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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된 정치 구호

Posted February. 06, 2020 08:40   

Updated February. 06, 20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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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도쿠멘타’ 전시에 가보면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작품을 종종 만난다. 2017년 행사는 특별히 그리스 아테네와 동시에 진행돼 더 주목을 받았다. 두 도시의 거리 곳곳에는 “우리 모두가 국민이다”라는 문구가 12개국 언어로 새겨진 대형 현수막과 포스터들이 나붙었다.

 광고나 집회 현수막 같은 이 인쇄물은 독일 출신의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의 작품이다. 하케는 광고나 저널리즘 형식을 빌린 현실비판적인 작품으로 유명한데, 197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 선보인 투표함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는 전시장 입구에 투표함을 설치한 후 관객들에게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의 베트남 전쟁 지지가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주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지를 물었다. 당시 록펠러는 이 미술관의 이사회 임원이기도 했다. 투표 결과는 ‘그렇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첨예한 정치 쟁점을 미술의 제도 속으로 끌어들인 작품이었다.

 하케가 세계적 권위의 도쿠멘타 전시에 사용한 문구도 ‘동독 월요시위’에 등장한 정치 구호에서 따왔다. 1989년 독재의 부당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동독 시민들은 ‘우리가 국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외치며 매주 월요일 거리로 뛰쳐나왔고, 결국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유럽 난민 문제가 불거지자 2015년 독일 극우단체 ‘페기다(PEGIDA)’는 이 구호를 다시 유행시키면서 ‘우리’를 독일인으로 한정하고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하케는 난민 문제로 분열된 유럽 사회를 보며 이 구호의 본래 의미를 세계 시민에게 상기시키고자 했다. 그가 고급 미술 대신 인쇄물을, 미술관 대신 거리를 택했던 이유다. 아울러 글자 양옆의 무지개색은 희망의 의미도 있지만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결국 이 작품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은 다 평등하며 성별이나 피부색, 종교, 국적 등 어떤 이유에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상식의 각성인 것이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