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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멸종, 결코 먼 미래가 아닌 까닭

Posted April. 07, 2018 07:27   

Updated April. 07, 201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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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인상은 불친절했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에서 갸우뚱. 해골을 새긴 바나나 그림 표지에서 또 한번 갸우뚱. 한데 첫 문장에 바로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털벌레의 허기가 잎의 모양을 바꾸듯 우리의 허기는 지구의 모양을 바꿨다.’ 식량, 탐욕, 자연, 생태계 등을 솜씨 좋게 요리한 책일 거란 예감이 들었다.

 기대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응용생태학자인 저자는 바나나 감자 초콜릿 등 친근한 먹거리를 주제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짚어 나간다. 책은 바나나로 시작된다. 1950년 중앙아메리카의 한 바나나 농장주는 맛과 크기가 똑같은 단일 품종 바나나를 재배했다. 품질이 예측 가능해지자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경제적으로 천재적인 이 발상은 그러나 생물학적으론 낙제점이었다. 1890년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이 일으키는 파나마병이 한 농장을 덮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대 농장 바나나 전부가 검게 변했다. 단일 품종의 비극은 1950년 전 세계로 퍼졌고, 한때 바나나계를 호령하던 그로미셸 품종은 결국 식탁에서 사라졌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도 비슷한 참사가 벌어졌다. 1843년 난균류로 감염되는 감자 역병으로 아일랜드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거리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엉겨 붙은 시체를 떼어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가난뱅이의 반찬은 큰 감자에 곁들인 작은 감자’였다고 할 정도로 감자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또다시 단일 품종인 캐번디시를 경작해 이윤을 쌓았고, 신종 파나마병에 캐번디시도 모습을 감췄다. 인간의 탐욕은 멈출 줄 몰랐고, 지금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모양 좋고 맛난 먹거리를 위해 자연 질서를 해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끔찍한 식탁 잔혹사에 숙연해질 즈음 저자는 넌지시 말한다. ‘야생의 자연이 주는 혜택은 야생의 땅을 보전할 때에만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종이 어느 야생의 땅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일찍이 종의 중요성을 눈치 챈 이들도 있다. 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와 연구진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군과 굶주린 아군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17만 종의 작물 품종을 지켜냈다. 연구원 30여 명이 종자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쌀, 땅콩, 감자 옆에서 굶어 죽는 길을 선택한 것. 이들의 고귀한 사명감으로 러시아 작물 재배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핵폭탄이 터져도, 전기가 끊겨도 끄떡없다.

 생물학을 쉽게 풀어내고 바람직한 생명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 등을 펴낸 후쿠오카 신이치의 팬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듯하다. 단단한 번역도 책의 품격을 높였다.


이설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