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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라운드 테이블 2부

<주제 2> 전시기획의 새로운 방법과 사례들
_2010.9.10 금 오후 3시 30분~4시 50분, 일민미술관 3전시실

진행자: 최 범(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운영위원, 디자인평론가)
참여패널: 정용도(2008 심사위원, 쿤스트독 미술연구소장),
     김장언(2010 심사위원, 미술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서진석(2010 심사위원,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김노암(상상마당 전시감독)

-최범 : 주제는 전시기획의 새로운 방법과 사례들이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내 큐레이터 네 분에게 동아 미술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도움이 될만한 사례들을 각자 경험 속에서 찾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식 발표라기보다는 간단한 메모와 준비하신 것들을 발표해주실 것이다. 동아 미술제가 작품공모로부터 전시기획공모로 바뀐지 5주년이 되었다. 지난 5년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앞으로 새로운 방향을 제시 받을 수 있는 사례연구 작업으로 2부 파트가 마련되었다.
전시기획공모가 새로운 시도이긴 하나 아직 맥을 잡아야 하는 부분에서 불확실한 점이 있다. 그 동안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적, 불만 같은 것들은 기획안들이 대체로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다. 최근 미술계의 여러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큐레이팅이 굉장히 활발해졌다. 대학에 관련학과도 생기고 큐레이터 지원인력도 많아졌다. 공공부문 이를 테면 문화예술진흥위원회 등에서 그 인력을 흡수하는 등 2000년대에는 그 수요와 공급이 확대되고 서로 간의 상호작용 현상이 있어왔다. 그러나 공급이 많이 늘어난 것에 반하여 현재까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큐레이팅의 공급은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동아미술제는 한국시각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을 기대하고 그것을 찾기를 희망하는데 그 동안 과연 그런 것이 있었나 싶다. 오히려 기획이라는 것이 다시 규격화된 행위가 되어서 비슷비슷한 기획안들을 많이 본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아울러서 기획공모가 나아가야 할 제대로된 방안, 틀을 벗어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될 것이다. 첫번째로 정용도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겠다.

-정용도 : 전시기획에 관해 내 생각을 원론적 입장에서 정리해봤다. 5가지 항목 정도로 나의 논리를 요약을 해봤다.
전시도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물론 이슈도 될 수 있다. 그 시각적 다양성과 개념적 명료성을 지닌 어떤 문화적 코스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전시가 있는가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해석 능력, 이것은 큐레이터의 능력이고 기획자의 능력이 되겠다. 그 전시공간이란 것은 일상 공간과는 분리된 특수한 공간이다. 그 속에서 관객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또는 예술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다시 돌이켜 볼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자체에 관해서는 문화적 정체성의 부분이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한다. 전시를 통한 어떤 일정한 피드백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 피드백을 통해서 사회의 여러 분야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적 네트워크나 감성적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원론적이라고 말했듯이 조금 넓은 범주의 이야기다. 예술과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시 자체에 있는 것으로 그게 대중들이나 전시를 보는 전문가들, 예술계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게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해 스스로 자문에 볼 수 있는,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어떤 문화적인 이슈라든가 정신적인 문제들에 대해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 그 자체를 다시 이야기한다면 전시자체는 특화된 내용, 그런데 그것이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 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 시스템이라는 것은 형식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 적어도 공정한 시스템이어야 할 것이다. 되도록 모든 작품, 작가들이 배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융합할 수 있는 차원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들이 동아미술제에서 논해야 할 점 일 것이다. 동아미술제를 통해서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충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한번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나의 질문과 주최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 미술제가 어떤 피드백을 가지고 예술계와 대중에게 어떤 문제들을 상기시켜 주고 어떤 문화적인 영역들을 확장해왔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아미술제를 검열의 상황 아래에 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시스템이라는 문제에서 비춰볼 때 작가나 기획자들이 발전할 수 있는 구조,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 질문을 하자면 동아미술제에서 좀 더 넓혀서 우리나라 전반적으로 전시기획이 도대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이뤄지며 대규모 전시라는 것들이 어떤 식의 효과를 가져왔나, 어떤 사회적, 문화적 효용성 만들어 냈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범 : 전시기획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 정용도씨가 생각하는 좋은 전시에 대한 요건을 말해준 것 같다. 이런 원론적 관점에서 동아미술제-기획공모로 전환된 뒤 5년 동안, 당선된 작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좋은 전시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는데 그 관점에서 보면 어떠한지를 듣고 싶다.

-정용도 :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김장언 : 사례와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특히 전시기획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워크샵들, 혹은 전시기획 수업 등을 해보니 사람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사례와 방법론들만을 원하더라. 왜 그러한 사례와 방법론들이 만들어지는가 라든가 큐레이터쉽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벤트를 조직하는 방법에만 관심이 많다. 행정적 차원으로 전시를 이해하는 경향들이 다분히 많아지는 것 같다. 심지어 비즈니스와 공학에서도 창조적 프로세스를 산업과 연합시켜서 발명해내는데 오히려 창조적 주체라는 큐레이터들이 행정적 조건들에 익숙해져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문학이나 최신 비판 담론에 대한 것들을 대략 정리하고 그것을 작가들을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대다수 전시의 관용이다. 누가 먼저 최신 담론들을 아느냐 모르느냐 아니면 엔터테인먼트의 변형된 버전으로 만들어놓고, 그런 것들이 익숙해진 상황에서 큐레이터쉽이라는 것, 전시라는 것이 뭘까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기엔 전시라는 것도 지식을 생산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라는 것이다. 큐레이터, 작가가 자신의 지적 활동을 어떻게 문화적 형식으로 표출해 내느냐,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회에 어떤 비판적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느냐가 전시의 생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본래적으로 하기 시작하다 보면, 사례와 방법론은 끊임없이 창조되고 개발된다. 왜냐하면 지식생산이 관례적인 지식 생산이라던가 아니면 중세 서체가들처럼 경전에만 매달리는 그런 고답적인 방법론이 아닌 새로운 끊임없는 지식생산을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언제든지 사례와 방법론들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전시기관이라는 것들이 행정적 절차를 보여주는 것 때문에 어떤 수업들은 심지어 문예진흥원 서류작성법을 가르치더라. 그런 것들은 스스로 지식인보다는 행정가로서 위치 짓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시가 엔터테인먼트적 산업으로 변화되고 있다. 지식 생산보다 어떤 일의 흥행사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들에 만족하는 상황들이 많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담론의 생산자로서 자신을 위치 지워야만 큐레이터라는 것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길일 것이다. 지적 활동이라는 것은 언제나 다시 읽는 것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읽게 하는 것, 쟁점을 생산해내는 것, 문제제기를 하는 것, 대화를 하는 것, 대화를 다시 하는 것,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미술사 혹은 현대 동시대 사회문화적 조건들, 정치 사회적인 이슈들을 통해서, 아주 열린 구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전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형성하는 것이 전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론가들은 책이라는 형식으로 만든다면 큐레이터들은 보다 다양한 새로운 문화적 형식으로 자유롭게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교육이라던가 작가 사회 커뮤니티와의 협업, 혹은 기관을 새로 만들거나 해체하거나, 또는 조사의 방법론들을 창조적으로 재배열하는 것,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말하는 과학적, 인문학적 방법론이 아닌 어떤 미지의 스타일의 방법론들을 개발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글쓰기의 방법에서도 제도화된 관행적 글쓰기 방법에 거부하는 방식 혹은 새롭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그리고 기존의 전시들을 재 맥락화 하는 것 등등이 새로운 지적 생산을 위한 큐레이터들, 혹은 큐레이터쉽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시간에는 동아미술제 관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심사를 하며 느꼈던 것은 동아미술제가 전시기획공모로 변화하면서 도전적인 시도를 했는데 그 과정은 공모전이라는 19세기적인 방식에 아이템을 변화시킨 것이다. 말인즉슨 전시공모전이나 작가공모전이나 진행되는 방식이나 운영되는 방식이 같다는 것이다. 공모전이라는, 새로운 사람을 발굴해 내자, 그 사람의 아이디어를 보고 기회를 줘 보자 하는 전형적인 형식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어떤 큐레이터가 전시기획, 혹은 기획자를 양성하기 위한 혹은 그들을 격려하고 배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생성하자라고 할 때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공모전이 아니라도 또는 공모전의 형식을 띠더라도 주체자가 도전적인 실험들을 하면 도전자(응모자)들도 당연히 그 도전적인 실험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돈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례적으로 작동되는 곳에서는 응모자도 관례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상금이 1000만원이고 전시공간이 일민 미술관이다를 주고 이것을 따느냐 마느냐,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체자가 그런 관례적인 상황들을 지워버리고, 일민문화재단이 큐레이터쉽에 대해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작동시킬 것인가,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어떤 프로그램을 공모전의 형식으로 보여줄 것이냐를 제안한다면 거기에 응모자들도 반응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부족한 것 같다. 단순히 상금의 문제라기 보다 여태까지 상당히 추상적 형태로만 진행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다.

-최범 :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 한 것 같다. 주최측의 기획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운영위원의 입장에서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다. 처음에 정용도가 전시가 스토리텔링이다 라고 정의를 했고, 김장언이 지적 생산물이다라고 정의했는데 이의 없다. 전시를 지적 생산물이라고 했을 때 좀더 근본적인 문제, 지적 생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크게 관례적인 지식과 새로운 실험적 지식(새롭게 의미를 발생해내는 지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느 분야를 보더라도 관례적 지식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이다. 우리나라 대학광고를 보면 상당히 절망하게 된다. 거기서 과연 새로운 지식의 생산이 가능할까 질문해보게 된다. 전시라는 것도 넓게는 한국 사회에 배치돼있는 문화적 제도 중 하나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시라는 행위에서 새로운 지식생산이 가능할까를 물어봐야 하는 부분이다. 사실은 관례적 지식이 아닌 나름대로 정의한 측면에서 그리고 한국적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 생산의 사례로서 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싶다. 동아미술제의 경우 작가공모에서 전시기획공모로 바뀌었지만 결국 공모라는 틀에서 작가가 아닌 기획이라고 하는 단순한 변화, 어떤 본질적, 근본적 변화라기 보다 사실은 트렌드에 맞춰 변화된 또 하나의 새로운 관례를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적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더 근본적으로 일민미술관 측에서 그런 시도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주최측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김장언 : 그런 의지가 없다 라기보다 이런 사업들이 하나의 제사 지내듯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물론 안정성이 확보되는 차원에서 보면 다르겠고 거기에 맞춰가야 하는 부분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 같은 토론들도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서서히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과정들이 투명성을 가지고 행해진다면 중요한 의미들이 생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범 : 그렇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그런 가능성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일민미술관이 그런 시도를 과연 할 수 있을까 물으면서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가능할 수 있도록 안팎에서 도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외국의 잘나가는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라기 보다 그것에 의해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리가 되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김노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겠다.

-김노암 : 준비해온 것을 봐달라. 첫 번째를 보면, 많은 공모전이 있다, 그런데 독자적인 미학성 혹은 정체성을 만들어낼 정도의 역사를 지닌 공모전은 없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봤다.
두 번째를 보면 나는 현장 기획자이기 때문에 공모전의 형식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됐다. 심사위원이 여러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공모전이라는 기획과 그 형식도 상당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유효한가를 물어볼 만 하다. 세 번째는 공모전이라는 것은 익명의 다수에 열려있다. 참가자가 적다고 심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사실 공모전에는 누구나 낼 수가 있다. 사실 그 열려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마치 우리가 대중, 국민, 민족이라는 말을 썼을 때의 추상성처럼 그만큼 구체적이지 않다는 말도 된다. 그러면서도 여러 공모전들 사이에서 하나의 미학적 성격이나 정체성의 방향을 공모전을 주체하는 주체들이 다 가지려 한다. 사실 이것은 딜레마이다. 네 번째는 따라서 공모전의 성패는 공모전을 주최하고 조직하는 기획 주체가 얼마나 미학적 입장이 견고하고 안정성을 지니며,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할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공모를 주체하는 주최자의 욕망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 또 주최자의 취향이 어디에 가있는가가 공모전의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섯 번째, 네트워크가 굉장히 중요하다. 네트워크란 사람들간의 네트워크이다. 심사위원, 운영위원, 이후 토론의 발제자 등등 미술분야에서 일정한 정도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인정받은 전문가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지나면서 공모전에 대한 20~30대 초반의 작가들과 기획자들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커졌다. 그전까지는 심사비리 등 여러 가지 불투명한, 동의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 심사위원들과 그 과정이 노출되고 건전해지면서 20~30대 미술계에 진입하려는 작가나 기획자들의 공모전 참여가 활발해졌다.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물론 공모전이라는 형식이 아직까지 유효한가라는 것은 계속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모전이라는 문화가 한국미술의 문화에 있어서 공식적이고 제도적으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데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인정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1부에서도 잠깐 나온 이야기인데 공모전을 하는 것은 좋은데 이왕 할 거면 폼 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상금 규모가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3년 이후부터 2007년까지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술시장의 규모나 예산 작품가격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공모전이라는 것에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선망하고 참여하려면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금이나 특전이나 기타 등등이 공모전에 참여하는 부상으로써 더 마련돼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동아미술제가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된다. 1~2부를 들으며 동아 미술제가 작가공모에서 전시기획공모로 변화를 준 점은 잘한 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공모전들, 그리고 현대미술의 국경이 없어진 상황에서의 해외의 프라이즈나 공모전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과 비교해 보며 개선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에 대한 정의를 해본다면 전시는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전시기획자이든 작가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고백하는 것이다. 그간 성찰, 경험한 것, 인식한 것을 잘 표현하는 것이 전시라고 생각한다. 전시기획 현장에서 느낀 점은 꼭 좋은 주제, 시사성이 있는 주제(키워드), 좋은 작가들만 모았다 해서 좋은 전시가 되진 않는다. 좋은 전시란 예술이란 것이 어쨌든 간에 현실을 재현하고 해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다양한 전시의 형태나 평가기준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여러 공모전이 있고 그에 준하는 인정제도들이 있다. 그 각자의 고유의 전시 정의도 필요하고 평가방법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현재는 서로 벤치마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사위원들이 각 공모전을 도는데 그러면서 본의 아니게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다. 심사위원들이 어렵다고 하는 데에는 실제로 아르코, 세마,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전부 공모를 하고 있다. 상당히 많은 기획자, 작가들이 기왕에 작성한 기획안을 여러 군데 돌린다. 페이퍼 형식만 바뀌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심사위원의 고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동아 미술제가 다른 공모전들 사이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실제 현장에서 작가나 기획자들이 애초에 다른 공모전들과는 다른 형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범 : 마지막 부분은 운영위원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 부분이 서로 자기표절과 상호표절이 되면서 획일화 표준화 되어가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세 분의 전시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를 내려 줬다. 개인적으로 지적 생산이라는 정의가 마음에 든다. 김노암의 의견처럼 전시가 만약 고백의 행위라고 한다면 고백이라는 것은 진실해야 되지 않나.

-김노암 : 정의롭다거나 진실해야 된다는 문제가 아니라 현 상황에 내가 있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드러내는데 있어서는 진실해야 한다. 공정성이란 것에 대해 생각이 든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술이란 것 자체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든가 문화라든가, 제도 속에서 예술은 사실 공정하지 않은 부분이 더 크다. 고백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어려운 질문이다. 진실하지 않다고 얘기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최범 : 진행자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많아서 물어봤다. 함께 이야기해보았으면 좋겠다.

-서진석 : 일반적인 얘기가 될 것 같다. 작가를 선발한다는 것이나, 기획자를 선발한다는 것이나 공모라는 것 자체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의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창작과는 조금 틀리다. 문화 안에서는 말하자면 매개와 향유의 영역 안에 있어서는 합의라는 과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합의라는 것은 엄밀히 가치평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작업이 좋고 나쁘고를 따진다던가, 인상주의라고 하자든가, 가격책정을 높고 낮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의라는 것은 매개와 향유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인 것이다. 다만 그 합의라는 것이 얼마만큼 민주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본권력이나 정치권력의 개입이 없는 독립적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나는가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공모전이 굉장히 많다. 국전부터 신진작가 발굴공모까지 다양한 공모전이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는 공모전의 선발기준, 합의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공공적인 합의를 도출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있었다고 본다. 국전과 마친가지로, 또 심지어 요즘 미술관에서 하는 젊은 작가 발굴 형식의 전시도 일반대중과 미술계 안의 전문가조차도 공감대 형성이 되지 못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합의과정이 가능하다고 낙천적으로 믿는다. 심지어는 가치평가인증시스템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 안에서 갤러리스트, 작가, 큐레이터, 아트 저널리스트의 동의에 의해서 가치가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투명하고 이상적이고 민주적인 합의 도출이 가능하다면, 또 그러한 부분의 사례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공모전이라는 것이 하나의 매개 플랫폼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힘이라는 것은 향유자로부터 혹은 창작자로부터 그 힘을 갖게 되고 그 힘을 가질수록 그 플랫폼은 미술계 안에서 매개 플랫폼으로써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 미술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으나 앞으로 그렇게 발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범 : 예술이든 뭐든 현실에서는 제도로써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제도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이상 그 제도가 이왕이면 좋은 제도였으면 좋겠다. 여태까지 제도가 나빴다. 제도가 좋은 쪽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공모전 자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싫다는 입장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문화정치적 태도라고 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공모전이라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고 하나의 현실 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굉장히 실용적 측면이었다. 두 가지 모두에 동의하고 싶다. 원래 공모전이라는 게 17~18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부터 시작됐고 정치권력이 예술을 위계화해 온 작업이다. 예술에 등급을 붙여줌으로써 등급을 부여하는 자각 권력을 갖게 되는 그런 매커니즘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제도로서 옛날과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뿌리는 그곳에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모전이라는 것은 사실 공모전을 주최하는 자가 문화권력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민미술관이 문화권력이다. 그 문화권력이 좋았으면 좋겠다. 여태까지 너무 나쁜 문화권력만을 보아왔다. 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보수라고 생각한다. 흔히 사회 내에 존재하는 정치적 입장을 크게 보수, 진보로 구분하고 둘 다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수준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진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평균적인 것이고 평균적 보수의 수준이 현실의 수준을 결정한다. 진보의 기능은 보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영원히 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역할은 보수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몸바쳐 희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의 수준이 너무 낮다. 보수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국전이 오랜 기간 미술권력으로 작용해 왔다. 서진석이 심사가 공정해졌다고 했는데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국전이 문화권력으로 존재할 때는 공정한 심사가 불가능했다. 소수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장치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일민미술관 같은 경우는 심사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 어떻게 보면 별로 권력이 아니라서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일 수 있고, 아니면 권력이 많이 착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긍정적 측면으로 나아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제 심사의 시대가 없는 것은 한국 보수의 상식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일민 미술관의 심사과정이 문제되지 않았던 점은 한국보수문화권력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행자로써 발언을 한 가지 한다면 공모전 자체를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현실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국문화권력의 하나인 일민미술관 동아미술제를 통해 한국 문화 보수의 수준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가 쟁점이다. 동아미술제 라는 권력이 수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것인데 죽어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근 미래의 상황에서 동아미술제가 수용함으로써 한국미술 제도의 평균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방안, 또는 진보의 몸부림이 뭐가 있을까 묻고 싶다.

-정용도 :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그 동안의 동아 미술제에 대해 나름 정리를 해서 생각을 해보면, 기획전 공모 심사에 대해선 별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일단 그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기획된 전시에 차이를 생각해봤다. 다른 곳에서의 전시 관여를 떠올려 보면 그 쪽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궁핍하다. 최소한만으로 전시를 꾸려간다. 반면에 일민미술관에서 하는 동아미술제는 장소, 경제적인 점에서 상당힌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단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을만한 전시가 있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시기획 심사를 하다 보면 항상 갈등을 하게 된다. 기존의 틀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기획서가 있는 반면 기획서 자체의 논리성은 떨어지나 개념자체가 신선한 경우가 있다. 결국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 후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장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전자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낸다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시 기획을 할 때의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전시가 지식의 생산이라는 관점이라든가 사회적 네트워크나 스토리텔링이라는 관점이라든가 하는 데 생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기존의 것을 조합해서 거기서 또 새로운 것을 재창조할 것이냐 완전 새로운 것이냐 하는 두 가지 상반된 점이 있을 것이다. 동아미술제에서 이 점을 고려해 볼 때 기술적으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분명히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다양한 시도 중에는 운영위원이나, 심사과정의 토론 등에서 새로운 시도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화두를 생산해 낼 수 있고 사회적으로 미술이 어떤 영향력 가질 수 있는가가 동아미술제를 통해 나올 수 있다면 동아미술제는 충분히 성공한 기획공모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내 관점에서 보면, 동아미술제 자체도 운영위원들에 의해서 정착할 것이 아니라 연구용역을 둘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전문가들 그룹에 의뢰해서 동아미술제를 살릴 수 있는, 앞으로 100년 200년 넘게 지속될 수 있는 연구소, 연구용역을 부탁하게 되면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적인 가치가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될 부분일 것이다. 예를 들면 상금에 대한-기획서에 대한 보상-현실성의 문제 등, 새로운 시도를 위한 새로운 연구의 시간이 분명히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차별성, 변별성이 별로 없이 운영되었다. 새로운 기획자가 들어왔을 때 그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해준다면 더 좋은 전시가 될 것 같다. 이런 식의 몇 가지 장치가 마련된다면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최범 : 지난 몇 년간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같은 방식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느꼈다. 정용도가 쿤스트독 연구소 안에서의 본인의 경험을 잘 얘기해 준 것 같다.

-김장언 : 공모전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이진 않다. 어떤 공모전이냐, 어떤 의미를 창출해내는 공모전이냐 하는데 관심이 있다. 불만이 있다면 우리나라 미술계는 언뜻 보면 공모전으로만 운영되는 미술계라는 것이다. 젊은 작가를 지원, 발굴한다는 것이 그 기관의 활동에 이슈가 될 순 없다. 공모전으로는 다 작동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 기관의 성격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일민미술관은 일민이라는 문화적 힘에 의해 파워가 생기는 거지, 기관 스스로 자신의 성격과 자신의 맥락들을 구체적으로 생산해 내지 않는다. 대다수의 기관들이 모든 프로그램들을 공모전이나 공모전과 같은 것들로 운영을 하기 때문이다. 공모전을 운영한다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 작동시킬 것이냐, 그 형식을 통해 어떤 목소리, 어떤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것이냐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 공모전들은 그 형식만을 차용한다. 이미 공모전의 형식은 제사 지내듯이 셋팅이 되어있다. 동아미술제가 실질적으로 바뀔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일단 운영위원 방식이 아닌, 주최측에서 운영위원 제도를 좀 더 본격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변화를 하기 위해서 운영위원 그룹을 워킹 그룹으로 변화시키면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공모제도에 실험들을 만들 수 있는 브레인 집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운영위원의 문제가 아니라 주최자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모전의 조항들, 가이드 라인들을 폐쇄적으로 할 수 있다. 지금 사회의 모든 사람이 가능하다는 것은 하나의 횡포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추천제로 바꾼다든지-왜냐면 사회가 투명해 졌기 때문에 아니면, 주제나 방식들, 과제를 제시한다든지 등을 개발할 수 있는데 이런 개발들은 주최자나 운영위원들이 개발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공모전 주최자들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질문을 만들어낼 때 그 질문이 관례적인 질문이 되면 힘을 얻을 수 없겠지만 동시대 혹은 현대 미술계에 있어서의 이슈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을 고양시킬만한, 도전할만한 상금의 양이 아닌 지적 활동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질문거리들을 던지고, 과제를 주고 그에 대한 기획안들을 심사해서 평가할 수도 있다. 이번 공모심사 중 놀랐던 것은 당선자가 전시준비기간이 2개월이라는 점이었다. 2개월에 구현될 수 있는 전시를 한다라는 것은, 기획안은 기획안이다. 기획안을 작성시키는 그 주최자들이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데 다된 전시를 뽑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획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작가들에게도 그렇고 기획안은 페이퍼에 불과한 것인데도 그것들을 진화시키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당장 작품을 놓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실질적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 예로 리서치 기획안을 받고 그것들을 통해서 리서치 할 수 있는 1년간의 활동 경비를 주고 그 결과물을 심사할 수도 있다. 단순히 상금을 늘리기 보다 이러한 방식들에서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새롭고 흥미로운 질문들은 공모전이기 때문에 또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된다면 또 다른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범 : 운영위원에 대해 말했는데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유연한 방식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유연하고 상호교환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김노암 : 연구프로젝트를 공모하는 것도 좋은데 월간미술상을 보면 신예를 공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해 년도나 전해에 이미 이뤄졌던 전시를 보고 심사를 한다. 그런 방법도 생산적이지 않은가? 대부분 공모가 신예작가를 발굴하자에 머물러 있다. 사실 몇몇 미술상을 제외하고 수많은 공모전에서 작가들이 20~30대 초반에 멋있게 데뷔하고 그 이후에 인정시스템이 없어 결국 지쳐버리기 일쑤다. 사실 모든 미술관, 미술제도가 신진작가를 발굴할 필요는 없다. 각자 역할이 다 있을 것인데 그러한 지점에서 일민미술관 또는 일민문화재단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한번 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후 공모전이 어떤 방향으로 포지셔닝 될 것인가, 미술계 전체에 또 다른 인정제도들과 비교했을 때 서로 도움이 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래 들어서는 전시 기획자나 작가에 대한 관심이 넓어지고 여러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으나 미술평론이나 비평 부분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제도적인 장치들이 퇴보하고 있다. 매년 벌어지는 연말 연초의 한국 미술계의 문제들에 비평, 평론의 부재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은 비평이 부재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프라나 상황들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개선의 부분이 없다. 그러한 부분을 고려해보면 비평부분에 대한 것도 공모의 지점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범 : 미술이나 문화의 공공성에 연관된 문제 같다. 주최가 사설미술관이든 어디든 간에 예술이라는 것이 사회적인 노동이고 그 결과가 사회 전체에 돌아온다고 하는 공공성이 있지 않고서는 대부분의 사적 주체들이 공공적 행위에 대한 지원을 한다기보다는 사적 소유 쪽으로 기운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지려고 하는 자신이 직접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자이길 원하고 있다. 일민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치를 생산하는자이길 원하는 한 더 넓은 공공성의 맥락에서 자기의 포지션을 찾아가면서 분배를 다양화하는 식의 높은 수준을 기대하기 힘들다. 단순한 역할분담이긴 하지만 그런 역할 분담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행위를 훨씬 더 사회적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동일선상에서 누가 먼저 하냐, 누가 더 멋있는 것을 만들어내냐를 보는 경쟁선상에서는 절대로 좋은 포지션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공공의식이 더 높아져야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서진석 :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신진작가발굴이라는 것이 2000년대의 상당히 큰 트렌드였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오버 프로덕션됐다고 생각한다. 사회라는 게 어떤 자정기능이 있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한 반대되는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끼인 세대 작가 발굴,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그런 다양성의 차원이 더욱 활성화 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사실 공모전, 대관, 소위 자체적으로 특채식으로 하는 기획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계속 다양성이라는 범위 안에서 모두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가지는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만약 오버프로덕션이 안되고, 자체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그런 의미에 있어서 공모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민미술관의 동아미술제를 보면 젊은 작가 발굴은 정말 많은 반면 젊은 기획자, 큐레이터 공모, 발굴은 많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동아미술제가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또 공모를 하는 젊은 기획자들의 양과 질이라는 문제가 화두가 될 수 있는데, 사실 이런 것은 여러 가지 사업적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존재하지 않는 기관들인가 아니면 홍보를 많이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응모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생산, 유통, 소비에 있어서 생산이 과잉이 되고, 그것에 따르는 유통이 영향을 받아 과잉이 되고, 소비가 과잉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유통이 과잉이 되어서 생산이 활발해 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은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질과 양에 있어서는. 유통 쪽에서 활성화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팽창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하나, 공모 기획에서 전제되어야 할 점은 미학적 성향을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컨템퍼러리냐 모던이냐, 미디어 아트로만 하느냐 회화로만 하느냐 등등의 미학적 성향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의 사회적, 정치적 성향의 개입에 의해 망가져버리는 상황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모 주체, 운영 주체 자체가 조직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커뮤니티, 방식, 아젠다나 어떤 이슈를 기반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21c의 조직들은 커뮤니티 개념으로 인스티튜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운영이 커뮤니티 방식으로 바뀌면 좋지 않을까? 미학적 성향, 추구하는 성향에 따라서 많은 미술인과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심사위원들이 뽑혀지고 그렇게 자율적인 커뮤니티 방식으로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청중 질문 (김현진) : 들으면서 느낀 점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으나 사례는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느꼈던 점은 한국현대미술 현장의 약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한국현대미술로만 존재하고 있진 않은데 이미 다양하게 진화된 모델들이 있다. 그러한 사례들을 조사, 연구하면서 상위모델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실제로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사례들은 요구사항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말씀하시는 방법들이 계속 요구사항들을 덧붙이는 방법이다. 사실 상을 받는 입장에서는 자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전시를 만들어야 하고 상의 역할은 배경으로 빠져줘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야 상을 받는 주체가 스스로 내용물을 여러 가지 간섭이나 요구사항들의 제재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드러낼 수가 있다. 그런 부분에서 이전에 언급했던 상의 포맷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보상의 양적, 질적인 지점들을 드러낼 수 있으면서, 다른 과정의 부분들을 통해서 기획이라던가 작업의 내용들이 관여를 덜 받게 된다는 자유로움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선정하는 과정이 여러 가지 한국의 실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벗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다른 모델을 제안할 수 있게끔 그런 리서치들을 점검해서 상위 포맷을 완전히 바꾸거나, 혹은 리서치 기간을 장시간으로 충분히 프로덕션 준비를 강력히 할 수 있는 포맷을 제공 할 수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이뤄졌을 때 결과가 상당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과연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으로, 해외 미술관에서 초청하여 1년 동안 소장품을 연구할 수 있었던 사례가 있다. 연구기간을 자율적으로 주고 그 안에서 개별적으로 알아서 전시 기획안을 만들어서 그것을 펼쳐 보일 수 있게끔 충분한 써포트를 해주고 여러 가지 포스트해주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런 방식들이 한국에 적용되려면 상당히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단계를 하나하나 담는다고 해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조금 더 급진적인 방식을 선택해서 확 뒤집어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다른 모델들도 따라서 변화하는 경우들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보다 급진적인 사례들이 드러나지 않고 같이 논의해보지 않으면 지금 굉장히 좋은 방법들을 얘기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실행하느냐라든가 정말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요원해지는 부분이 있다.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면서 상황들이 바뀌어 질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것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최범 : 오늘 사례이야기가 안 나왔던 것은 우리가 사례를 몰라서이거나 사례를 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례가 현실이 되는 적정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사례, 선진적인 것들이 한국화되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어떤 타협점이 있다. 어떤 것들은 한국화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다른 방식으로 한국화가 된다. 그런 경우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이 문화적인 의미나 문화권력을 만들어 주는 선에서 결정된다고 생각된다. 재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아도 채택되지 않는 것이다. 동아미술제도 작가공모에서 전시기획공모로 바뀐 이유는 이전에는 작가공모만으로도 충분히 기존의 동아미술제의 문화권력이 재생산이 가능했는데 어느 시점에서 그런 것들이 다시 재생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기대한 것만큼의 새로운 효과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10년 20년 걸리는 문제겠지만 그래서 이 자리가 있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동아미술제에서 상을 타면 동아일보에서 치러 주면 되는 것이었다. 전시기획공모라는 것은 적어도 한국미술계에서 이슈가 되면서 그 효과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기대만큼 이뤄지는 것이 없다. 그런 면에서 지금 현재 동아미술제는 이러한 요구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선진적인 사례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건에 있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 곳은 목마르기 때문에 접합이 가능한 어떤 방법이나 사례들이라면 아직은 수용이 가능한, 새롭게 변신한 동아미술제가 아직은 경화되지 않은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고원석 질문 : 동아미술제 발전을 위해 시각을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많은 분들께서 혼동을 하시는데 이 행사의 주최를 일민미술관 혹은 일민문화재단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후원으로 알고 있고 주최는 동아일보사로 알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아일보사 안에 사업국이 있고 그 안에 미술부가 있고 그 안에서 행해져 오는 긴 역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구조들이 굉장히 정형화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전시공모의 가이드에 대한 참신성이 발휘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주최측의 무성의라기보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사업국도 다양한 행사들을 진행하는 차원에서 조금 더 다양한, 발전적인 방향을 도출하고자 한다면 사업국 내에서 정해진 예산을 가지고서도 시도를 한다면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맥락으로 올라가보면 이 동아일보사라는 곳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입장인데 그것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공성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구체적인 지향점 등의 부분들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동아일보사가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최범 : 동아미술제를 운영하는 동아일보사 내부의 구조와 현실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었다. 엄밀히 결정요소의 한 부분이다. 이렇다 말할 순 없지만 그러한 하나의 구조가 있다.

-정용도 : 동아미술제에 대해서 이것이 있을 필요가 있고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는데 실은 공모전, 비엔날레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시대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의미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동아미술제 기획공모전이 어떤 한 관점을 견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발전방안은 부차적으로 따라와야 되겠지만 한국에서 많은 젊은 작가들이 노출되고 있다. 컬렉터도 증가하면서 많은 작가들이 부상하고 있으나 기획자를 키우는 공모,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미술제가 선두에 서서 기획자를 양성, 발굴한다는 의미에서 이 미술제를 가져 간다면 오히려 더욱 중요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범 :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 같다. 잘 정리해서 일민미술관 측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감사하고 토론을 마무리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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