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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비명(碑銘)

Posted July. 14, 2018 07:26   

Updated July. 14, 201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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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야 문예 잡지가 많지만 예전에는 많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에도 문예 잡지는 장사가 되지 않았다. 돈 없는 시인들이 종이 값이며 인쇄비는 어떻게 댔을까. 유복한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주머니를 털기도 했다.

 배고픔과 바꾼 잡지. 밥보다 귀한 문학. 초창기의 문예지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쉽게 말하자면 고고한 자부심인데, 이 자부심을 찾아보는 것에는 아련한 재미가 있다. 1936년에 태어난 ‘시인부락’이란 잡지도 여기에 해당한다. 단 두 번 나오고 사라진 잡지였다. ‘시인부락’의 창간호 맨 앞에는 바로 함형수의 이 시가 실려 있다.

 함형수라는 시인은 길게 살지 못했고, 남긴 시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해바라기의 비명’은 당시 선후배 사이에서 크게 회자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을 만한 힘이 시 안에 들어 있다. 지금도 애송시를 답하는 설문에서 이 시는 단골로 오르곤 한다.

  ‘해바라기의 비명’이야말로 고고한 자부심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요즘 말로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시쳇말로 ‘근자감’이면 또 어떤가. 아무리 봐도 함형수의 저 기상과 표현과 상상력은 눈부시게 멋지다. 죽어도 나의 정신만은 죽지 않는다는 생각. 처지는 비루해도 영혼은 높다는 생각. 축 처진 일상을 번쩍 정신 들게 하는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이원주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