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최은희와 김정일

Posted April. 18, 2018 08:02   

Updated April. 18, 2018 08:02

中文

 “오시느라 수고했습네다. 내레 김정일입네다.” 1978년 1월 홍콩에서 납치돼 막 북한 땅을 밟은 최은희를 맞은 이는 국방색 점퍼 차림의 곱슬머리 젊은이였다. 당시 한국에선 김정일이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이 됐다는 루머가 퍼져 있었지만 그는 멀쩡하게 선착장에서 한국 여배우 앞에 나타나 악수를 청했다. 김정일은 닷새 뒤 다시 와서는 이렇게 너스레도 떨었다. “최 선생 보기에 내가 어떻게 생겼습네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 하하하.”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를 농담으로 삼는 김정일의 ‘자학 개그’는 그가 가진 권력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과시하는 자신감의 산물이었다. 당시 한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에선 북한 최고 권력자의 아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30대 후반의 김정은은 이미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의 말 한마디면 스파이 영화에나 나오는 납치극이 버젓한 현실이 되고, 밤이면 측근들을 불러 먹고 마시는 비밀파티를 여는 실질적 권력자였다.

 ▷베일 속 김정일의 실상은 8년 뒤 최은희 신상옥 부부가 탈출한 뒤 세상에 알려졌다. 이 부부가 녹음한 테이프 4개엔 김정은의 육성도 담겨 있었다. 거기엔 김정일이 90분 이상 속사포처럼 혼잣말을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남자를 데려오는 건 무리다. 그래 신 감독을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하냐. 그래서 최 선생을 이렇게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른바 ‘문화교류’를 위해 신상옥이 필요했고, 그래서 최은희를 이용했다는 터무니없는 자기 정당화였다.

 ▷최은희 신상옥 부부는 1986년 탈출해서도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마련해준 안가에서 은둔 생활을 해야 했고, 1989년 일시 귀국해서도 중앙정보부에 갇혀 조사를 받아야 했다. 납북, 그리고 이어진 10여 년의 망명 생활은 노년까지 깊은 상처로 남았다. 최은희는 자서전 ‘고백’의 에필로그에서 다가올 죽음을 또 하나의 ‘납치’에 비유했다. “아마도 이번에 납치된다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곳은 이북이 아닌 지구상엔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