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기증으로 꽃핀 문화재 사랑

Posted April. 14, 2018 09:59   

Updated April. 14, 2018 09:59

中文

 2003년 3월, ‘성문종합영어’의 저자 송성문이 고서 문화재 100여 건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여기엔 국보 246호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국보 4건과 보물 22건이 포함됐다. 30년 넘게 베스트셀러 참고서를 팔아 번 돈으로 수집한 수백억 원의 고서들이었다. 기증 의사를 밝힌 지 3일 만의 일이었고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 박물관 사람들은 “가장 화끈한 기증”이라고 불렀다. 박물관이 기증식을 마련하자 그는 “미국에 있는 아들 보러 간다”며 둘러대곤 나타나지 않았다.

 ▷최근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이 평생 모은 유물 4800여 점을 코리아나화장품 법인에 기증했다. 1970년경 제약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던 그는 “감성을 키우는 데 옛 그림이 좋다”는 말을 듣고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 후 화랑마다 외상이 깔려 월급날이면 외상값 갚기에 바빴다고 한다. 화장품 회사를 차린 뒤엔 장신구와 화장 관련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았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 박물관보다 뒤늦게 출발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자리 잡은 건 기증 덕분이다. 이곳이 자랑하는 르네상스 회화 명품 2600여 점은 은행가 로버트 리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렘브란트 등 거장의 드로잉 판화들은 철도사업가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2세가 기증한 것이다.

 ▷한두 점이든 수천 점이든 공들여 수집한 문화재를 기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실에 가면 기증자 250여 명의 이름을 반듯하게 붙여 놓았다. 기증과 공유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서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의 후손이 제작한 찻잔,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기념으로 받은 그리스 청동투구, 안익태의 친필 애국가 악보 같은 기증품은 특별한 사연이 담긴 것이어서 더 큰 감동을 준다.


이광표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