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스승의 날’이 싫어서  

Posted April. 26, 2018 07:52   

Updated April. 26, 2018 07:52

中文

 소설가 이순원은 초등학교 시절 백일장에 나갈 때마다 미역국을 마셨다. 풀죽은 제자에게 담임교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같은 나무에도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나중 피는 꽃이 있더라. 일찍 피는 꽃이 눈길은 더 끌지만 선생님 보기엔 큰 열매를 맺는 꽃들은 늘 더 많이 준비를 하고 뒤에 피는 거란다.”  

 ▷영화 ‘뮤직 오브 하트’는 뉴욕 할렘가 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취직한 로베르타 과스파리의 실화를 담은 작품. 그는 클래식을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빈민가 아이들에게 13년 동안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불어넣는다. 다리가 불편한 제자에게 그는 말한다. 다리로만 일어설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강하면 설 수 있다고. 진정한 스승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을 만드는 의사들이다. 헬렌 켈러를 절망에서 끌어올린 앤 설리번처럼.

 ▷선생님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2007년 초중고생의 희망직업 조사가 시작된 이래 교사는 부동의 1위를 고수하지만 현장의 교사들은 자긍심보다 상실감과 무력감을 호소한다. ‘스승의 날’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최근 한 교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승의 날을 없애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교육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교사들은 개혁의 주체는커녕 늘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받았다”고 탄식했다.

 ▷청원에 대한 교사들 반응이 뜨겁다. 스승의 날에 되레 죄인 취급 받는 게 싫다는 이유다. 학생인권을 앞세우는 과정에서 교권침해는 매년 늘고, 교사가 빠진 국가교육회의처럼 ‘교사 패싱’에 대한 분노도 녹아있을 터다. 그뿐인가.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에 따라 스승의 날 카네이션도 학생대표만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선생님이 되는 것은 최고의 특권, 선생님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란 말이 무색해진 현실, 그럼에도 이 땅 어디선가 제자의 가슴에 희망과 사랑, 용기를 심어주는 모든 선생님들께 마음의 꽃다발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