은 줄 알았던 시기를 거치면서 삽살개는 ‘맛 좋은 개’ ‘약으로 쓰면 좋은 개’ 정도로 여겨져 없어졌던 반면, 서양의 털 긴 소형개들이 수입돼 길러졌다는 것. 그래서 삽살개라는 이름이 털 긴 외국 소형견의 명칭으로 오용(誤用)되기도 했다.


삽살개를 복원하라

한국사람들로부터 ‘똥개’로 버림받은 삽살개지만 완전히 대가 끊기지는 않았다. 1960년대 중반 경북대 교수들이 삽살개 연구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의외의 일. 30대 초반의 젊은 수의학자인 탁연빈·김화식교수팀은 각고의 노력끝에 과학기술처로부터 삽살개 수집과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를 확보했다. 또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후배 수의사들을 총동원해 여러 해에 걸쳐 삽살개 서식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하교수의 말.

“학자이면서 당시 애견관련단체의 심사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던 탁교수는 개에 대한 안목이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탁교수 팀은 외국개의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 삽살개로 인정된 개 30마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순수 토종 삽살개로 인정된 개들은 주로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산간 오지에서 발견됐다. 이 개들은 당시 생김새가 어땠을까? 탁교수팀이 작성한 당시 보고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균정(均定)적이고 암수의 성상이 뚜렷했으며, 특히 수캐는 대가리가 크고 흉부가 복부에 비해 더 발달된 편이며, 전신이 장모(長毛)에 덮여 일견 사자와 같은 야성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 체질은 견고하며 배요부(背腰部)는 건실하고 십자부는 높은 편이다….’

이들 수집견들은 다양한 전염병에 대해 토종 특유의 강한 저항성을 보였고, 체질적으로도 외국 견종에 비해 우수함이 입증됐다고 한다. 또 품성에 있어서도 주인에 대한 복종심이 강하며, 주의력이 깊고, 확고한 기질을 소유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는 것. 그래서 당시 연구자들은 천연기념물 지정과 정부 차원에서의 보호 육성책이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탁교수의 주장은 당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탁교수에 이어서 ‘삽살개 보호 주자’로 등장한 이가 바로 하지홍 교수. 탁교수팀의 스승이자 탁교수가 연구하던 삽살개들을 맡아 기르던 하성진 교수의 아들이기도 한 하지홍교수는 해외유학에서 돌아와 85년 봄부터 경북대 유전공학과에 재직했는데, 당시 부친의 대구 목장(경산군 하양읍)에 삽살개가 8마리밖에 없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허술한 사육 환경 때문에 몇 해만 더 방치하면 삽살개의 맥이 완전히 끊겨버릴 것 같은 위기 상황이었다. 부친이 70년부터 삽살개를 맡아 길렀다고는 하지만 육종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개의 가계(家系) 등이 기록돼 있지도 않았다. 유전공학자인 나의 눈으로 볼 때 당시 8마리의 삽살개는 문익점이 붓대롱 속에 숨겨온 목화씨앗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남아 있는 삽살개를 보호하는 한편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던 몇 마리 삽살개들을 찾아 전국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잡종이 됐거나 ‘지난 복날 잡아먹었다’는 등 실망만 안겨준 것이 다반사였다. 4~5년간 개 상인들과 함께 다른 삽살개를 구하러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동네 동네를 탐색해봤지만, 삽살개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혈통이 제대로 보존된 개들도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89년경에는 집에서 기르던 삽살개 8마리는 30여마리로 불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삽살개 집단은 모두 탁교수가 수집, 보존해오던 개들의 직계 후손이다. 이후 하교수는 문화재 관리국에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했고, 92년에 개로서는 진돗개에 이어 두번째로 천연기념물 승인을 얻었다.


삽살개 가짜 논쟁

한편 삽살개의 수호사로 등장한 하교수가 진돗개의 정통성 문제를 들고 나오자 가장 거세게 반발한 사람은 윤신근 한국동물보호연구회장. 수의사인 윤씨는 “하교수가 만들어낸 삽살개야말로 가짜 천연기념물로 마스코트 자격이 없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로써 ‘개 싸움’이 본격적으로 ‘사람 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먼저 윤회장은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애완동물신문’(99년 4월7일자)에서 하교수가 원형을 복원해냈다고 주장하는 삽살개가 진짜 삽살개가 아닌 증거는 18세기 영조 때 화가인 김두량(金斗樑)의 ‘개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영조의 친필이 담겨 있는 이 그림은 후대의 어느 소장자가 다른 화가 8명의 그림과 함께 묶은 ‘제가명품화첩(諸家名品畵帖)’이란 이름으로 전해진 것. 여기서 이름모를 소장자는 김두량의 개 그림에 대해 “내가 방(퇄) 그림 한 본을 구했더니 필세가 발랄하고 묘하다”고 평했는데, ‘방’이 바로 삽살개를 의미한다는 게 윤씨의 주장.

“김두량이 그린 삽살개는 꼬리가 치켜올라가고 몸통에 털이 많으나, 머리와 다리엔 긴 털이 없다. 부릅뜬 눈과 날카로운 이빨, 발톱 등 아주 사나워보인다. 이러한 생김새는 두 눈이 가릴 정도로 온몸에 털이 북실북실한 하교수의 삽살개와는 판이하다. 따라서 하교수의 삽살개는 진짜 삽살개로 인정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하교수의 반론

“250년 전 개 그림 하나를 놓고 현존 삽살개와 닮지 않았으니 가짜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느 시기인지 모르는 후대의 소장자가 그 그림을 보고 평하여 방(퇄)이라고 써놓은 것인데, 방이라는 글자가 과연 삽살개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 방 자는 19세기에 출간된 ‘훈몽자회’에서는 ‘클 방’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게다가 17세기에는 ‘견(犬)’을 삽살개로, ‘방(퇄)’은 더펄개로 묘사하는 등 개 명칭이 지금처럼 정형화돼 있지 않았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교수는 많지 않은 조선시대 개 그림 중에는 지금의 삽살개 모양과 비슷한 그림이 여러 장 있다고 말한다. 김두량과 같은 18세기에 어느 화가가 그린 삽살개 그림(국립박물관 소장)이나 19세기에 심전(心田) 안중식이 그린 삽살개 병풍 그림(미국 하버드대 소장)은 지금의 삽살개와 흡사하다는 것.


지상 공방전

그러나 윤신근씨는 김두량의 개 그림이 삽살개가 틀림없다며, 또다른 문제 제기로 삽살개 정통성에 이의를 달았다. 다음은 윤씨와 하교수간의 지상 공방전.

▼하교수의 삽살개는 김두량의 그림처럼 우리 고유의 ‘귀신쫓는 개’ 삽살개와는 너무나 다르다. 되레 영국의 올드잉글리시 십독, 비어드 콜리 등 외국의 견종과 더 유사하다. 구한말 프랑스 선교사가 안고 들어온 털북숭이 서양개로부터 현존 삽살개 모양이 나왔다는 얘기도 나돈다.(윤신근)

▲지금의 삽살개는 덩치가 너무 커서 프랑스 선교사든 누구든 외국에서 안고 들어올 수 있는 개가 아니다. 설령 한두마리 털북숭이 외국개가 국내에 도입됐다고 해서 수백마리 털복숭이 개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바다에 잉크 한 병을 부으면 금방 희석돼 사라지는 것처럼 소수의 외국산 개도 토종개들의 바다에 섞여 흔적도 없이 유전자가 희석돼버린다.(하지홍)

▼하교수의 삽살개를 보면 꼬리가 축 처진 것이 있는가 하면 말려 올라간 것도 있는 등 꼬리 모양이 다양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어떤 품종이건 한 품종은 아무리 오랜 세월을 지나도 같은 생김새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서 외관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삽살개가 잡종이 안 됐다면 꼬리가 올라가든지 내려가든지 한 가지여야 한다. 최근 진돗개와 삽살개, 외국견을 대상으로 유전학적 조사를 한 결과 삽살개와 외국견이 토종개인 진돗개와는 다른 유전적 구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윤신근)

▲개의 혈통 고정화 작업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금까지 국내산 토종동물 중 삽살개만큼 과학적 연구가 잘 돼 있는 동물이 없다. 삽살개는 정부 지원으로 90년부터 연구가 시작돼 97년에는 삽살개에 관한 국제 학술심포지엄도 열렸다. 그간 국내 과학자들이 삽살개와 관련해 2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그 결과가 삽살개는 토종견으로 상당히 원형에 가까워졌으며, 삽살개와 진돗개는 겉모양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토종개로서의 유전적 배경이 대단히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나의 삽살개 연구도 지금 확보하고 있는 350여마리의 삽살개가 토종개라는 점을 확실히 밝혔을 뿐이지, 삽살개를 사냥용 혹은 애완용 등 목적에 맞게 외모나 품성 등을 고정화시키지는 않은 단계다. 진돗개 역시 혈통 고정화 작업이 안 됐다. 그렇다보니 순종 진돗개이면서도 귀가 안 서고 꼬리를 못 올리는 놈도 생기는 것이다. (하지홍)

하교수는 거의 멸종될 뻔했던 동물을 원형으로 재현해 내는 작업은 한두 해만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탁교수 등이 산간오지에서 삽살개 원종(原種)을 찾아냈다고는 하나, 수천년 동안 관리되지 않고 자연 방사된 개들의 유전자는 비록 삽살개의 외양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온갖 잡동사니로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유전자 세탁 과정을 통해 겉과 속이 같아지게 만들어야만 눈 밝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동물 품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지난 15년간 삽살개를 기르면서 단 한 마리도 돈을 받고 팔 수 없었던 이유가 예술품으로 친다면 아직도 습작품이지 낙관을 찍어 내놓을 수 있는 완성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교수에 따르면 92년에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자, 가짜 삽살개가 고가에 나도는가 하면 국가공인 애견단체에서 발급받은 가짜 혈통서도 횡행했다고 한다. 지정 당시만 해도 단 한 사람도 삽살개를 알고 기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털 긴 개들이 삽살개로 둔갑해 나타났다는 것.


마스코트 둘다 아웃될 수도…

애견계에서 하지홍교수와 윤신근회장의 치열한 대립은 너무나 유명한 사건이다. 서로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부닥치기 때문에 진돗개나 삽살개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과 관련해서 그렇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의 최창신 사무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

“월드컵 마스코트 지정과 관련해 한동안 진돗개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 왜 전라도 개(진돗개)만 거론되느냐, 경상도 개(삽살개)도 있지 않으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잘못하면 지역 감정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더욱이 월드컵 마스코트의 경우 FIFA(국제축구연맹)측과 상의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앞서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중립적 입장에 있는 애견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진돗개 전문가’로 손꼽히는 윤희본씨(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홍보팀 부장·전 애견협회 회장)는 진돗개와 삽살개를 골고루 키워본 경험으로 이렇게 말한다.

“개라는 동물은 원형 운운하기 전에 사람이 만들어내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일단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왕에 한 개인이 삽살개를 복원했다고 말하는 마당에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더욱이 하교수의 삽살개는 정부 지원 속에 과학자들이 작업한 것 아닌가.

나는 삽살개를 지금까지 3년간 키워오고 있는데, 한국 토종개라는 점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털 긴 서양개는 몸에서 노린내가 많이 나는데, 털이 너무도 무성한 삽살개에서는 외래견 고유의 노린내가 나지 않는다. 또 삽살개를 더럽게 키우면 몸에서 거름과 퇴비 냄새가 나는데, 이것이 바로 재래종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삽살개는 사람과의 친화성과 교감력이 매우 뛰어나고 영리하다. 질병과 더위에 견뎌내는 힘 등 체질도 서양개에 비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으로 진돗개는 진돗개 나름으로 키우는 맛이 있다. 진돗개는 삽살개에 비해 냉정한 측면이 강하다. 주인에게 충성하면서도 자기 세계를 고집하기도 한다. 이는 진돗개가 사냥견이어서 야성(野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돗개를 좋아하느냐, 삽살개를 좋아하느냐는 개인의 성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윤씨는 삽살개와 진돗개를 모두 좋아하지만, 월드컵 마스코트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한일간의 동질성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진돗개가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다른 중립 인물로 ‘개 사진 전문가’로 유명한 임인학씨의 말을 들어보자.

“두 분(하지홍교수와 윤신근 회장)의 논쟁은 처음에는 학술적 논쟁으로 시작되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개인적 감정 대립 쪽으로 흘러가는 듯해 안타까운 점이 있다. 일각에서 ‘진돗개는 전라도 개, 삽살개는 경상도 개’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더욱 악영향을 조장하고 있는데 이는 애견가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개인적으로는 윤신근 회장의 삽살개에 대한 공격이 하지홍 교수가 삽살개 연구를 더욱 깊숙이하는 데 도움이 됐고, 반대로 하교수의 진돗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동안 내팽개쳐 두었던 진돗개 품종 연구를 자극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 서로 건전한 학문적 비판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임인학씨는 개 사진을 전문으로 찍어오는 동안 진돗개와 삽살개를 다 좋아하게 됐는데, 자신의 성격상 삽살개 쪽에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마스코트 역시 삽살개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


‘돌아온 백구’ 사건, 그 후

기자가 애견가들을 상대로 전화 조사해본 결과 진돗개나 삽살개 모두 우리 토종개로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체로 많았다. 물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진돗개파’가 있고, ‘삽살개파’가 있었다. 다만 하교수의 삽살개는 일반에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인식도 면에서 대중화가 덜 돼 있다는 단점도 지적됐다.

애견가들은 진돗개의 경우 그 매력으로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귀소 본능을 우위로 꼽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94년 정초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300km의 길을 걸어 진도의 주인집으로 돌아온 ‘진돗개 백구 사건’을 든다.

당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백구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진도의 개장수가 대전 번호판을 붙인 차를 타고 해남에서 건너온 개장수에게 박복단 할머니(77·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가 기르던 진돗개 ‘백구’를 팔았다. 그런데 그 개가 무려 7개월 만에 다시 진도의 옛집을 찾아왔다…. 차마 믿어지지 않는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백구는 ‘진도의 영웅’이 됐다.

진도군청에 문의한 결과 그 백구가 아직도 박복단 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해남에 이르러 진도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인 진도대교를 건너기 직전 위치에서 박할머니 집까지의 거리를 재보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백구 사건 당시 백구가 대전으로 팔려간 것이 아니라 해남에서 또다른 개장수에게 팔리는 과정에 도망갔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기 때문.

박할머니의 집에 이르러 자동차 계기판을 들여다보니 35km 정도. 설령 백구가 해남에서 도망쳤다 하더라도 주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개를 넘고, 꼬불꼬불하게 난 길을 따라 찾아가는 일 역시 대단한 영민성이 없고서는 힘들 것 같았다.

박할머니는 “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워쩐 일이여”하면서도 반갑게 맞았다. 기자가 할머니와 백구 사진을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백구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머니 옆에 와서 앉더니 ‘포즈’를 취해주었다. 마치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늙은 백구(14살)는 임신까지 한 듯했다.

“이 놈이 말이여. 아무 수놈이나 상대하지 않아. 백구가 워낙 유명혀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키우던 수놈과 접을 붙여보려고 했는디, 저 잡것이 마음에 안드니까 수놈을 물어버렸당께. 지금도 분명 임신한 것 같은디 신랑이 누군지 몰라. 저 혼자 살그머니 나갔다가 들어오거던….”

그런데 박할머니에게서 더욱 충격적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백구가 낳은 새끼 역시 실종 1년 만에 돌아온 사건이 경남 창원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백구 사건 당시 기자들에게 한창 시달린 적이 있던 박할머니는 또 시달릴까봐 조심스러워하더니 사건 내용을 공개했다.

96년 경남 창원시 주택가에 사는 김성윤(46)·박용례(43) 부부가 친척뻘인 이기수씨(백할머니의 아들)로부터 백구가 낳은 암수 새끼 두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 단독주택에 살던 김씨 부부는 장사를 하느라 개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 아침 저녁 한차례씩 개를 바깥에 풀어놓았다. 그러면 개들은 나가서 대소변을 보고 놀기도 하다가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때 나간 개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어서 애가 탄 김씨 부부는 차로 창원 시내를 누비며 며칠간 개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진돗개 두 마리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한 1년 됐어요. 눈이 굉장히 많이 오던 날인데 가게 일을 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개 한 마리가 문 앞에 있었어요. 가만히 보니 한순이(암컷)였어요. 내가 택시 안에서 ‘한순아’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니까 개가 화들짝 놀라 도망가버려요. 그래서 택시에서 내려 다시 ‘한순아’하니까 그제사 달려와서는 내 품에 안기더라고요. 얼마나 좋았던지…마치 죽었던 자식이 살아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순이 꼴이 말이 아니었어요. 눈에서는 피가 나고, 머리가 어디에 부딪혔는지 피멍이 들어 있고, 털은 다 빠지고…. 그래서 한 두달간 가축병원에데리고 다니면서 치료했지요. 그런데 수놈은 끝내 행방 불명이고요.”

박용례씨는 그때 감정이 되살아났던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순이가 어디서 무얼 했는지는 실종됐던 진도의 백구처럼 알 수 없다. 단지 집 나간 지 무려 1년 만에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한국 진도개 혈통보존협회의 박규태 회장(진돗개 지킴이 견원 운영)은 사냥개인 진돗개의 귀소본능은 진도 사람들이면 어릴 적에 다 겪어본 일이어서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요즘 들어서는 혈통 보존을 위해 농장에 가둬 기르다 보니 진돗개의 사냥성과 귀소본능 등 야성이 옛날보다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는 것.

“그래도 육지 개보다는 진도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에 대한 충성심, 청결성, 용맹 대담성 등 고유한 품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체형면에서도 진도의 개와 육지의 개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아본다. 아마도 이는 환경적인 영향에서 비롯되는 것같다. 육지 쪽에 우수 진도견이 오히려 많다고 소문내는 사람들도 여기 와서 진돗개 새끼를 사서는 육지의 우수견 종자라고 하며 파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편 박회장은 육지쪽에서 아키다 견 혹은 시바 견 등 일본 개와 교잡된 진돗개가 나도는 것에 대해서 무척 우려했다. ‘개끈’(개에 대한 전문 지식)이 길지 않으면 겉으로 볼 때 교잡종과 진짜 진돗개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 이렇게 일부 사람들이 진돗개 잡종견을 만드는 것은 이유가 있다. 잡종 1세의 경우 형태나 품성면에서 잡종 강세를 이루어 좋은 진돗개로 둔갑시켜 비싼 값에 팔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그 후세는 열등해서 말 그대로 ‘똥개’가 된다.


삽사리를 키우는 맛

진돗개 대신 삽살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떤 맛을 느끼고 있을까. 경주박물관의 강우방 관장은 얼마 전 하지홍 교수로부터 삽살개 암컷(복실이)을 얻어 기르고 있는데, 집안 분위기가 바뀔 정도로 키우는 맛이 있다고 말한다.

“삽살개의 애교는 키워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주인한테 안기고 스스로 장난을 거는 것이 여간 귀엽지 않다. 마당에서 놓아 기르는데 자기가 장난칠 놀이갯감과 사람이 정리해놓은 것을 철저히 구별할 정도로 영특하다. 이릍테면 버리려고 모아놓은 쓰레기 봉투는 절대로 손대지 않는 대신, 마당가에 떨어진 나뭇가지 등을 가지고 논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우렁차다. 언젠가 밤에 복실이의 눈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낮에는 털에 가려 눈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데, 밤에 보니까 눈이 마치 금강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그래서 귀신 쫓는 개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삽살개의 눈빛은 예로부터 유명하다. 조선시대 방촌 황희 정승과 삽살개에 얽힌 이야기 한토막. 황희 정승은 그 호인 방촌(퇄村)이 ‘삽살개 마을’일 정도로 삽살개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황희 정승은 그 눈빛이 워낙 강해서 심약한 사람들이나 웬만한 동물들은 눈빛만으로도 기가 꺾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황희 정승도 노년에는 삽살개와 눈을 맞추고 안광(眼光)을 모아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 “나도 이제 죽을 날이 다 되었구나” 하고 한탄했다는 이야기다. 황희 정승의 안광이 약해졌는지 아니면 삽살개의 기질이 워낙 강해서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삽살개가 범상치 않은 동물임에는 틀림없는가 보다.

하교수는 조선시대의 옥편을 찾아보면 사자개란 말이 자주 나오고, 삽살개를 일명 사자개로 기록한 곳도 있는데, 사자를 보지 못한 당시 사람들이 삽살개를 사자의 대용품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삽살개는 겉모양으로 사자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강한 기질 또한 개 중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또 사자개란 별명말고도 신선(神仙)개 혹은 선방(仙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눈이 가려서 멍청해 보이기도 하지만 주인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영민한 삽살개가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며, 허연 털을 바람에 휘날리며 달리는 모양은 산중의 도사(道士)를 연상케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삽살개는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조상들과 친숙하게 지냈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사자의 위엄이 있으면서도 해학적인 삽살개, 싸늘한 냉기를 뿌리면서도 주인을 따르는 야성의 진돗개가 우리나라 토종견으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나라의 개문화 수준으로 사람들의 문화수준까지 재보는 서구인들에게 한국의 ‘문화 대사’로 진돗개와 삽살개를 내세우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월드컵 마스코트 개 논쟁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개를 보신탕이 아닌 문화로 보는 눈을 가지게 됐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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