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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 전쟁 책임 고뇌했던 실상 일기 통해 드러나

히로히토 일왕, 전쟁 책임 고뇌했던 실상 일기 통해 드러나

Posted August. 24, 2018 08:06   

Updated August. 24, 20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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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늘고 길게 살아봤자…. 전쟁책임 거론되는 것이 괴롭다.”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재위 1926∼1989)이 자신의 전쟁책임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 당시 시종의 일기에 기록돼 있었다고 교도통신이 23일 전했다. 통신은 히로히토 전 일왕 생전에 시종으로서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고바야시 시노부(小林忍·2006년 사망) 씨의 일기를 유족으로부터 입수했다.

 일기에는 히로히토 전 일왕이 85세였던 1987년 4월, 자신의 거처에서 고바야시 시종에게 “업무를 줄이고 가늘고 길게 살아도 별것 없다. 괴로운 일을 보거나 듣거나 하는 일이 많아지게 될 뿐이다. 형제 등 친지가 세상을 뜨는 걸 보게 되고 전쟁책임을 지적 받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고 적혀 있다. 고바야시 시종은 이를 ‘엊저녁 일’이라며 4월 7일란에 기록했다. 이어 일왕에게 “전쟁 책임은 극히 일부 사람이 말하는 것일 뿐 대다수 국민은 그렇지 않다. 전후 복구로부터 오늘날의 발전상을 보면 이제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신경을 쓰지 마시라”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궁내청은 고령인 일왕의 업무부담 경감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같은 해 2월에는 일왕의 동생인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가 세상을 떴다. 이미 공개된 선배 시종장의 같은 날 일기에도 “(일왕이) ‘장수해도 좋은 일 없다’고 하자 고바야시 시종이 위로했다”고 쓰여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일기 내용에 대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경험한 히로히토 일왕이 만년까지 전쟁책임에 대해 마음을 쓴 심정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히로히토 일왕은 공식 회고록을 통해서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군부와 의회가 전쟁 결정을 내렸고, 입헌군주로서 재가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전쟁책임을 부정한 바 있다.

 고바야시 씨의 일기에는 히로히토 전 일왕이 언제 누구에게서 전쟁책임에 대한 지적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술은 없다. 다만 1986년 3월 당시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산당의 마사모리 세이지(正森成二) 의원이 “무모한 전쟁을 시작해 일본을 전복 직전까지 가게 한 것은 누구인가”라며 히로히토 전 일왕의 책임을 추궁했고, 이를 부정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와 설전을 벌인 바 있다.

 히로히토 일왕은 이 같은 속내를 드러낸 지 20여 일 뒤인 4월 29일 자신의 탄생일 연회에서 구토하며 쓰러졌다. 같은 해 9월 수술을 받고 일시 회복했으나 1988년 9월 다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1989년 1월 7일 세상을 떠났다.

 고바야시 시종은 1974년 4월 일왕가의 시종이 돼 2000년 고준(香淳) 왕후 사망 때까지 26년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한다.


서영아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