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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축복

Posted October. 09, 2018 07:53   

Updated October. 09, 2018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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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크고 검은 눈동자는 보기 드문 정열의 불꽃을 발했지만 감미로운 기질과 잘 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우렁차면서도 조화로웠다. 미모는 클레오파트라와 대등했지만 정숙함과 용기는 훨씬 능가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팔미라의 여왕 제노비아를 이렇게 묘사했다. 제노비아가 다스렸던 팔미라는 시리아의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도시였다. 시리아가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비록 도시는 거의 폐허가 돼 기둥과 석조 유적만 간신히 남아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관광객을 충분히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사막에 이런 도시를 건설한 힘은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가 주는 부유함 때문이었다. 시리아는 고대 오리엔트제국부터 인도와 유럽, 북아프리카의 산물이 교차하는 무역의 십자로였다. 팔미라왕국은 로마제국에서도 으뜸가는 부국이라 로마의 속주 시절 번영을 누렸고 로마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꿈도 가졌다. 제노비아의 독립전쟁은 강렬했다. 이집트까지 영토를 넓혔고 로마 군단을 몇 번이나 격퇴했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는 게르마니아에 주둔하는 로마 최강 군단을 시리아로 데려와야 했다. 그 뒤로도 전쟁은 쉽지 않아 황제 자신이 부상을 당할 정도로 고전하다가 간신히 승리했다. 제노비아는 황제의 포로가 됐다.

 제노비아의 영광과 비극은 시리아가 4000년간 받은 고통의 축약판이다.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로마, 십자군, 오스만까지 유럽과 근동에서 발기한 제국은 너나없이 시리아를 탐내고 정복했다. 이제 낙타 무역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시리아에서는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이 땅은 미국과 러시아, 오스만의 후예인 터키와 중동의 석유왕국들이 충돌하는 지점이 됐다. 재작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거리에 앉아 있는 시리아 난민 부녀를 봤다. 소녀는 제노비아만큼이나 아름다웠는데 빵 조각 하나를 들고 있었고 길고양이들이 그 빵을 노리며 빙 둘러서 있었다. 시리아가 쓸모없는 땅이었다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축복은 그것을 지킬 능력이 있는 나라에만 축복이 된다.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