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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컬링 선수들 사연

Posted March. 13, 2018 08:02   

Updated March. 13, 201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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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어느 날 아침. 전기회사를 다니던 22세 청년 서순석(47)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신호 대기 중이던 그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뒤에서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차량은 뺑소니를 쳤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서순석을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앰뷸런스가 아닌 택시에 불안정하게 앉혀진 서순석은 척수가 심하게 눌렸고, 더는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됐다.

 중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였다. 퇴원 후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웹마스터 자격증을 따며 취업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우울증에 빠진 그는 동생 서현주 씨(46)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 젊어. 그런데 장애인이 된 나를 더는 세상이 받아주지 않아.”

 서순석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협동을 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2009년 11월 휠체어컬링을 접하며 이뤄졌다. 모두가 똘똘 뭉쳐 작전을 짜내는 컬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사라졌던 자신감과 열정도 살아났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매일 운동장을 5km씩 달린 끝에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소통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순석은 이런 경험을 살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스킵(주장) 서순석이 이끄는 대표팀은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휠체어컬링 예선 4차전에서 캐나다를 7-5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 캐나다는 패럴림픽 4회 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강팀이다. 백종철 대표팀 감독은 “(예선 11경기에서) 7승 정도를 하면 4강에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 한국 여자 컬링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휠체어컬링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는 서순석은 작전 시간(팀당 38분)을 충분히 활용해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작전을 수립한다. 스킵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다른 팀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서순석은 “대표팀이 구성된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아 서로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포지션과 나이에 따른 대화법 교육까지 받아가며 팀을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컬링은 통상 스킵이 마지막 7, 8번째 투구를 하지만 서순석은 자신보다 투구 성공률이 높은 세컨드 차재관(46)에게 투구 순서를 양보했다. 그 대신 자신은 3, 4번째 투구를 한 뒤 작전 구상에 집중한다. 서순석은 “이기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재관이가 너무 잘해주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서순석은 8엔드 차재관의 7번째 투구를 앞두고 “이것만 성공시키자. 믿고 있는 것 알지?”라고 말했다. 차재관은 “내가 책임질게!”라고 답했다. 차재관이 굴린 스톤은 상대 스톤 2개를 하우스 밖으로 쳐냈다.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 캐나다는 패배를 선언했다. 차재관은 “서순석이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최종 투구자로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서순석은 경기 중에 좋은 샷을 해도 좀처럼 웃지 않는다. 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경기 중 환하게 웃을 때가 있다. 경기장을 찾아 자신을 응원하는 아내 유영은 씨(46)와 동생 현주 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 때다. 유 씨는 청각장애 1급으로 보청기를 착용하고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서순석은 “아내가 ‘하던 대로만 해. 최선만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항상 말해준다. 힘든 시기를 거친 나를 응원해준 가족 덕분에 용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